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마태복음22장]부활을 모르는 무식한 사두개인에게

코이네 2015. 9. 23.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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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모르는 무식한 사두개인에게

본문 : 마태복음 22:23-33

 

 

 

예수님에게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계속해서 그 권위를 부정하고, 예수님을 함정에 몰아넣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마 21:23~27)은 예수님의 권위가 어디서 왔느냐며 시비를 걸었고,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은 로마에 바치는 세금으로 예수님을 시험하였다. 그리고 사두개인들은 부활 문제로 예수님을 시험하였다.

 

당시 사두개인들은 종교 지도자이면서 유대를 다스리는 정치지도자들이기도 했다. 그들은 부유했고, 기득권을 갖고 있었고, 현세적이며, 세속적인 것을 중시하고 이를 추구하는 신앙관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영적인 차원과 부활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예수님은 계속해서 부활을 말씀하셨기 때문에 사두개인들의 입지가 축소될 위험이 있었기에 그들은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비방하고, 또 모함에 빠뜨리려고 했던 것이다.

 

1. 부활이 있다면

 

사두개인들은 당시 유대의 수혼법을 빌미로 예수님께 도전장을 내밀었다. 수혼법에 의하면 한 여인이 일곱 남편을 맞았는데, 부활하여 천국에 갔다면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사두개인들이 예로 든 이 여인은 사실 토빗이라고 하는 외경에 나오는 ‘사라’라는 인물이다. 그들은 전래되어 내려오는 이야기에서 실례를 찾은 것이다. 그리고 그 사라라는 인물을 통해 부활이 있다면 그 사라는 천국에서 일곱 남편을 거느리고 사는 것입니까? 라면 부활을 은근히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얼토당토 않은 부활 이야기로 사람들을 현혹시키지 말라는 경고를 하는 것이다.

 

2. 이 무식한 사람들아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을 향해 무식하다고 면전에서 면박을 주고 있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기에 오해하였다” 며, 대놓고 이 무식한 놈들이라고 면박을 준 것이다. 이렇게 주님께서 사두개인들에게 면전에 대고 야단을 치는 이유가 있다.

 

첫째는 그들의 비인간적인 태도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논리를 논증하기 위해 한 여인의 비참한 현실을 외면하였다. 그들에게는 일곱 남편을 여의고 잘 길이 막막해진 불쌍한 여인은 보이지 않고, 그저 그들의 논리에 이용할 대상이 필요할 뿐이다. 신앙이 온전하지 않으면 사람이 보이지 않고, 그저 자신들의 교리와 신념, 자신들이 이익을 위한 이용물만이 있을 뿐이다. 주님은 이들의 이런 태도를 개탄하신 것이다.

 

둘째, 그들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하고 있다. 주님께서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고 있다고 한 그대로이다. 그들은 부활을 그저 환생이나 지금 이 세상이 계속 이어져 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천국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같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공간과 시간과 육체의 제약을 받는 그대로의 또 하나의 세상이 있는 것쯤으로 생각했기에 그들은 굳이 그 천국에 갈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3. 부활한 몸

 

예수님은 우리가 부활하여 살아가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설명하신다. 부활하여 간 그 세상은 지금 이 세상처럼 시집가고 장가가고 아이를 낳아야 존재하는 그런 세상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영생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에 죽음이 없고, 또 결혼해야 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지금 이 몸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부활체를 갖고 살아가는데, 이는 천사와 같은 것이다.

 

천국에서 우리는 거듭난 인생을 살아간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그 어떤 것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빛나는 모습으로 변하였듯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흰옷을 입고, 거룩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다.

 

4. 살아계신 하나님

 

하나님은 산자의 하나님이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은 아브람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은 산 사람인가? 죽은 사람인가? 우리의 세계 속에서는 그들은 죽은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지금도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들이다. 천국은 죽는 사람이 가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산 사람, 살아 있는 사람,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곳이다. 그것이 바로 부활이다.

 

그렇기에 천국은 우리가 그저 육신으로 죽어야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 안에서 그 사랑을 힘입어 살아가는 사람들은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이 주인되시는 그 천국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육적으로 죽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지금 천국을 살고 있으며, 또 앞으로도 그 천국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by 코이네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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