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하나님은 왜 모세를 왕자가 아닌 초로의 목동이 되게하셨는가?

코이네 2013. 2. 13.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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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장, 모세를 훈련시키는 하나님

 

 

출애굽기 2:11-25

 

모세는 이집트의 왕궁에서 공주의 아들로 잘 성장합니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왕족으로서 제왕의 훈련도 받았을 것이며, 이집트의 과학과 기술 그리고 모든 문화와 문명을 익혀가며 이집트를 이끌 중요한 재목으로 성장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집트의 왕자로서가 아니라 어릴 때 젖먹여 키웠던 엄마의 영향을 받아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가 하루는 들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현장을 둘러보다가 유독하게 이스라엘 백성을 핍박하는 이스집트의 한 관리를 보고는 격분해서 그를 죽여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그 시체를 모래에 숨겨 완전범죄를 도모하지만 이것이 나중에 밝혀지면서 마침내 도망자 신세가 되어버리는 것이죠.

 

그런데 이 사건에서 보면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그가 핍박받는 이스라엘을 돕고자 폭력을 사용했지만 그가 가진 힘과 권세, 폭력으로는 이스라엘백성을 구원할 수 없었다는 것이죠. 힘은 하나의 수단과 방편이 될 순 있지만 이것이 제대로된 목적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게 되며, 폭력 앞에서 사람들은 일시적인 순종을 하게 할 순 있지만 마음 깊은 속에서는 또 다른 증오심과 복수심을 키워 더큰 위기로 몰아넣는다는 것입니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병폐를 고치기 위해 유혈혁명을 주장했지만 그 혁명으로 애꿎은 사람들의 생명만 앗아갔지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아니 이전에는 자본주의에 의해 사람들이 핍박을 받았지만 유혈 혁명 뒤에는 공산주의에 의해 핍박을 받게 된 것이죠. 폭력은 또 다른 억압을 낳지 자유를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또한 그들의 형제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신임을 얻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배척당하였습니다. 왕자라는 신분이 핍박받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공감대 형성하지 못하고 도리어 위화감만 조성하게 된 것이죠. 힘이 있고 능력이 있고 권력이 있다고 지도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백성과 공감할 수 있고, 백성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라야 온전한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지위와 능력 그리고 젊음, 패기 이런 것들은 부수적인 것이지 핵심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왕자로 잘 나가는 모세는 안타깝게도 하나님께는 별 쓸모없는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시킵니다. 하나님께 쓸모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셨는데, 그것은 도망자가 되어 지금 갖고 있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게 하시곤, 광야의 이름없는 촌로로 쓸쓸히 말년을 보내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혈기왕성한 40대의 이집트 왕족이 그 땅에서 쫓겨나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보냈습니다. 그 세월동안 모세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처음에는 절치부심 다시 기회를 잡고자 꿈을 꾸었을 것입니다. 이런 노력 저런 계획을 세워서 뭔가 해보려고 했겠지요. 하지만 10년이 그렇게 흘러가고 20년이 지나면서 그의 의지는 한계에 달했을 것입니다. 나이 70이 지나면서는 아무런 희망도 또 자신이 이집트이 왕족이었다는 사실도 잊어버렸을 것입니다. 그저 세월이 지나는 것을 바라볼 뿐, 자기 주위에 있는 이름없는 사람들과 자신도 별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광야에서 소박하게 가족과 함께 보내는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너무도 평범한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모세를 하나님은 찾아오시고 만나시며 소명을 주십니다. 이제 내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판단하신 것이죠. 우리 생각에 힘있고, 권력있고, 능력있을 때 더 하나님의 일을 잘 할 것 같은데, 하나님은 열정마저 땅에 묻어버린 촌로가 되어서야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고 판단하신 것입니다. 왜 일까요?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능력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말귀가 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by 소토교회 코이네 박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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