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찬송하지 않을 수 있을까?
본문 : 시147
설교 : 박동진 목사
우리가 살다보면 궂은 일도 있고, 또 마음이 즐겁고 행복한 때도 있습니다.
잘 되는 일도 있고 안되는 일도 있고, 잘 되다가도 막히기도 하고 또 막혔다가도 다시 열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생지사새옹지마’ 라는 말이 있는 것이죠.
그런데 사람들은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자신이 운이 좋다고 생각하고 또 일이 틀어졌을 때는 운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양반이고 대부분 남탓을 하거나 세상을 원망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원망하고 저주하기도 합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 하나님을 찾거나 감사하는 사람은 아마 그리스도인들 밖에 없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시편 147편을 지은 시인은 누구인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는 지금 아주 기분 좋은가 봅니다. 뭐랄까요? 행복에 겨운 것 같은 그런 즐거움과 흥겨움이 느껴집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첫 마디부터가 심상치 않습니다. 뭐라고 하나요? “할렐루야” 그리스도인들이 할렐루야 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심상치 않는 시작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좋은 일이 있을 때 할렐루야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이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시인은 이 특권을 유감없이 펼치고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1절)
자신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은 당연하며, 지금 어찌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 시인은 왜 이리 신이 났을까요? 무엇이 이 시인을 행복하게 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자신의 기쁨을 표현하고 있을까요?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2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범죄하였고, 그들은 나라를 잃어버렸습니다. 성전은 불탔고 성벽은 허물어졌으며, 백성들은 대부분 노예로 적군에게 끌려갔습니다. 무능력하고 타락한 왕은 혼자 살겠다고 도망하다 잡혀와서 눈이 뽑히고 그는 쇠사슬에 결박당해 끌려갔습니다. 그의 눈앞에서 그의 아내들은 강간을 당했고, 그 자녀들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왕의 이런 처참한 모습은 곧 나라를 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어야 했던 일들입니다. 나라 잃은 백성들, 그들은 그 설움의 모진 세월을 겪었습니다. 그런 중에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왔고, 성전을 다시 지었으며, 성벽을 세우고 흩어졌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하나둘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합니다.
안드레 지드(A.Gede)라는 유명한 작가는 탕자의 비유를 소재로 "탕자 돌아오다"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탕자는 아버지에게서 독립 자유인의 삶을 누렸습니다. 돈을 가진 자유인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이 따라다닙니다. 그러나 돈이 없어지자 사람들도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에게 남은 것은 굶주림이요, 고독이요, 돼지 같은 삶뿐이었습니다. 지드는 "탕자가 인생의 밑바닥에서 발견한 것은 아버지였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의 버림을 받고 나서 그리고 가장 비인간적인 상황에서 탕자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은 아버지와 아버지 집이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탕자와 같았습니다. 그들은 인생의 밑바닥에서 비로소 그들의 아버지인 하나님을 발견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아버지인데 그 때는 왜 그리 싫었는지. 하나님이 너무 속박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무섭고 엄한 아버지 아래서 어떻게 하든 벗어나는 것이 살 길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와 헤어졌습니다. 그러자 비로소 그들은 아버지가 보였고, 아버지가 그들의 희망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신이 나서 외칩니다. “할렐루야” 이 외침이 왜 그리 신선하고 행복한지. 소중한 것은 잃어봐야 그 가치를 안다고 했나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습니다. 잃어봐야 아는 어리석은 백성들.. 우린 왜 이리 어리석었을까?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3절)
그리고 그들은 놀랍니다. 그렇게 무섭기만 하고 또 엄하다고만 생각했던 하나님이 온 우주의 별을 지으시고 그 이름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부릅니다. 별의 이름을 기억하는 하나님은 당신의 손으로 지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집 나간 자녀들의 이름을 다 기억하고 또 부릅니다. 상심한 이들을 불러서 고쳐주시고, 그 상처를 하나하나 살펴주시며, 약을 발라주시고 싸매줍니다. 울컥 ~~ 우리가 오해하고 있었구나. 우린 하나님을 몰라도 너무 몰랐구나 ..
우리가 몰랐던 것은 또 있습니다.
“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10-11절)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아들은 잘 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늘 1등만 생각하고, 어떻게 하든 강하게 남들보다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강해야 했고, 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해 뛰어나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모두 착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그건 우리의 욕심이었고, 우리의 야망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두려움이었습니다.
우리의 욕심과 두려움이 만들어낸 허상이었고, 우린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는 자녀가 아버지를 존경하는 것처럼 공경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또한 그 인자하심을 알고 그 품에 안겨주길 바랐습니다. 그것이면 족했는데 우린 그걸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 품에 안겨 있을 때 우리 인생은 빛이 났습니다.
우리 아버지께서 그렇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는 우리가 잘 되길 바라시고, 또 우리를 위해 온갖 좋은 것을 아끼지 않고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이제야 이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찬양하며 감사합니다.
“그가 네 문빗장을 견고히 하시고 네 가운데에 있는 너의 자녀들에게 복을 주셨으며, 네 경내를 평안하게 하시고 아름다운 밀로 너를 배불리시며” (14-15절)
그렇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복되게 하십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찬양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by 박동진 목사(소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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