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특별하다
본문 : 고린도전서 1장 1절 - 9절
설교자 : 박동진 목사
1. 특별한 당신에게 (시)
사랑할 땐 알아두세요 / 월요일 아침엔 전화를 해서 힘을 주세요 /
한주가 새롭게 열리게돼요.
화요일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주세요. 더욱 반가워져요.
수요일엔 비가온다면 장미꽃 한송이를 선물해주세요.
특별한 사람이라는걸 알게 될테니까요.
목요일엔 하루종일 생각하다 저녁에 전화해주세요. 그리움을 가득 담고서요.
금요일엔 주말의 약속을 얘기하세요.
하루가 싱그러운 기대감으로 채워지도록...
토요일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주세요. 귀중한 주말을 소중히 여길수 있도록...
주일엔 한번 혼자계셔 보세요. 서로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느낄수 있도록...
사랑하는 사람의 생일이오면 그 사람의 부모님에게도 선물을 함께 해드리세요.
내가 사랑하는 당신을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음.....KISS 하신적 있다면 그날을 꼭 기억하세요.
내가 육체적인 즐거움을 찾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소중한 약속이 된다는 걸 가슴깊이 간직할수 있도록....
대신 맨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시간이 갈수록 날짜와 함께 서로의 사랑도 계산될까 두려우니까요.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어할 때 항상 함께 있을수 있도록 애써보세요.
그 사람은 그순간 그 많은 사람중에 당신을 찾는 것이니까요. 특별한 당신을 말이죠.
사랑하는 사람의 친구들에게 잘대해 주세요. 내가 사랑하기전에 그사람을 소중히 아껴 주었던 사람들이니까요.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이와 비교하지 마세요. 내가 내 사람을 비교할때
내 사랑도 나를 남들과 비교할테니까요.
잊지마세요. 서로가 서로에게 지금 이대로가 가장 소중한 모습을...
우리는 누구나 좀 더 특별한 존재가 되고자 합니다. 특히 현대 사회는 특별해지고자 하는 신드롬에 걸려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남보다 특별한 능력을 갖고 특별하게 살고, 특별하게 보이고, 또 특별한 대우를 받고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우리 모두가 원래 특별한 존재였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 우리에게 중요한 특별함인데, 이것은 잃어버리고, 도리어 별로 중요하지 않는 특별함을 갖추기 위해 온 인생을 허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성경은 먼저 하나님의 창조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단 그 만드는 과정부터가 다릅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에 만들어졌지만 사람은 하나님께서 손수 흙을 빚으셔서 만드셨고, 그 속에 생기를 불어 생명을 주신 존재입니다. 또한 그 속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심어 주어 사람을 영적인 존재가 되게 하였으며,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을 다스리고 잘 관리하는 능력과 사명을 주셨습니다. 또한 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받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 속에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관심이 너무 특별해서 사람들이 타락해서 멸망할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자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 모든 사람을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사람의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에게 우리는 그렇게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로마서 8장 29절에서는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맏아들이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형제로서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특별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순간 여러분은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 속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 가족의 한 식구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은 그러한 우리의 특별한 모습을 좀 더 자세하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성령께서 여러분이 하나님께 얼마나 소중하고 특별한지를 깨닫게 해주시기를 원합니다.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먼저 고린도 교회에 대해 살펴봅시다.
고대의 고린도는 고대 그리이스 시대에 매우 유명한 도시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아주 풍요로운 도시로 조선, 상업, 무역도시로 유명할 뿐 아니라 그림과 조각의 본 고장이었다고 합니다. 신약시대에는 아가야는 로마 행정구역의 수도였으며, 총독의 거주지였습니다. 사실상 바울 시대의 고린도는 그리이스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러나 너무 부를 숭배한 나머지 여러 종교가 혼합되어 서로 분쟁을 일으켰으며, 신전에는 창녀들이 들끓어 마침내는 악덕의 대명사로 타락의 대명사로 불리워졌습니다.
이런 고린도에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진 것은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 지금의 아테네에서 이 도시를 찾아 전도할 것을 결심하였고, 브리스가와 아굴라라, 디모데와 실라 등의 훌륭한 동역자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고린도 복음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 유대인의 회당에서 유대인과 헬라인을 대상으로 성경을 강론하다가 유대인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자 회장 옆 디도 유스도의 집을 중심으로 옮겨 전도하게 된 것이 고린도 교회의 설립배경입니다. 이런 경위에 따라 설립된 고린도 교회는 점차 여러 가지 내외적인 문제와 신앙 윤리적인 논쟁으로 인해 일대 혼란을 겪게 되었는데 그 심각성은 바울이 본 서신을 기록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요즘 교회가 타락했느니 힘이 없느니 생명력을 잃었느니 하는 비판을 많이 하지만 고린도 교회에 비하면 굉장히 준수한 수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 전후서를 읽어보면 당시 고린도 교회는 심한 분열의 위기에 놓여 있었고, 성도 간에는 서로 세상 법정에서 다툼을 일삼았으며, 엄청난 영적인 체험을 가졌지만 이를 소화할 능력이 없어서 영적인 혼란에 싸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근친상간의 매우 부도덕한 일들이 교회 내에서 자행되었고, 목회자의 권위가 땅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정말 교회가 가질 수 있는 모든 문제의 집합소라 할 수 있는 것이 당시 고린도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주의해서 보아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 투성이의 고린도 교회를 향해 바울은 2절에 하나님의 교회라고 부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이러한 엄청난 문제를 안고 있는 고린도 교회였지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하나님의 교회이며, 여전히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하나님께로 부여받은 사명이 있는 하나님의 교회라는 사실입니다. 지금은 굉장한 문제를 안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나몰라라 하고, 그들을 내팽개쳐 버리지 않고, 하나님의 교회로 사랑하시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즘은 자녀를 많이 두지 않는 추세이지만 예전에는 형제들이 많았습니다. 저도 4남매의 장남이고, 지금은 4남매를 두고 있습니다. 키워보니까 넷이 가장 적당한 것 같아요. 형제들이 많다보면 잘 나가는 자녀도 있고, 속상한 자녀도 있습니다. 물론 그 자녀가 좀 잘나가는 아이면 부모가 좋죠, 그래도요 부모에게는 잘나가나 못나가가 다 같은 자식입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듯이 그가 그 부모의 자식인 이상 그는 그 부모에겐 특별한 존재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부흥하는 훌륭한 교회가 있는 반면 이렇게 문제 투성이의 교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문제 투성이의 교회도 하나님의 자녀들이기에 그 관심과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도 적용되는 부분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상 여러분은 잘나도 못나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 속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에서 특별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이름을 얻었습니다. 바로 성도라고 하는 이름입니다.
3. 성도
성도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해지고,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임하는 사람입니다.
2절에 보니까 성도에 대해 두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해진 사람이며,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가 하나님께 용서되었고,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함을 본받으며 살아가고 있고, 마지막 날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서게 된다는 뜻입니다. 즉 거룩하다는 말에는 이렇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즘 우리가 순 공부시간에 계속해서 배우고 있는 ‘칭의, 성화, 영화’의 교리가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는 부분입니다.
성도에게는요 특별한 혜택이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임하게 됩니다.
4.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으로 서다
8절에 보니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으로 설 수 있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비전이 특별함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삶의 비전이란 내가 누구를 위해서 사는 존재인가? 어떤 사명을 갖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사람으로 인정되기를 원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사명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묘비명에 이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었다는 기록을 가장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하나님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새겨져서 하나님이 기억하는 사람이 되길 소망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성공에 대한 특별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입신양명, 출세하는 것이 최고의 성공의 기준이지만, 우리의 성공의 기준은 차원이 다릅니다.
세계적인 핵물리학의 권위자이자 우리나라 과기처 장관을 지내시고, 지금은 호서대 총장으로 계시는 정근모 박사님은 어렸을 때 어머니가 매우 편찮으셨습니다. 그런데 그가 초등학교 6학년일 때 당시에는 초등학교 국가고시라는 것이 있었는데 여기에 자신의 학교 대표로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어머니는 병든 몸을 이끌고 손수 연필을 깎아주면서 네가 일등해서 신문에 크게 네 이름이 날거다라고 격려해주셨습니다. 박사님은 그 연필로 열심히 시험을 쳤는데, 그 동안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며칠 후 국가고시 발표가 있는 날 신문에 수석자 이름에 정박사님의 이름이 올라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신문을 들고 어머니의 산소에서 통곡하였다고 합니다.
이제 시간이 흘러 정박사님이 세계적인 유명한 석학이 되고, 그가 아주 대학 석좌교수로 오자 언론이 그를 집중 인터뷰하며 물었습니다. 한국에 온 이유는 무엇이며, 과학자로서의 포부는 무엇입니까?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우리나라의 민족화합을 위해 기도하러 왔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하나가 되는 길입니다. 마음을 합해야 된다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 매일 기도할 것입니다.
초등학교 때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이름이 신문에 크게 나는 것을 소망하였던 그 사람이 예수를 영접하고 난 뒤 그의 포부는 자신의 모든 명예와 영달을 뒤로 한 채 민족화합을 위해 기도하는 자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특별한 것은 항상 그 기준이 마지막 날 하나님의 나라에 내가 합당한 인생을 살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 잘먹고 잘사는데 만족하며, 어떻게하든 이 행복을 얼마나 더 많이 누리느냐에 삶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날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심판하실 그 자리에서 부끄럼없이 살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은 삶의 방식이 특별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이 특별한 삶의 방식을 두 가지로 표현한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라는 말로 대변할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늘 자원을 개발하며 그 자원을 활용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목표이며, 삶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 무엇보다 가장 높은 가치는 지금 주님과 함께 하느냐에 있습니다. 천만금이 들어오고 부귀영화가 우리에게 있다할지라도 지금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지 않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 가치도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정근모 박사님의 가정 이야기를 하나 더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정박사님의 큰 아들 이름이 진후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의 신장이 나빠져서 신장 이식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검사 결과 아버지 정박사님의 신장을 이식하게 되었고, 어려운 고비를 몇 차례 넘긴 후 진후는 건강을 찾아 다시 학교에 복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학교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치료를 위해 복용하던 약이 우울증을 유발하였고, 또한 학업 진도를 따라가지 못해 심한 열등감에 시달리게 되다 두 번이나 자살을 기도하였습니다. 의사의 말이 다른 특별한 방법이 없고, 오직 자기 스스로 내 삶은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섭리에 의해 태어나 어떤 임무를 부여받았으며, 그래서 스스로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진후는 차를 몰고 가다 다시 자살을 시도하였습니다. 길 낭떠러지로 차를 운전하여 차는 절벽아래 떨어져버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차는 절벽 아래 있는 자그만 소나무에 걸리게 되고 다행히 목숨을 건졌습니다. 병원에 있는 진후가 이런 말을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절 많이 사랑하시나봐요, 어떻게 그 작은 소나무에 제 차가 매달려 있었겠어요. 그건 분명 하나님의 손길이 저를 보호하고 있는거예요. 그렇죠?
이후 진후는 많이 달라지기 시작하더니 자신의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찾고 또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정 박사님은 이 일 이후로 간절한 영적인 갈급함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나도 좀 더 절실한 은혜의 체험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 부흥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데, 그 마음 속에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아들아 너는 네 아들에 대해 감사해본 적이 있느냐? 네 아들이 너를 위해 십자가를 졌는데 너는 한번이라도 아들에 대해 감사해본 적이 있느냐? ” “ 주님 내가 어떻게 아들에 대해 감사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건 전혀 생각해본 적도 없습니다. 제 아들은 나의 도움이 없으면 제 콩팥까지 나눠가진 것을 주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네가 비록 효자였다고 한들 부모님께 드린 것이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세속적인 기쁨 외에 무엇이 있었던가? 영생의 소망, 구원에 대한 확신을 드린 적이 있었던가? 그런데 네가 지금껏 큰 짐으로 생각해왔던 진후때문에 너는 너와 네 가족이 구원을 받게 되지 않았는가?”
정 박사님은 아들을 볼 때마다 하나님 내가 무슨 큰 죄를 지었길래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라고 생각하였는데, 도리어 이러한 하나님은 이런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되게 해주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를 합시다.
여러분은 특별한 사람입니까?
정근모 박사님은 이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첫째, 내 삶의 목표가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인가, 만약에 이런 생각이 없으면 직장, 가정에서 행하는 모든 것이 진리에서 벗어나 의미를 잃게 된다.
둘째, 하나님께 봉사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겠다는 생각이 결국 나의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봉사를 하는 실재적인 명령으로 나타나는가?
셋째, 내가 갖고 있는 지식과 기능, 시간이 곧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느끼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과 부와 지식을 관리하고 있을 뿐이다. (*)
by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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