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 칼럼

똑같이 준 한 데나리온, 포도원 주인의 갑질인가?

코이네 2019. 12. 9.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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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말씀 중 일용직 근로자에 대한 것이 있다. 한 인심 좋은 포도원주인이 일군을 구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인력시장을 찾아 필요한 일군을 구해 일을 시켰다. 이 주인은 점심 때도 가서 일군을 구했고, 해지기 전에도 가서 일군을 구해왔다. 그리고 일을 마친 후 임금을 지불하는데 몇 시간 일하지 않은 사람에게 하루 일당인 한 데나리온을 지급했고, 아침 일찍 와서 일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한 데나리온을 지급했다. 그러니 아침 일찍 온 사람들이 불평을 했고, 그들에게 주인은 이렇게 말한다.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20:13~15)

 

 

 

예수님의 이 말씀을 처음 접했을 때 사실 많이 당황하였다. 이건 뭐 포도원주인의 신종 갑질인가 싶은 생각이 먼저 든다. 만일 내가 저 포도원에 일찍 고용된 사람이라면 똑같은 불평을 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일을 많이 한 사람에게 좀 더 나은 대우를 해주어야 하지 않습니까? 왜 일을 조금밖에 안한 사람과 같은 대우를 하는 겁니까? 그런데 집 주인은 그 불평이 부당하다고 말한다. “처음에 계약한 대로 일당을 정상적으로 지급하지 않았습니까? 일을 덜한 사람에게 당신과 같은 임금을 지불했다고 왜 부당하다고 합니까? 내 것 가지고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왜 그럽니까?” 이거 참 아리송하다. 그러니 하나씩 따져보자.

 

주인은 일찍 온 사람과 하루 한 데나리온에 계약했다. 그리고 계약한 대로 임금을 지불했다. 일찍 온 사람과 포도원 주인과의 관계에서 딱히 잘못된 것은 없다. 문제는 늦게 와서 별 일 하지 않고도 하루 임금인 한 데나리온을 받은 사람과 비교했을 때 억울한 것이다. 늦게 온 사람이 자신과 동일한 임금을 받았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그 사실을 알았고, 그 때문에 자신은 좀 더 나은 대우를 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고, 지금 그 기대가 무너져서 속상한 것이다. 솔직히 나라도 속상했을 것 같다.

 

그런데 다르게 생각해보자. 사실 주인이 좋은 일 한 것 아닌가? 모두가 하루 일 해서 하루 먹고 사는 참 어려운 형편에 놓인 사람들이다. 하루 한 데나리온을 벌어야 겨우 한 가족이 입에 풀칠하고 살 수 있다. 그런데 늦은 시간에 일자리를 구해서 그나마 일을 하긴 했지만, 한 데나리온을 벌지 못한다면 그 가정은 고픈 배를 움켜쥐고 굶주림에 허덕이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포도원 주인은 이 가련한 사람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들에게 선을 베풀었다. 주지 않아도 될 돈을 더 준 것이다. 이 사실만 본다면 이 주인은 이 척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미담의 주인공이다. 칭찬받아 마땅할 일이지 비난받을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만일 집주인이 먼저 온 사람부터 임금을 지불하기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그들은 아주 행복한 얼굴로 자신이 받은 임금을 받아 자랑스럽게 주머니에 넣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아침부터 일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감사하며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에게 뭘 사가지고 갈까? 아니면 간단하게 쇠주 한 잔 하면서 오늘 일한 여독을 살짝 풀고 갈까? 뭐 그런 행복한 고민을 할 것이다.

 

그런데 자기 뒤로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저 사람들은 얼마를 받을까? 이 사람이 선량한 마음을 가졌다면 그는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포도원 주인이 마음을 좀 더 써서 저 사람들도 나와 같은 임금을 받으면 좋겠다. 저 사람들도 다 가족이 있는 사람들인데.. '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내 것을 받았으니 그걸로 만족할 일이지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든 그건 상관할 일이 아닌 것이다.

 

주인이 늦게 온 사람부터 임금을 지불한 이유가 뭘까? 바로 이런 것 아닐까? 네 인생만 신경 쓰지 말고 너보다 못하고, 너보다 운도 없고, 너보다 처지가 가련한 저 사람들이 바로 네 이웃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을 너와 똑같이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한다. 그래서 그들에게도 동일한 임금을 지불한다.

 

그런데 일찍 온 사람들은 불평한다. 그리고 따진다. ? 그들과 왜 같은 대우를 해주냐는 것이다. 나는 그래도 저 사람들보다 당신에게 더 많은 이익을 끼쳤으니 더 받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내가 일을 더 했는데 왜 나에게 이럴 수가 있냐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하루 종일 한 데나리온의 일만큼 했다는 걸 순간 잊어버렸다. 그가 계약한 임금은 한 데나리온이며, 주인에게 자신이 일한만큼 충분히 받았다. 하지만 그는 순간 착각에 빠진다. ‘난 더 받아야 해

 

 

주님은 이 비유를 천국에 관한 것이라 하였다. 천국은 말이지..그러니까 저 불평하는 사람들과 같은 심보를 가지고는 참 살기 어려운 곳이라는 것이다. 나는 남보다 뭔가 좀 더 나은 대우,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겠다는 심보, 그리고 다른 사람의 행운, 남이 잘되는 것이 축하할 일이 아닌 불평거리가 되는 심보를 가지고는 살아가기 어려운 곳이라는 것이다. 대신 나보다 처지가 어려운 사람도 나의 이웃이라 여기고 그 사람의 어려움을 동정하고, 그 이웃의 행운을 기뻐하고, 그 이웃과 함께 살아가야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기 참 편한 곳 그 곳이 천국이라는 것이다.

 

언젠가 한 고위공직자가 자신의 임금과 시청 환경미화원의 임금이 같다는 사실에 분개한 적이 있다. 그 덕에 그는 청소부만큼 시민의 도움이 되는 그런 열심히 일하는 공직자가 되라는 핀잔과 함께 엄청난 욕을 먹었다. 이 사람은 그래도 난 청소부보다 나은 사람인데 같은 대우를 받는 게 억울했던 것 같다. 그러기에 그런 말을 했고, 그런 말을 하면 사람들이 동의해줄 줄 알았는데 도리어 욕을 먹는 것이 이해가 되질 않았을 것이다. (이런 걸 보면 우리 사회가 참 많이 건강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심보 가지고는 천국에서 살기 힘들다는 걸 알아야 한다. (*)

 

by 코이네 박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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