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마태복음22장] 왕의 잔치에 초대된 손님

코이네 2015. 9. 11.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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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아들 혼인잔치에 초대된 손님

본문 : 마태복음 22:1-14

설교 : 박동진 목사(소토교회)

 

본문의 말씀은 마태복음 21장의 두 아들의 비유, 포도원 주인의 비유 등과 함께 예수님을 만나고도 마음이 완악하여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핍박하는 당시의 종교지도자에게 그들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비유로 깨닫게 하고 있다.

 

1.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들

 

예수님은 왕의 혼인잔치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상황을 말씀하신다. 왕의 아들인 왕자가 장성하여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되었다. 왕은 이 기쁜 혼인 잔치에 지인들을 초대하기 위해 종들을 보낸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보내 꼭 참석해줄 것을 권한다. 왕의 부름, 그것도 잔치 자리에 부르는 것이니 만사를 제쳐놓고 가야 할 일이다. 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초청을 받은 사람들이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을 이야기 속에서 가정한 것이다.

 

왕의 초청은 가문의 영광이며, 왕과 그만큼 각별한 사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왕의 나라에서 왕의 초청을 거절하는 것은 굴러들어온 호박을 넝쿨째 걷어차는 것일 뿐 아니라, 왕의 호의를 무시하는 것이며, 왕을 모욕하는 것이다. 이는 왕에게 선전포고 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행동이다.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감히 어떻게 이런 짓을 하겠는가?

 

두 번째로 있을 수 없는 일을 말씀하신다. 첫 번째 초청자들이 혼인잔치의 부적격자가 되고, 그 대신에 이전에 자격이 없던 사람들을 무작위로 왕은 그의 잔치에 초청한다. 그 초청된 사람들은 마치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기뻤을 것이다. 그들은 갑작스런 부름에 아무 준비도 없이 혼인잔치에 왔지만, 왕은 그들을 위해 잔치예복을 준비해 두었고, 그들에게 지급해주었다. 이것이 당시의 관례였다. 이걸 입어야 왕의 잔치가 갖는 격식에 맞는 것이다. 그런데 그 때 그 예복을 입지 않고 버티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어떤 이유가 있는지는 몰라도, 이 역시 왕을 업신여기는 행위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 잔치 자리에서 쫓겨나게 된다. 이는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걸 알고도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이 이야기를 듣는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말을 비웃었을 것이다. 도대체 그걸 말이라고, 어디 그런 정신 나간 미친 사람들이 있냐고 할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그 정신 나간 미친 인간들이 바로 당신들이야, 너희들이 그런 미친 짓을 하고 있어”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잉어_부부

 

2.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

 

아들은 아버지의 모든 것이다. 아들의 혼인잔치는 아버지에게 더 없는 기쁨의 자리이다. 주님은 우리 인간의 구원을 이렇게 혼인잔치로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더없는 기쁨이 있는 자리에 초대되었는데, 사람들은 그 중요성을 알지 못한 채 모두 자신들의 일에 골몰하고 있어서 그 초대에 응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왕의 기쁨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 나라의 백성이면서도 왕은 그들에게 아무런 존재감이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그들은 왕의 잔치 초대장을 받고도 그들이 평소하는 일을 위해 그 초대장을 찢어버렸고, 심지어 초대장을 가져온 종들을 죽이기까지 하였다.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며, 지금은 하나님의 대변자를 자청하고 있는 종교지도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인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에 대한 관심은 없다. 도리어 그 자리를 이용하여 세속적인 욕망을 채우는데 더 큰 관심을 두고 있고, 하나님은 그저 들러리일 뿐이다. 그들에게는 그런 들러리 서주는 하나님이 필요하였지, 정말 권세를 가지고 자신들을 지배하는 왕은 필요 없었던 것이다. 아니 거추장스러웠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몰랐던 것이 있다. 왕은 그렇게 무시해도 좋은 무능력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왕은 그들에게 군사를 보내었고, 그들을 심판하였다. 하나님은 인간이 무시한다고 해서 무시되거나 부인한다고 해서 존재하시지 않는 분이 아니다. 왕의 초대잔치에 참여하는 자에게는 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지만 이를 거절하는 이에게는 준엄한 심판이 임하게 된다.

 

3. 왕의 잔치에 초대된 사람들

 

처음 왕의 잔치에 초대된 이들이 왕의 잔치에 참여할 자격이 없는 자들로 밝혀지자 초대 대상이 달라졌다. 왕은 종들을 시켜 사거리에 나가 만나는 사람들이 누구든지 모두 왕의 잔치에 초대하였다. 생각해보라. 길을 지나는데 왕의 신하가 다가와 왕의 잔치 초대장을 내밀려 정중하게 모시겠다고 한다. 그 자리에 갈 자격이 되지 않지만 그런 것은 문제 없다고 한다. 혹 이 초대장이 위조된 것인가 살펴봐도 분명이 왕의 어인이 찍힌 확실한 초대장이다. 긴가민가 하고 가봤는데 정말 초대된 것이 맞다. 놀랍게도 그는 왕의 잔치 자리에 지금 있는 것이다. 꿈인가 생시인가? 그 기쁨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아마 로또 맞은 것보다 더 큰 횡재를 했다 생각할 것이다. 왜냐면 로또를 맞았다고 왕의 잔치에 초대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금생의 영광이며, 가문의 영광이다. 그 기쁨을 얻은 것이다. 게다가 가봤더니 그 잔치에 입을 예복까지 준비되어 있다. 선물도 필요없다고 한다. 그저 빈손으로 왕의 초대에 응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사실 왕이 필요한 선물이 있다고 한 들 내가 가진 것으로 그것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 왕은 그런 선물 필요없고 그저 이 잔치 자리에서 즐기라고 한다. 자신의 아들이 장가가는 그 즐거움을 함께 나누자고 한다. 이렇게 초대된 사람들이 바로 여러분이며, 그곳이 바로 천국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람이 있다. 왕이 준 예복을 입지 않은 것이다. 그는 왜 예복을 입지 않았을까? 아마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이 옷도 왕의 잔치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 정도면 왕의 격식에 어울리지 않을까? 그러니 굳이 옷을 갈아입을 필요가 있을까? 착각도 자유라지만 정말 엄청난 착각을 한 것이다.

 

또 이런 상상을 해볼 수도 있다. 그는 정말 게으른 사람일 것이다. 너무 게을러서 옷을 갈아입기가 싫었던 것이다. 옷을 갈아입으려면 내 옷을 벗어야 하는데, 이것이 싫고, 또 예복을 입어야 하는데 이것도 싫은 것이다. 잠19:24 “게으른 자는 자기의 손을 그릇에 넣고서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그런데 이렇게 게으르면서 고집이 세다. 그 고집을 꺽지 않고 그는 예복 입기를 거절한 채 잔치 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게으른 자는 왕의 잔치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게 완고하여 고집을 꺽지 않는 자도 왕의 잔치에 어울리지 않고, 자기 잘난 맛에 자기 판단대로 착각하며 사는 사람도 천국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천국에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며 후회의 가슴을 치며 살아갈 것이다.

 

이 예화를 통해 다시금 우리에게 던지는 주님의 질문에 답해보라.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분인가?

 

 

 


by 코이네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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