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본문 : 엡3:12-13

2018.1.14. 소토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설교 : 박동진 목사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새로운 인생에 눈을 뜨는 것을 말합니다. 이전에 하나님 없이 살았던 사람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다스리고 계심을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저 육신의 이 생명이 전부일 줄 알았는데, 우리에게 영생이 있음을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호의호식하며 사는 것이 전부일 줄 알았는데, 천국을 살아가는 신령한 복이 있음을 깨닫고 그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죽으면 끝인 줄 알았는데, 죽음이 끝이 아니라 내 인생에 대한 심판이 있음을 알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이 다가 아닙니다. 이 세상이 끝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영생이 있고,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우리는 육신의 생명으로만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신령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1장을 보면

 

첫째는 죄사함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다 용서해버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심판받을 죄인이 아니라 하나님께 용서받은 죄인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둘째는 양자됨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는 성령입니다.

성령이 우리 속에 계셔서 우리를 다스립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소통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갖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령한 은혜는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창조된 목적은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존귀한 인생을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단지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 거룩하게 살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는 더 고귀한 존재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이 복을 누리며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이 복을 누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몸이라 할 수 있는 교회의 한 지체가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갖고 복의 통로가 되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 새로운 인생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야할 새로운 인생에 대해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첫째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고, 나를 받아들이셨으며,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다는 믿음입니다. 예수께서 나의 구원자,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믿음입니다. 예수께서 내 인생의 주인이시며, 나는 그분의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주인이니 내 인생을 책임지신다는 믿음, 그렇기에 나는 주님만 믿고 주님의 뜻을 따르며 순종하며 살아가면 된다는 믿음. 주님이 내게 맡긴 그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며, 지켜주시며, 능력 주신다는 믿음. 나의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능히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믿음. 주님의 말씀처럼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걸 좀 더 직설적인 말로 하면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배신하지 않으며, 우리도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위해 죽으면 죽으리라.” 이런 태도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믿음으로 분명한 확신을 갖고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에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의 확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어떤 확신을 가져야 한다구요?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신다는 믿음을 갖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이러한 믿음의 확신을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마귀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 우리는 죄를 지었고, 그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숨었습니다. 변명했고, 남 탓 했고, 두려웠습니다.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담대하게 나아가도록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재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고, 그래서 떳떳하고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담대하다는 말은 자유롭게 말하다, 거리낌 없이 행동하다 그런 뜻을 갖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 내 마음의 모든 것을 숨김없이 말하는 것이 담대한 믿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자유롭게 소통하는 것을 말합니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감추지 않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솔직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담대한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거리낌이 없고,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과 절친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믿을 수 있는 절친에게는 나의 약점도 스스럼없이 드러냅니다. 왜냐하면 그 친구는 날 이해하고 믿어주기 때문이며, 그런 약점을 보아도 나를 정죄하거나 그 약점으로 나를 이용하거나, 그 약점으로 나를 부끄럽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그런 약점을 이해하고, 보듬어주려고 합니다. 그만큼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은혜를 받기 위해 주저하지 않아야 합니다. 담대하게 그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풍성하게 받아 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럴 수 있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그러니 죄인처럼 하나님 앞에 쭈빗거리거나 망설일 필요가 없습니다. 미안해하면서 숨을 필요도 없습니다. 담대하십시오. 용기를 가지고 그 분 앞에 당당하게 나아가길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가 그리하길 바라십니다.

 

세 번째는 낙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 에베소서를 쓸 때 그는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성도들은 바울이 걱정이 되었고, 또 어떤 이들은 낙심이 되었습니다. 이런 겁니다. “아니 바울 사도처럼 정말 모든 것 희생하며 열심히 충성한 종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저러실 수 있는가? 비단금침에 호의호식은 하게 하지 않을지언정 저렇게 심한 고생을 하지 않도록 보살펴주셔야지.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찌 이렇게 내버려두시겠는가

그리고 하나님이 계신다 하더라도 목숨걸고 따르는 종들에게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진 않더라도 툭하면 감옥에나 갇히고, 온갖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이런 걸 보니 하나님은 자기 사람 하나 제대로 챙길 수 없는 무능력한 분이거나, 마음이 고약한 악한 주인 아닌가? 주의 큰일을 하려면 바울처럼 시련과 환난을 겪어야만 하는가? 바울을 보니 섣불리 주의 일을 하겠다고 나서면 안 되겠네.”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 실망하는 것이죠. 그래서 믿음으로 살길 주저하게 되고, 주의 일 하는 것도 망설이게 됩니다. 그러다 점점 낙심하게 됩니다. 이렇게 낙심하면 우리의 신앙이 병들게 되고 은혜의 자리에서 떠나게 됩니다. 다윗도 이런 어려움에 처한 적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시 40:12 수많은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죄악이 나를 덮치므로 우러러볼 수도 없으며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가 낙심하였음이니이다

 

그런데 다윗은 이런 낙심한 상황에서 도리어 이런 기도를 합니다.

 

시40:13~17 “여호와여 은총을 베푸사 나를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내 생명을 찾아 멸하려 하는 자는 다 수치와 낭패를 당하게 하시며 나의 해를 기뻐하는 자는 다 물러가 욕을 당하게 하소서 나를 향하여 하하 하하 하며 조소하는 자들이 자기 수치로 말미암아 놀라게 하소서 주를 찾는 자는 다 주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는 항상 말하기를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

 

하나님 내가 낙심하게 되었으니 이대로 내버려두지 마시고 은총을 베푸시며, 제발 날 좀 도와주소서. 그리고 나를 무너지게 하는 적들을 물리쳐주시고 나를 구원하소서. 하나님이 나를 도우셔서 구원하시는 것을 보고 하나님은 위대하다고 칭송하게 하옵소서. 다윗은 자신이 낙심할만한 극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기회가 되도록 소원합니다. 그렇게 기도합니다. 나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되고, 내 인생에 하나님의 기적을 일으킬 순간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죠. 다윗의 기도를 들은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다윗의 기도처럼 응답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윗하면 떠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언제나 돌보셔서 승리하게하시는 사람’ 아닙니까? 세상 사람들은 다윗을 그저 위대한 왕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윗을 위대한 왕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과 능력을 봅니다.

 

누구나 살다보면 때로 예기치 않는 어려움과 환란을 경험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쓴맛 단맛 다 보면서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인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저 인생의 단맛만 보고 사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착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우리도 참 약한 사람들입니다. 보잘 것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낙심하기 쉬운 사람들입니다. 그런 우리가 낙심하게 될 때 하나님을 향해 도움을 호소하면 하나님은 그 호소를 들어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기 전에 지레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포기할 때 포기하더라도 먼저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낙심하는 것은 좀 천천히 해도 늦지 않습니다. 낙심할 때 하더라도 다윗처럼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낙심하면 누가 가장 좋아하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낙심할 때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를 위대하게 하시고, 우리를 통해 영광받으십니다. 바울도 그래서 에베소 성도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이렇게 고난 받는 것은 너희의 영광이다.” 바울이 겪는 고난만 보지 말고, 그 런 고난을 이겨내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감옥에 갇혀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 것 같은데 그런 속에서도 복음의 사명을 해나가게 하는 하나님을 보라는 것입니다. 길이 막힌 것 같은데, 더 이상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인데 그 상황을 하나씩 하나씩 헤쳐 열어 가시는 하나님을 보고, 그런 상황을 도리어 하나님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기회로 만드는 하나님을 보라는 것입니다.

 

* 이 다음 내용은 여러분이 만들어보십시오. 제 설교문을 블로그에 올릴 때 이제 결론 부분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WRITTEN BY
코이네
코이네는 예수님 당시 만국통용어로 쓰인 헬라어입니다. 신약성경도 이 코에네로 쓰였기에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코이네는 소통의 언어이며, 성경 또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성경으로 세상을 보며, 세상의 말로 성경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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