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사람을 강하게 하옵소서

본문 : 에베소서 314-16

2018.1.21. 소토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설교 : 박동진 목사

 

 

1. 낙심하는 성도와 감옥에 갇힌 바울

 

감옥에 갇힌 바울이 감옥 밖에서 편히 사는 성도를 걱정한다. 감옥에 있는 바울은 이건 하나님의 뜻이며, 교회의 영광이라며 담대한 반면, 감옥 밖의 성도들은 그런 바울 때문에 낙담하고, 믿음이 흔들립니다. 상황을 보면 바울이 낙심하고, 성도들이 더 그런 바울을 위로해야 하는데, 거꾸로 된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울은 이렇게 낙심한 성도들을 보고 사안이 시급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냥 그대로 두면 안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는 성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어떻게 기도합니까?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당시는 대부분 서서 손을 들고 기도해습니다. 그런데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그만큼 절박하고, 절실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성도들이 낙심하지 않고 믿음에 바로 서는 것,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는 것이죠.

 

2. 바울의 기도_ 이름을 주신 아버지

 

바울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이름을 줬다는 말.. 이름은 그것의 특성과 개성을 특정하는 것이며, 다른 것으로 구별시키는 것입니다. 이름을 지었다는 말은 그 존재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것이며, 그것을 보존하고 돌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만물을 지어놓고 그 모든 것에 이름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돌보셨습니다. 방치한 것이 아니라 돌보고 보살폈다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가치 없어 보이고, 눈에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것까지 하나님은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서 그들이 제대로 존재할 수 있도록 보살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무생물까지도 관심을 갖고 세밀하게 살피는 하나님이시니 이 땅에 그 자녀로 부름을 받은 우리는 어떻겠습니다. 그리고 그 자녀가 믿음이 낙심하고 흔들리며, 시험에 들었다면 어떻겠습니까? 더 큰 관심과 사랑으로 그 낙심하는 성도를 보살피실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우리에게 이름을 주신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리고 바울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에 의지하여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 이상을 이루어주시는 분이시며, 전지전능하신 분이며,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기도도 그리해야 합니다. 그런 기대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으로 하나님을 제한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단 한 구절도 제대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깨달은 말씀보다 훨씬 풍성한 말씀을 이미 주셨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구하는 것보다 크고 넘치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돌아보기를 바랍니다.

존 스토트 목사는 이 고백을 일곱 단계로 구분해서 설명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두 번째 단계는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을 하실 수 있다.

세 번째 단계는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을 하실 수 있다.

네 번째 단계는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거나 생각지 못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

다섯 번째 단계는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하실 수 있다.

여섯 번째 단계는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훨씬 더 넘치도록 하실 수 있다.

일곱 번째 단계는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훨씬 더 능히 하실 수 있다.

 

여러분에게 우리 모두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 그리고 생각지 못한 것도 하실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좋도록 능히 하실 수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4. 속사람을 강건케 하옵소서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는 겉사람이 있고, 또 눈에 보이지 않는 속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겉 사람을 치장하는 데 일평생을 보냅니다. 집이라는 겉치장, 자동차라는 겉치장, 옷이라는 겉치장, 화장이라는 겉치장, 여기에 일평생을 보냅니다. 돈도, 관심도, 여가도, 정렬도 다 쏟아 붓습니다. 그러나 정작 속사람을 가꾸는 데는 소홀합니다. 속사람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만들어가는 내면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겉 사람에 집착합니다. 겉 사람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겉 사람의 멋있음에 힘쓰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겉 사람만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옷이 화려 찬란하다고 그 사람이 건강하지는 않습니다. 옷이 멋있어 보인다고 그 사람 속사람의 인격도 멋있지는 않습니다. 옷이 향기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속사람이 향기나지는 않습니다. 옷을 한 평생 입는 사람은 없습니다. 옷을 자주 갈아입습니다. 옷은 벗어버릴 것입니다. 한 가지 옷을 평생 입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옷은 그저 소모품입니다. 자주 갈아입습니다. 입고 버릴 것입니다.

속사람이 멋있어야 합니다. 속사람이 새로워야 합니다. 속사람에 집중해야 합니다. 속사람 다이어트하고, 속사람 화장하고, 속사람 꾸미고. 속사람 향내 내고 그렇게 거꾸로 속사람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그래서 바울 사도는 겉사람이 강건하여지고 하지 아니 하고 속사람이 강건하여지고 라고 합니다. 참된 사람은 속사람이 강건하여 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속사람이 강건하여 지는 사람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속사람이 강건하여 지는 사람입니다.

 

속사람이 강건하다는 것은 '건강한 인격'을 말하는 것인데 몇가지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칼 융(Carl G. Jung)이라는 심리학자는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건강한 내면이라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롤로 메이(Rollo May)라는 심리학자는 건강한 사람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건강한 사람이란 수용성이 큰 사람, 즉 마음이 큰 사람이다...' 건강한 사람은 마음이 항상 열려있다는 것입니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생산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할 때마다 '죽겠다, 망했다, 안된다'라고 말합니다. 항시 부정적이고 비생산적입니다. 이런 사람 인격적으로 문제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나름대로 이 속사람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합니다.

이 속사람이 강한 것을 두고 정신력이 강하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제 축구를 했는데 쉽게 이길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이영표의 정신력.. 나보다 강한 상대에게 주눅들지 아니하고, 나보다 약한 상대에게 방심하지 않는 것, 그리고 상황에 따라 실력이 고르게 나도록 하는 평정심,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컨디션을 잘 관리하는 능력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우리의 속사람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강하게 되길 바라길 기도합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성령으로 꽉 차서 성령의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며, 성령에 의해 다스려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루어야 할 속사람은 바로 성령에 의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능력이 드러나고, 성령의 인품이 드러나고, 성령에 감동되어 살아가는 것..이를 두고 성령충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속사람은 이렇게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성령에 의해서 만들어져 가고 있습니까?...

 

내가 병든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병들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육신의 병은 증상을 확연히 알 수 있지만 영적인 병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것은 다음의 3가지 증상이 있습니다.

 

첫째, 병든자는 밥맛이 떨어집니다.(신명기 8:3 ; 시편 119:103; 고린도후서 1:20)

둘째, 무슨 일만보아도 들어도 짜증납니다.(시편 1079,20)

셋째, 마음에 기쁨이 없습니다.

 

먼저 우리의 영적 상태를 확인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간절히 바라야 합니다.

또한 성령으로 훈련되어야 합니다.

 

'생각하는 사람'으로 유명한 조각가 로댕이 그런 말을 남겼습니다. 한 미술학도가 찾아와서 '선생님, 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내십니까?' 그랬더니 로댕의 대답이 이러했답니다. '나는 불필요한 부분만을 깍아 냅니다. 그러면 이런 작품이 나오지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레이져로 수술을 많이 합니다만은 속사람의 강건함은 그렇게 불필요한 부분을 성령의 빛으로 쪼여 잘라내고 깍아냄으로서 강건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늘의 영광을 보아야 내적 건강이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내 영혼의 건강이 땅에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내 영혼의 건강은 하늘에 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야 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의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자만이 그 심령에 평강을 누리고 강건함의 은총을 누리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그러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복음을 전하다 돌에 맞아 죽습니다. 하지만 죽어가는 가운데에도 하늘을 우러러봅니다.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그를 맞으려 서 계신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그 순간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이 되었고 자기를 죽이는 저들을 용서해 줄 것을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의 속사람의 모습입니다. 주님도 그러했습니다. 한많은 십자가 위에서 당신께 창을 꼽는 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속사람이 강건한 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우리는 스데반이나 주님에게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영적 건강의 절정은 모두 하늘의 영광의 풍성함을 바라봄으로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바로 '영성의 핵심'이 있습니다.

 

하나님 영광의 풍성함, 이것을 깨닫고 보는 순간, 그 안에서 내 영이 소생함을 입습니다. 나를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의 큰 영광을 바라볼 때에 병든 영혼이 고침을 받습니다. 성령께서 그것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성화케 하는 영이고 사명을 깨우치는 영입니다. 이 영이 우리와 함께 함으로 우리 속사람은 강해질 수 있고, 하늘의 풍성함을 바라봄으로 현실의 고난과 아픔을 승화하여 삶의 원동력으로 삼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고 요지부동합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에 따라 구원의 역사에 동참합니까?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힘입게 임하기 위해서, 뜻이 하늘에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위해서 힘껏 구하십니까? 여러분의 속사람이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말씀과 깊은 기도생활을 통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속사람이 강건케 되기를 다시 한 번 축원합니다.

 

삶을 돌아보면 낙심할 이유가 얼마나 많습니까. 계획대로 되지 않고, 자녀는 부모의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또 경제상황이 좋지 않는 등 낙심할 이유가 널려있습니다. 여러분, 속사람이 강건해짐으로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속사람이 성령님의 능력으로 강건해지는 것이 바로 이 땅에서 누리게 되는 천국입니다. (*)

 


WRITTEN BY
코이네
코이네는 예수님 당시 만국통용어로 쓰인 헬라어입니다. 신약성경도 이 코에네로 쓰였기에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코이네는 소통의 언어이며, 성경 또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성경으로 세상을 보며, 세상의 말로 성경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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