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 묵상

[시131:1] 젖 뗀 아이처럼

코이네 2020. 11. 11.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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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 뗀 아이처럼
성경: 시131:1-3 

소토교회 수요가정예배 말씀



  본시는 하나님을 순전한 마음으로 바라고 그분 안에서 참평안을 얻었던 다윗의 시이다. 다윗은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신의 충만하고 안정된 심경을 어머니 품속에서 젖을 먹는 어린아이의 지복한 상태에 비겨 표현하였다. 실로 신앙이 깊어가면 살수록 그 심령은 하늘의 신령한 평안을 더 깊이 맛보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면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는 어떤 삶의 특징을 가지는가?

 

1. 교만을 버린다(1)

  

 (시131:1)“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교만은 눈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자신의 위치나 분수를 넘어 필요 이상의 높은 곳을 바라보는 순간부터 교만은 시작되는 법이다. 

 

대표적인 것이 하늘에서 좇겨난 사단이다. 하늘의 천사가 어찌하여 사단이 되었는가? 교만하여 하나님의 보좌를 넘보고 하나님처럼 높아질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땅으로 좇겨난 것이다(사14:12-20).


또한 최초의 인간이 그러하였다. 사단의 꾀임에 빠져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지려는 욕심에, 다시말해 하나님처럼 전지해 지고픈 욕심에 그만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는 교만을 부렸던 것이다(창3:5). 결국 하나님을 의뢰하는 행위가 아니라, 대적하는 일이었다.
 

(잠6:17)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이 죄악이라고 하였다.

잠16:18절에서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하였다.

이렇게 교만이 무서운 죄악이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지 않았다. 그 눈이 높지 못하다고 하였다. 그래서 3절에서, 다윗은 오직 교만을 버리고 겸손함으로 주의 뜻을 바라고 사모하며 주를 의뢰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주님을 의뢰하는 자는 교만하지 않고 겸손한 법이다.

 

2.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는 역량밖의 일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1).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1)고 하였다.

여기서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이란? 곧 인간의 역량과 능력의 한계를 벗어나서 그 이상의 일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것을 가리킨다. 한마디로 인간의 분수를 모르고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노력이다. 주님께서 나타내주시거나, 보여주시지 않은 그 이상의 하늘에 속한 것을 알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은 결국 하나님을 의뢰하지 못하고 불신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중세에 유명한 종교 개혁자, 칼빈은 말하기를 ‘성경이 가는데 까지 가고 성경이 멈추는데 멈추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것이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의 바른 말씀 묵상방법이다. 하나님이 보여주시고 말씀하신 것을 묵상하는 것에 즐거워 할뿐, 그 이상의 신비에 속한 것을 논쟁하고 토론하는 것으로 소일하지 않는 것이다.

3.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는 주 안에서 고요와 평안을 얻는다(2).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는 시련과 곤고함 중에서도 평안함을 얻는다. 마치 젖뗀 아이가 엄마 품에 있음과 같다. 마치 어머니 품에서 포만감에 고요하게 잠든 것과 같이 여호와를 의뢰하는 다윗의 심령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바울이 풍랑만난 배에서 하나님을 의뢰함으로 평온함을 되찾았다. 또한 빌립보 감옥에서도 하나님을 의뢰함으로 기도하고 찬송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것이다(행16:25).

 


성도는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가 될때에 놀라운 축복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으면 많은 시련과 혼돈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된다. 세상 사람들은 돈이나, 학식, 명예와 가문을 의지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일순간적인 것이다. 아침에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것들이다. 그러므로 의지할 대상이 못된다. 그것을 의뢰하는 자는 허무와 낭패를 당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원불변하신 하나님을 의뢰해야 한다. 그럴 때에 놀라운 축복 가운데로 들어가며, 젖 뗀 아이가 그 어머니의 품에 있는 것 같이 든든하고 평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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