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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신명기 26장 1절 - 19절
설교일시 : 2011. 10. 16. 추수감사절
설교장소 : 소토교회
1.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첫 수확을 거둘 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례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추수를 하고 난 뒤 그것의 일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규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보면 추수를 하고 난 뒤, 추수한 것의 바구니에 담아 제사장에게 가져오면 제사장은 그것을 가지고 먼저 신앙고백을 합니다. 자신들을 이 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이 땅의 소산을 주심을 감사하는 것이죠. 그리고 앞으로도 하나님의 그런 은혜와 복을 달라는 기원을 드립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 속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경제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2. 내가 거둔 추수 과연 어떻게 생긴 것인가?
그리스도인의 경제 생활에 있어 첫 번째 생각해야 할 것이 바로 내가 얻은 이것, 도대체 어떻게 얻게 된 것인가를 알아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것은 내가 고생하고 노력하고 땀흘려 얻은 댓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내 것이고, 내가 써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죠.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내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10절에 보면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즉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이라고 고백하는 것이죠. 그냥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에 당연히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의 행동이 뒤따르는 것입니다.
내가 벌었고, 내것이라고 하기에 사람들은 내 편의대로 그 재물을 쓸려고 합니다. 마음이 좀 천한 이는 천한 것에 사용하고, 좀 더 품위있는 이들은 품위 있는 일에 사용합니다. 때로 남을 도울 수도 있고, 사회를 위해 쓸 수도 있고, 좋은 일에 사용할 수도 있지만 기본은 내 것을 쓴다는 것이죠. 내 것이기에 애착이 가고, 내 것이기에 귀하고, 내 것이기에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입니다. 귀하게 쓰든 천하게 쓰든 내 것 가지고 내 맘대로 한다는데 이견을 달 수 없는 것이죠.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의 것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물론 하늘에서 그저 떨어진 것이 아니라 남들처럼 노력하고 눈물 흘리고 애를 써서 번 것입니다. 그래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 노력만으로 된 것이 아니라 이렇게 추수하기까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도움과 손길이 있었고, 곡물이 자라도록 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이죠. 그래서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그렇기에 하나님의 뜻대로 이것을 사용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돈을 잘 벌기도 해야 하지만 잘 쓸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돈을 잘 못 사용하면 하나님의 지탄을 받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요? 바로 십일조가 가진 뜻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이 수확한 것의 1/10을 성전에 바쳤습니다. 십일조를 드린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십일조를 드리고 남은 것의 십분의 일을 또 드립니다. 그리고 나머지 수입의 80%에 해당하는 것은 자신의 생활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수입의 20%에 해당하는 이것은 어떻게 사용되었을까요?
3. 성전과 레위인의 생활을 위해
먼저 1/10은 성전과 레위인을 위해 쓰여졌습니다. 이스라엘이 12개의 지파로 이루어졌는데, 그 중 11개 지파는 경제생활을 할 수 있는 땅이 있었지만 레위 사람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성전과 이스라엘의 신앙교육 그리고 재판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들은 다른 11개 지파에서 주는 십일조를 통해 살아갈 수 있었고, 하나님은 이것을 그들의 수입으로 주신 것이죠.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일조를 내면 일단 성전의 운영비와 레위인들의 생활비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레위인에게 준 것의 십분의 일을 따로 떼어 성전에서 살고 있는 제사장들의 생활비로 준 것입니다.
성전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생활의 핵심이었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강령이었습니다. 성전이 제 기능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가르쳐질 때 이스라엘 공동체는 온전해지는 것이기에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근간을 지키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4. 이웃과 함께 즐거움을 누려라
나머지 10%는 어떻게 사용했을까요? 이것은 성전에 바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집에 비축해두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년에 세 차례의 절기를 지켰습니다. 우리의 광복절에 해당하는 유월절, 추석에 해당하는 맥추절, 그리고 곡식거두기를 마치고 이를 창고에 저장하는 수장절입니다. 이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손을 모두 놓고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모여서 축제를 즐깁니다. 우리가 명절에 고향을 찾아가듯이 이 세 절기에 이스라엘은 민족적인 이동이 시작되는 것입니다.이곳에 갈 때 대표로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이 모두 가는 것이죠.
두번째 십일조는 이 축제를 위한 경비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족만 가느냐? 아닙니다. 이웃에 이런 비용을 대기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그들을 위해서도 사용하며, 그 지역에 레위인이 있으면 그들의 경비를 위해서도 내어놓습니다. 그래서 그 축제 기간에 돈이 없어 축제를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며, 모두 함께 하나님께 제물을 받치며, 그것을 서로 나누고 즐기는 것입니다.
5. 어려운 이웃을 돌보아주라
축제 경비로 따로 비축해 둔 십일조는 또다른 쓰임새가 있습니다. 이 십일조는 첫째와 둘째 해에는 축제경비로 쓰고, 셋째 해에는 지역에 있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 쓰여졌습니다. 그리고 넷째와 다섯째 해에는 다시 축제 경비로 또 여섯째 해에는 어려운이를 돕는 구제금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일곱째 해는 안식년이기 때문에 경작을 하지 않습니다. 수입이 없으니 헌금도 없는 것이죠. 그리고 다시 첫째 해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매 3년마다 이 십일조는 외국에서 피난해온 난민, 그리고 사회구조상 남이 도와주지 않으면 생존을 이어갈 수 없는 고아와 과부를 위해 썼던 것입니다.
이처럼 십일조를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경제생활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먼저 그 수확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성전과 그 섬기는 사람들을 위해 1/10을 쓰고, 이웃과 함께 즐거워하며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기금으로,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안되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내 수입의 1/10을 사용하는 것이죠. 이렇게 교회와 공동체, 어려운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경제생활 원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벌었기에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되면 재물에 매인 사람이 아니라 재물을 부리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재물은 가치 있게 쓰야 복이 되는 것, 하나님이 주신 것을 정말 복되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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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26장, 십일조와 그리스도인의 경제관
본문 : 신명기 26장 1절 - 19절
설교일시 : 2011. 10. 16. 추수감사절
설교장소 : 소토교회
1.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첫 수확을 거둘 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례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추수를 하고 난 뒤 그것의 일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규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보면 추수를 하고 난 뒤, 추수한 것의 바구니에 담아 제사장에게 가져오면 제사장은 그것을 가지고 먼저 신앙고백을 합니다. 자신들을 이 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이 땅의 소산을 주심을 감사하는 것이죠. 그리고 앞으로도 하나님의 그런 은혜와 복을 달라는 기원을 드립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 속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경제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2. 내가 거둔 추수 과연 어떻게 생긴 것인가?
그리스도인의 경제 생활에 있어 첫 번째 생각해야 할 것이 바로 내가 얻은 이것, 도대체 어떻게 얻게 된 것인가를 알아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것은 내가 고생하고 노력하고 땀흘려 얻은 댓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내 것이고, 내가 써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죠.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내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10절에 보면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즉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이라고 고백하는 것이죠. 그냥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에 당연히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의 행동이 뒤따르는 것입니다.
내가 벌었고, 내것이라고 하기에 사람들은 내 편의대로 그 재물을 쓸려고 합니다. 마음이 좀 천한 이는 천한 것에 사용하고, 좀 더 품위있는 이들은 품위 있는 일에 사용합니다. 때로 남을 도울 수도 있고, 사회를 위해 쓸 수도 있고, 좋은 일에 사용할 수도 있지만 기본은 내 것을 쓴다는 것이죠. 내 것이기에 애착이 가고, 내 것이기에 귀하고, 내 것이기에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입니다. 귀하게 쓰든 천하게 쓰든 내 것 가지고 내 맘대로 한다는데 이견을 달 수 없는 것이죠.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의 것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물론 하늘에서 그저 떨어진 것이 아니라 남들처럼 노력하고 눈물 흘리고 애를 써서 번 것입니다. 그래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 노력만으로 된 것이 아니라 이렇게 추수하기까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도움과 손길이 있었고, 곡물이 자라도록 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이죠. 그래서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그렇기에 하나님의 뜻대로 이것을 사용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돈을 잘 벌기도 해야 하지만 잘 쓸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돈을 잘 못 사용하면 하나님의 지탄을 받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요? 바로 십일조가 가진 뜻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이 수확한 것의 1/10을 성전에 바쳤습니다. 십일조를 드린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십일조를 드리고 남은 것의 십분의 일을 또 드립니다. 그리고 나머지 수입의 80%에 해당하는 것은 자신의 생활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수입의 20%에 해당하는 이것은 어떻게 사용되었을까요?
3. 성전과 레위인의 생활을 위해
먼저 1/10은 성전과 레위인을 위해 쓰여졌습니다. 이스라엘이 12개의 지파로 이루어졌는데, 그 중 11개 지파는 경제생활을 할 수 있는 땅이 있었지만 레위 사람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성전과 이스라엘의 신앙교육 그리고 재판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들은 다른 11개 지파에서 주는 십일조를 통해 살아갈 수 있었고, 하나님은 이것을 그들의 수입으로 주신 것이죠.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일조를 내면 일단 성전의 운영비와 레위인들의 생활비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레위인에게 준 것의 십분의 일을 따로 떼어 성전에서 살고 있는 제사장들의 생활비로 준 것입니다.
성전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생활의 핵심이었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강령이었습니다. 성전이 제 기능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가르쳐질 때 이스라엘 공동체는 온전해지는 것이기에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근간을 지키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4. 이웃과 함께 즐거움을 누려라
나머지 10%는 어떻게 사용했을까요? 이것은 성전에 바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집에 비축해두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년에 세 차례의 절기를 지켰습니다. 우리의 광복절에 해당하는 유월절, 추석에 해당하는 맥추절, 그리고 곡식거두기를 마치고 이를 창고에 저장하는 수장절입니다. 이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손을 모두 놓고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모여서 축제를 즐깁니다. 우리가 명절에 고향을 찾아가듯이 이 세 절기에 이스라엘은 민족적인 이동이 시작되는 것입니다.이곳에 갈 때 대표로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이 모두 가는 것이죠.
두번째 십일조는 이 축제를 위한 경비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족만 가느냐? 아닙니다. 이웃에 이런 비용을 대기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그들을 위해서도 사용하며, 그 지역에 레위인이 있으면 그들의 경비를 위해서도 내어놓습니다. 그래서 그 축제 기간에 돈이 없어 축제를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며, 모두 함께 하나님께 제물을 받치며, 그것을 서로 나누고 즐기는 것입니다.
5. 어려운 이웃을 돌보아주라
축제 경비로 따로 비축해 둔 십일조는 또다른 쓰임새가 있습니다. 이 십일조는 첫째와 둘째 해에는 축제경비로 쓰고, 셋째 해에는 지역에 있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 쓰여졌습니다. 그리고 넷째와 다섯째 해에는 다시 축제 경비로 또 여섯째 해에는 어려운이를 돕는 구제금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일곱째 해는 안식년이기 때문에 경작을 하지 않습니다. 수입이 없으니 헌금도 없는 것이죠. 그리고 다시 첫째 해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매 3년마다 이 십일조는 외국에서 피난해온 난민, 그리고 사회구조상 남이 도와주지 않으면 생존을 이어갈 수 없는 고아와 과부를 위해 썼던 것입니다.
이처럼 십일조를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경제생활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먼저 그 수확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성전과 그 섬기는 사람들을 위해 1/10을 쓰고, 이웃과 함께 즐거워하며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기금으로,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안되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내 수입의 1/10을 사용하는 것이죠. 이렇게 교회와 공동체, 어려운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경제생활 원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벌었기에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되면 재물에 매인 사람이 아니라 재물을 부리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재물은 가치 있게 쓰야 복이 되는 것, 하나님이 주신 것을 정말 복되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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