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 칼럼

청소부와 결혼한 의사

코이네 2019. 7. 9.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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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부와 결혼한 의사

 

 

이번 글 제목을 ‘청소부와 결혼한 의사’로 할지 ‘의사와 결혼한 청소부’로 할지 잠시 고민했다. 의사를 앞에 두는 게 좋을지, 청소부를 앞에 두는 게 좋을지. 무엇을 앞에 두느냐에 따라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의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잠시 고민하다 말았다. 이러나저러나 사람들 주요 관심은 의사가 왜 청소부와 결혼했을까? 뭔가 예사롭지 않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과 능력 있는 의사의 간택을 받은 운 좋은 청소부는 어떤 사람일까? 정도로 생각하다 말 것이다. 그리고 좀 더 현실적인 사람이라면 ‘우리 사회에서 이런 일도 있을까?’ 의문을 제기하며 팩트 체크부터 할 것이다.

 

결혼사진@Pham Trung Kien


사실 우리 사회에 의사와 청소부가 결혼하는 경우를 찾아보긴 쉽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 사회에서 직업의 귀천은 엄연히 존재하고, 직업과 재산으로 인한 신분의 벽 또한 크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민주사회에 살고 있지만 차별이 엄연히 존재하는 계급사회를 살아가는 것이다. 이번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이런 우리 사회의 아이러니한 현실을 제대로 조명했고, 그래서 대중적으로 깊은 공감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청소부와 의사가 결혼한 이야기는 덴마크에 살고 있는 한 한인이 자신이 경험한 사실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우리에게 알려졌다. 그는 여기서는 이런 결혼이 드물지 않은 일이라 놀랐다며 자신이 경험한 문화충격을 적었다. 그 글에 보면 덴마크뿐 아니라 사회복지가 잘 돼 있는 유럽 나라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직업에 대한 귀천의식이 없다고 한다. 더 많은 보수, 더 많은 존경을 받는 직업이 따로 있지 않다. 의사도 청소부도 모두 이 사회를 유익하게 하는 소중한 직업이며,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의사의 노동력이나 판사의 노동력이나 청소부의 노동력은 그 가치가 동일하게 소중하고, 그래서 버는 수입도, 생활 수준도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들은 사람을 부를 때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지 직함을 부르지 않으며, 직장이 아닌 동네 여가클럽에서는 누구나 동등하게 어울린다.

 

이 글에 다양한 댓글이 달렸다. 그중에 ‘그렇다면 누가 그렇게 어렵게 공부해서 의사가 되려고 하겠는가? 라는 내용에 많은 공감이 있었다. 그런데 유럽 사회에도 의사와 변호사 등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선호하는 직업군이다.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어서 의사가 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적성에 맞고, 병든 사람을 치료하고자 하는 사명감이 있는 사람이 의사가 되려 한다. 청소부도 마찬가지다. 이것저것 해보다가 능력이 안 돼서 청소부라도 하는 것이 아니라 청소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청소 전문가가 된다. 이들은 이렇게 자신들이 선택한 일에 자부심을 갖고 일하며, 또 남이 하는 일과 비교하지 않고, 서로 존중한다. 이런 사회이기에 의사와 청소부가 결혼하는 게 드물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선진 유럽의 교육제도를 부러워한다. 전인교육과 인성교육 그리고 적성에 따른 직업교육 등은 우리 교육의 문제를 해결할 좋은 대안으로 여기고 있다. 그래서 교육개혁, 혁신교육을 부르짖으며 엄청나게 많은 실험과 제도를 고쳐보았지만 제대로 성공한 적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사회는 좋은 대학, 좋은 직업, 좋은 보수, 더 우월한 사회적 지위가 마치 사슬처럼 연결돼 있고, 어떻게 하든지 더 나은 대우를 받기 위해 오늘도 우리 아이들은 밤을 새워가며 공부하고 있다. 공부하는 목적이 여기에 있으며, 이를 아주 당연하게 여긴다. 이것이 기본 바탕이다.

 

지금 우리나라 교육은 아주 큰 딜레마에 빠져있다. 남보다 더 잘되기 위한 경쟁교육의 폐해가 나날이 커져서 학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까지 왔다. 경쟁교육을 버려야 새로운 대안이 열리는데, 교육의 기본 바탕이 이렇다 보니 포기하거나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 이 글은 제가 양산시민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입력 : 2019년 06월 18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