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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여성 생명수여자에서 노예로 전락하게 된 이유

코이네 2021. 8. 19.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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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여성 왜 노예와 같은 처지로 전락하게 되었나? 

 

인류역사는 한마디로 주종(主從)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남자는 고귀한 인격을 갖춘 인간으로 표출되고, 여성은 그 인격을 갖추도록 돕는 충실한 조력자의 역임을 감당하도록 종속되어 왔다. 한때 산업혁명을 계기로 근대시민사회가 형성되면서 여성들의 상태도 자유로워지는 것 같았으나, 결국 또다른 종류의 억눌림과 열등성이 강요되었을 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고대의 여성의 삶은 어떠했을까? 

 

고대시대 이전의 원시사회에는 집단혼을 취하는 집단가족이 편만해 있었다. 자식들은 모계의 재산과 신분을 상속 (모계계승) 하였으며,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되지 않았으며 거의 평등한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시기만 해도 여성들의 임신과 출산은 신성시 되었으며, 이런 사실은 초기 문화의 신상들이 어머니 여신상이었다는 점으로 입증된다.

 

생명 수여자로서의 여성은 모든 생명력의 상징이었다. 또한 이 당시는 수렵채집 사회로서, 여성은 생산과 재생산에 핵심적인 기능을 했다. 그들의 경제적 기여는 전체 식량의 60-80%를 차지했으며, 그 외에도 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만들기도 했다. 이와 같은 여성의 역할은 인류사회의 문화발달에 남성보다 더 중요한 기능을 했을 것이라는 추정조차 내려지게 한다.

 

그러나 원시시대 초기에 형성된 모계씨족은, 노동용구(勞動用具)의 진보와 더불어 내부의 경제생활과 공동체의 형태와 구조가 변화되었다. 즉 노동용구가 돌이나 나무 방망이에서 금속도구로 이행됨에 따라, 점차로 농경은 남자의 노동으로 바뀌고 여자는 직포노동을 중심으로 한 옥내노동을 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생산력의 발달은 여성과 남성의 역할을 크게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씨족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계급사회라는 새로운 고대문명의 시대로 이행하게 하였다.

 

고대 문명시대에는 모권제에 대신하여 부권제가 발달하고, 그와 함께 일부다처혼을 동반한 일부일처제가 확립되었다. 남성은 가족 가운데 주인이 되었다. 여성은 멸시받는 하녀가 되었으며, 남성의 정욕의 노예나 단순히 아들을 낳는 도구로 전락하였다. 이렇게 천대받는 여성의 지위는 점차로 치장되고 얼버무려졌으며, 때때로 완화된듯이 보였지만 결코 그것이 제거된 것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 여성은 노예의 일에 종사한 최초의 인간이었다. 남성중심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남성들은 자기의 우월성과 여성들의 열등성을 강조하게 되었으며, 사유재산제의 존속과 강화를 위해 가부장제를 확립시켜 나갔다.

 

특히 아테네의 경우 남성존중 - 여성경멸의 풍조는 더욱 확산되고 있었다. 여성은 오로지 집안에만 갇혀서 교제도 여성만으로 국한되었으며, 교육은 읽고 쓰기만 배울 뿐, 전적으로 사회와 격리되어 있었다. 고대 로마의 경우도 가족은 가부장적 집단이었으며, 남편 쪽 거주혼의 양태였다. 그래서 자식이 태어나면 곧 가부장의 의자밑에 두는데, 가부장이 아래를 보고 흡족할 때만 가족의 일원으로 양육되고 여자와 불구자들은 버렸다고 한다.

 

고대 중국에 있어서도, 농경사회에서 공업사회로 발달함에 따라 여성의 지위는 현저하게 저하되었다. 그 당시 혼인의 목적은 여성의 노동력을 획득하고, 자식을 낳으며, 남녀의 무분별한 성적 결합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여자는 결혼하면 그 종족 또는 가족의 소유가 되었다. 그리고 여자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시아버지, 시어머니, 남편이었다. 즉 남편은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혼할 수 있었다.

 

이혼의 원인으로 7(7), 7(7)이 있는 것은 모두 이 근본에서 나온 것이다. 여성을 억압하는 이러한 사회, 가족제도들은 고대를 지나 중세 봉건시대에 이르기까지도 계속 강화되어 갔다.

 

*위 글은 이승영 '기독교교육에 있어서의 여성관 정립에 관한 문제' 논문의 내용을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