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4장, 길갈의 어원, 우리의 수치를 날려버리시는 하나님,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의 설교
길갈, 수치를 굴려버리다
본문 : 수 4:14-5:1 2013.1.27.
소토교회 주일낮 예배 설교
1. 본문의 정황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의 명령을 따라 드디어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먼저 싯딤이라는 곳에서 두 명의 정탐꾼을 여리고성으로 보내었습니다. 정탐꾼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해줍니다. 이미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식을 듣고 마음이 녹아 전의를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난관이 있습니다. 바로 요단강입니다. 요단강은 평소에는 물이 깊은 강이 아니지만 우기가 되면 범람하는 강이었습니다. 그래서 강 건너 여리고 사람들은 최소한 강이 범람하는 시기에는 우리를 침범하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요단강을 멈추게 하고, 그 강을 건너가게 하십니다.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모두 할례를 받고 낫기를 기다립니다. 그 동안 하나님은 강가에 언약궤를 메고 섰던 자리 근처의 큰 돌을 가져와 돌무더기를 쌓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돌의 이름을 길갈이라 짓고, 거기서 첫 유월절을 지내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곳에 길갈이라는 돌을 쌓게 하신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대대로 이 돌들을 통해 하나님이 하신 역사를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곳의 이름을 길갈이라 하여,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일을 이해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길갈이라는 말은 ‘굴러가다’란 뜻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당한 그 수치를 굴러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2. 길갈, 수치를 굴러가게 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껏 갖고 있던 수치는 무엇인가요? 그들은 오랜 시간 이집트 사람들의 압제를 받았습니다. 노예로 살았고, 수백년 동안 노예정신이 뼈에 사무쳐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압제하는 이들은 노예들을 부릴 때 그저 일만 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이 노예화되어서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도록 정신개조를 시킵니다. 자기비하에 길들이게 하고, 그래서 주인을 의지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합니다. 노예로 살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자신은 노예라는 사실을 잊지않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노예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노예정신이 몸에 베이게 되는 것이죠.
그들은 이집트를 나오긴 했지만 그 마음은 이집트를 벗어나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기회만 되면 이집트로 다시 돌아가자고 생떼를 쓰곤 하지 않습니까? 노예가 제일 잘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뒷담화하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시키는 일이 아니면 스스로 일을 하질 않습니다. 그리고 잘되지 않으면 불평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노예정신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광야에서 40년을 보내었습니다. 광야의 40년은 어떻게보면 바로 그 노예정신을 씻는 기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노예정신이 몸에 베어있는 세대는 광야에서 다 죽고, 새로운 세대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죠.
이 노예정신을 씻는다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도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35년동안 압제를 당하면서 그런 노예근성을 키웠습니다. 그 노예근성이 광복한 지 7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아직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내려져 있습니다. 엽전이니 조선놈이니 이런 말도 서슴치 않고 말하죠. 이번 국사편찬위원회 국정감사가 있었는데, 그 내용을 보니 정말 열불이 납니다. 일본이 원하는대로 역사를 기술하고 있고, 또 그렇게 고쳤더군요. 국정감사하는 국회의원이 너무 화가 나서 여기가 국사편찬위원회인지 일본사편찬위원회인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일본의 도움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뼈 속 깊이 새겨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노예근성으로 똘똘 뭉쳐있는 것이죠. 이런 것이 모두 우리 민족의 수치가 됩니다.
나의 소중한 것을 지킬 힘이 없어서 빼앗겼다는 자괴감, 그래서 남의 압제를 받으면서 제대로 저항하지 못했다고 하는 수치심. 거기다 압제를 받으면 살아야 하는 굴욕감, 어느새 노예로 길들여져 버린 자신의 모습, 그리고 더 이상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주인이 시켜야만 일할 수 있다는 자괴감.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빵 한조각 더 얻어먹기 위해 굽신거리며 살아가는 그런 비천한 모습. 이스라엘은 수백년동안 그런 수치를 겪으며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치를 요단을 건넌 이 자리, 바로 이 길갈에서 다 씻어버리고 그들을 새롭게 하신 것입니다. 수치스런 과거는 이제 다 가라, 하나님 백성으로서 영광스러운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어떻게 수치를 굴러가게 하셨는가?
첫째, 애굽에서의 10가지 재앙을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나오게 하기 전 그들이 그렇게 두려워하던 이집트를 10가지 재앙으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그렇게 무시무시하게 느꼈던 이집트의 왕이 하나님의 재앙 앞에 모세 앞에서는 마치 고양이 앞의 쥐처럼 무기력하고 항복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다” 자신들을 압박하는 대적들, 원수들, 압제자들을 이렇게 통쾌하게 깨부수는 능력의 하나님이 바로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며,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본능을 깨어나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노예가 아니다.
둘째, 홍해의 기적과 광야의 기적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인도를 따라 이제 그 지긋지긋하던 압제의 땅을 벗어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그 땅으로 가기까지 엄청난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먼저 홍해가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막다른 골목에 몰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홍해를 갈라지게 하여 길을 내시고, 쫓아오는 대적을 몰살시켜버립니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40년동안 사막횡단을 하면서 물이 필요하면 물을 주시고, 음식이 필요할 때 하늘에서 만나를 주시고, 고기가 필요하면 메추라기떼를 보내어 고기를 먹게 하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셨습니다.
대적들에게는 한없이 두렵고 무서운 분이지만, 우리에게는 더할 수 없는 보호자이신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하나님의 기적과 은혜를 통해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고 지키신다는 은혜를 체험을 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신명기에서 독수리 날개에 업어 너희를 인도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그 누구도 건들 수 없는 강력한 능력의 하나님이 그 팔로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사랑하고 지켜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과거 압제받고 서럽게 살았던 노예의 세월을 잊게 하고, 이제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힘이 되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언약 십계명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야 할 삶의 원칙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것은 이집트나 그 외의 다른 민족들에게서 전혀 발견할 수 없는 새로운 계명이었습니다. 사람답게 사는 계명입니다. 우리는 미개하지 않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받아 사는 문명인이며, 자랑스런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삶을 통해 깨우치게 해주셨습니다.
넷째, 작은 승리 그리고 새로운 이적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지나며 그들을 괴롭히던 대적들과 전쟁을 벌입니다. 가장 잔인하고 악독한 적이 바로 아말렉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싸워 이겼고, 시나이 반도를 주름잡던 크고 작은 나라들과 싸워 이겼습니다. 사실 이 싸움도 모두 그들이 먼저 시비를 걸어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모든 나라들과 싸워 이겼습니다. 이전에는 이집트에 쫓기고 아말렉에 쫓기고 참 볼품없는 그런 민족이었는데, 이제는 그 누가 달려와도 당당히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샌가 그들의 소문은 널리 퍼졌고, 모두들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서 2장에 보면 여리고를 침략하기 전에 두 사람의 정탐꾼을 보냈는데 그 정탐꾼들은 그 성에 사는 한 여인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듣습니다. “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라”
그리고 그 하나님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려는 이스라엘의 발목을 잡고 있는 천재지변도 간단하게 제압해버리십니다. 요단강은 평소에는 그리 큰 강이 아닙니다. 성지순례 간 사람들이 기대를 갖고 요단강을 가보면 졸졸 흐르는 개울물을 보곤 실망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기후가 우기와 건기로 나뉘는데, 우리 계절로 겨울이 되면 우기가 시작됩니다. 이 때 비가 계속 내리는데, 이 요단강은 그 지형적인 특성상 비가 조금만 많이 와도 급류가 흐르며, 범람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럴 때 요단강을 건넌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요단강물을 홍해처럼 멈추게 하고, 길을 만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너게 하십니다.
이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무한한 믿음을 일으키게 하고, 대적들에게는 간담을 서늘하게 하며 저항할 의지마저 잃어버리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사건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례를 받아 꼼짝 못하게 된 때 전쟁하기에는 너무 좋은 상황인데도 그들은 모두 자기들 성문을 꽁꽁 걸어 감궈두고 있었던 것이죠.
하나님은 이런 상황 속에서 여호수아에게 돌 열 두 개를 갖고와 돌비를 세워 기념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 돌 무더기를 보면 하나님이 너희에게 하신 일을 기억하고 그것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아버지 이 돌이 있는 이곳 이름이 왜 “길갈”입니까? 아들아 하나님은 이렇게 노예로 압제받는 우리 조상들을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 우리가 가진 수치를 모두 굴러가게 하셨다.
다섯째, 할례와 유월절을 통해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약속의 땅에 도착하자마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를 받게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이 된 표를 몸에 새겨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절대 잊지 않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집트를 떠나 자유민이 된 날을 기념하는 유월절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비로소 그들은 이집트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기업을 이은 새 출발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새 출발에는 과거 그들이 짊어지고 있었던 불행하고, 부끄럽고, 서럽고 수치스러웠던 모든 역사를 다 굴려버린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수치를 굴러가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인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서럽고, 불행하고, 부끄럽고, 고통스러운 모든 수치를 다 굴려버리실 줄 믿습니다. (*)
by 소토교회 코이네 박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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