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아이성의 패배, 물 같이 녹아버린 백성의 마음

코이네 2013. 2. 18.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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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7장, 아이성의 패배

 


 

아이성의 패배,

물 같이 녹아버린 백성의 마음
본문 : 수 7:1-15    2013. 2.17.

소토교회 주일낮 예배 설교

 


1. 여리고성의 승리와 아이성의 공격
 
지난 주는 설 명절이라 마태복음 14장의 말씀으로 설교했고, 그 전 주에는 여호수아 6장의 말씀을 통해 여리고성을 정복하게 된 신앙의 비결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여러분의 기억을 좀 더 돋우어드리기 위해 간략하게 말씀을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여리고성을 정복하기 위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6일은 입 다물고 조용히 여리고성을 한 바퀴 돌기만 하고, 7일째에는 일곱바퀴 돈 후에 제사장이 부는 나팔소리에 따라 고함쳐라, 그러면 그 성이 무너진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6일간의 침묵은 우리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려는 태도를 버리며, 내가 하나님의 일에 별 소용이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갖지 못한 우리는 불량품이라는 진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첫 출발입니다. 우린 마치 우리가 세상의 주인인 듯 살고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지어진 존재이고, 우리를 만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할 존재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있어야 하고, 우리는 하나님 안에 살아야 그것이 사람의 참 모습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면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놀라운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없는 이스라엘백성들은 단지 여리고성을 입 다물고 돌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할 때는 고함 한 번에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고함 한 번으로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능력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참 모습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능력으로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두 번째 거점 지역인 ‘아이성’으로 갔습니다. 아이성은 여리고에서 북서쪽으로 약16Km 떨어져 있고 해발 518m 가량의 산지에 위치한 인구 약 만 이천 정도의 작은 성읍입니다. 가나안의 견고한 요새 여리고성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약한 도성입니다. 그런데 여리고성을 정복한 이스라엘이 그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한 아이성을 정복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은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그 위기를 “그 마음이 물같이 되었더라”라고 표현합니다. 이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에 여리고성의 백성들, 그리고 가나안 족속들의 마음이 물과 같이 녹아서 두려움에 떨었는데, 이제는 그 반대가 된 것입니다. 도대체 왜 그들은 패배하고, 실패했을까요?

 

2. 엉터리 보고, 교만의 결과물

 

여호수아는 아이성을 정복하기 위해 그곳에 정탐군을 보내고 사정을 제대로 확인한 후 적당한 군사들을 배치하고 그들을 그 성에 보내었습니다. 정탐꾼들은 그 성을 살핀 후 그 성은 만이천명정도가 살고 있는 작은 성이고, 그 안에서 훈련된 군인은 3천명 정도이니, 우리가 삼천정도의 병사만 데려가도 쉽게 정복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런데 이 보고는 문제가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전쟁에서 공격하는 쪽이 방어하는 쪽의 3배 정도의 전력이 되어야 이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아이성을 정복하려면 최소한 1만명 이상의 군대가 동원되어야 합니다. 그런데다 아이성은 해발 500미터 이상의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 공격보다는 방어하기 쉬운 지형을 가진 아주 단단한 성이었습니다. 그저 몇 천명 정도가 올라가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성이 아니란 것입니다. 그런데 정탐꾼은 이런 모든 사정을 생략한 채 그저 2-3천명으로 충분히 정복할 수 있는 성으로 보고하였고, 여호수아는 이 보고대로 군대를 보냈으며, 처절한 패배를 맛보았습니다. 


이런 보고를 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요? 바로 이스라엘의 교만입니다. 여리고성도 무너뜨렸는데 아이성쯤이야 하는 그런 교만, 상대를 얕잡아 보고, 또 자신들의 능력을 과대평가한 것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을 착각하고 있는 지 알 수 있습니다. 여리고성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정복했는데, 그들은 우리 능력으로 우리 힘으로 정복했다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죠. 잠언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리고성의 교훈을 잊어버리고, 이렇게 교만에 찬 이스라엘은 이미 아이성의 전투를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3. 하나님께 물어보지 않은 여호수아

 

또한 여호수아도 이러한 이스라엘의 교만에 같이 빠져 있었습니다. 여러분 아이성 전투와 여리고성 전투에 중대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셨습니까? 여리고는 아주 강대한 성이어서 전쟁하기 전에 눈에 보이는 전쟁 준비 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아주 긴장한 채 준비한 전쟁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먼저 물어보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습니다. 이렇게 강한 상대 앞에서 그들은 겸손하였고, 신중하였으며,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이성은 굳이 하나님께 물어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보였습니다. 이정도는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충분히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착각인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아이성 정도야 우습다고 생각한 것이죠. 세상이 우습게 보인다? 아직 철이 없는 것입니다. 세상이 우습게 보이니 하나님께 묻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합니다.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참담한 실패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어느 분이 이런 말을 합니다. “50이 넘으니 세상 내 맘대로 안돼, 세상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마누라가 내 맘대로 됩니까, 자식이 내 맘대로 됩니까, 사업이 내 맘대로 됩니까, 나중에 보면 나도 내 맘대로 안 되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습게 여길만한 것이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하나님의 도움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요? 아직도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이 있습니까?

 

4.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았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정말 영적인 지도자입니다. 전투에 패배한 후 왜 이렇게 되었는가 전력 분석을 했고, 앞서 말한 것들이 원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면 다시 전투준비를 해서 이번에는 제대로 싸울 수 있도록 하면 됩니다. 겨우 36명 정도가 사망하였고, 60만 대군의 이스라엘의 전력은 그대로 있습니다. 충분히 아이성을 정복할 전력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하나님 앞에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쓰고, 장로들과 함께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합니다.

 

왜 그랬을까? 다시 싸워도 또 질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많은 군대를 동원하고, 전략을 잘 짜도 그 작은 성을 정복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이유가 뭘까요? 전쟁 중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백성들이 교만에 빠져있고, 자신도 하나님께 묻지 않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지금까지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는데 이번 전투에선 하나님이 전혀 움직이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이번처럼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아무리 전력을 제대로 정비하고 제대로 전투 준비해서 나가도 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이스라엘이 직면한 가장 큰 위기인 것입니다. 교만과 하나님께 묻지 않은 그런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더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죠.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하나님께 왜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으시며, 우리를 버렸느냐고 엎드려서 하나님께 회개한 것입니다. 

 

5. 탐욕과 온전히 바쳐야 할 것(헤렘)

 

그러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대답해주십니다. “이스라엘이 온전히 바친물건 때문에 범죄하였고, 이것은 나의 언약을 저버린 것이며, 이것을 멸해야 내가 다시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여리고성을 칠 때 그 성에 있는 모든 것, 금은동철과 짐승들과 모든 소유를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두 가증한 것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너희가 갖지 말고 그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라. 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히브리어로 ‘헤렘’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죽이다, 멸한다’는 뜻을 갖고 있고, 또 ‘봉헌하다, 구별하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죽여야 할 것, 마땅히 멸해야 할 것은 구별해서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온전히 바친 물건입니다. 11절과 12절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와의 언약을 어겨 이 온전히 바친물건을 도둑질하고 속여서 자기들의 물건 가운데 두었고, 죽이고 멸해야 할 것을 가지고 있으니, 그 때문에 그들도 죽을 것이 되었으며, 이것이 전쟁에 패한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헤렘을 도둑질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서기 전까지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세상 문화와 완전히 단절되어 살았죠. 그런 그들이 여리고성에 들어와 보니 어땠겠습니까? 산골 오지에서 살던 아이들이 서울에 들어섰을 때 가진 문화충격 이해하시겠습니까? 솔직히 눈이 뒤집어지는 것이죠. 자신들이 무너뜨려 정복한 여리고성의 물건들은 그 하나하나가 이스라엘 백성들 보기엔 예술입니다. 멸하고 싶은 물건이 아니라, 꼭꼭 숨겨서라도 가지고 싶은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탐심이 생기죠. 하나님의 눈에는 죽여버려야 할 것, 없애버려야 할 것인데, 탐심에 눈이 먼 이스라엘백성들로서는 어떻게 하든 놓치지 않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싶은 그런 욕심나는 것이었습니다.


이 탐심을 버리지 못하고 헤렘을 훔쳐서 자기 장막에 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외투 한 벌과 금 조금, 은 조금을 취하여 자기 장막에 땅을 파고 숨겼습니다. 그 이름이 아간입니다. 그런데 이 아간이라는 말은 ‘두통거리 근심거리’라는 뜻입니다. 좀 더 원어의 뜻을 살려서 우리말로 옮기면 ‘골통, 골칫거리’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 부모가 이런 이름을 지어주었을까? 이해가 되진 않지만, 아간 이 골통이 골통짓을 하였고, 이 때문에 이스라엘은 엄청난 위기 상황에 놓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간의 시험은 우리에게도 옵니다. 마귀는 정말 귀신같이 우리가 갖고 있는 약점을 잘 압니다. 그 약점을 흔들어 우리를 무너뜨리려 합니다. 그 약점들이 바로 헤렘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으면 멸망할 것, 우릴 죽이는 것이 되기에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서 하나님 것이 되게 하고,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해주셔야 할 것, 우리에게 떨어져야 하고, 우리가 버려야 하고, 죽여야 할 헤렘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지 못하는 이 헤렘이 바로 우리 신앙의 치명적인 약점들입니다. 마귀는 이런 헤렘을 흔들어서 우리를 하나님께 떨어지도록 시험합니다. 우리가 이 헤렘을 놓지 않으면 죽을 것을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이며, 이 때문에 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헤렘은 우리가 더욱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며, 신앙의 과제이며, 믿음으로 도전해서 정복해야 할 목표입니다. 하나님은 마귀의 이런 시험을 통해 우리를 더욱 믿음의 사람을 연단하며, 온전하도록 하시는 기회로 삼습니다. 이 헤렘을 놓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훈계하시고, 깨닫게 해주셔서 마침내 이 헤렘으로 인한 시험을 극복하도록 하십니다. 우리 손에 쥐어진 이 헤렘을 하나씩 하나님 앞에 놓게 하여 우리의 신앙을 한층 더 깊게 하고, 더욱 믿음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이 헤렘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냥 하나님께 맡기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면 됩니다. 이거 하나님이 맡으셔야 할 것입니다 하고 드리면 됩니다. 그렇게 하질 못하고 계속 숨겨두고, 쥐고 있으면 아간처럼 신앙의 골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옆 사람에게 이렇게 말해줍시다. “당신은 골통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에게도 이렇게 말해봅시다. “난 골통이 아니다” 기도합시다. (*)

 

 

by 코이네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