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과 소통하는 종
본문 : 창세기 24:1-9
2016.4.24. 소토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지난주에 우리는 아브라함의 신실한 종이 그 주인의 며느리를 고를 때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일을 진행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은 이 종과 아브라함과의 관계를 통해 믿음의 사람들이 어떻게 소통하며 살아야 하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읍시다.
본문 1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나이 많아 늙었다’라는 말은 히브리어 원문을 의역한 것인데 직역하면 ‘그 날들로 나아가다’라는 뜻입니다. 즉 나이만 먹는 것이 아니라 신앙이 그만큼 진전되었고, 성숙했다는 뜻을 함의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신앙생활을 오래했다고 해서 신앙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의 믿음이 더욱 자라서 계속 발전하고 성숙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신앙이 계속 발전한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요?
여러분 성경에는 종과 주인의 이야기가 참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둘 중에 누구를 더 강조하고 있습니까? 전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인의 영성’이라는 말은 잘 들어보지 못했지만 ‘종의 영성’이라는 말은 참 많이 들어봤습니다. 여러분도 한 번 잘 생각해보십시오. 주인이 어떠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까? 종이 어떠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까? 신기하게도 기독교는 주인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종의 이야기 종의 영성을 많이 이야기합니다. 이유가 뭘까요?
첫째는 이 세상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한 분 이시기 때문입니다. 즉 주인에 대해 말을 하거나 들을 자격이 있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주인의 영성이니 하는 것은 우리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우리가 모두 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종입니다. 그래서 종이 해야 할 올바른 신앙의 태도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야 종다운 종이 될 수 있고, 그래야 우리 본분을 지키고 살 수 있기 때문에 종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예수님도 이 세상에 오셔서 주인노릇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섬기는 자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종도 계급이 있습니다. 종 중에서 제일 높은 종이 바로 ‘청지기’입니다. 다른 말로 집사라고 합니다. 그 집의 모든 것을 주인을 대신해 관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동체로 가게 되면 ‘장로’라고 하고, 그 중에 대표되는 사람이 촌장 또는 지도자로 불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의 모든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도 실은 종입니다. 이 종의 본분을 잘 알고 종처럼 일을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지도자는 훌륭한 지도자로 칭송을 받습니다. 하지만 마치 자기가 신이라도 된 것처럼 자기마음대로 하고, 국민들 위에서 군림하려고 하고 하면 나쁜 지도자로 손가락질 받습니다. 당대만 그런 게 아니라 역사 대대로 세상을 망친 나쁜 인간으로 손가락질 받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가르치는 리더십, 특히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은 섬김의 리더십입니다. 다른 말로 종의 리더십인 것입니다.
훌륭한 영성은 남을 더 잘 섬기는 사람, 더 훌륭한 종이 되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종도 청지기 영성을 가진 수준이 있고, 더 심하면 노예 영성이 되기도 합니다. 청지기는 그래도 종이지만 주인을 대신해서 모든 것을 관장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노예는 자신의 존재감도 느끼지 못하는 종 중에서도 가장 낮은 비천한 종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과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자신들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하면서 그 종의 단어를 배에서 노 젓는 노예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들은 모두 주님의 노예를 자처하며 그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이상하죠?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더 높은 자리에 올라서 다른 사람들을 부려먹고, 군림하고, 이것이 안 되면 어떻게 하든 무시당하지 않고 살려고 자신을 어떻게 하든 자신을 높여보려고 안달인데, 기독교인들은 ‘난 종입니다. 난 남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난 섬기는 게 좋은 사람입니다.’ 이러고 산다는 것입니다. 더 낮은 자리에서 더 잘 섬기는 사람이 더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 받는 곳, 거기가 천국이고, 또 그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동물들이 자기보다 강한 짐승을 만나면 몸을 부풀리고, 이빨을 드러내고, 깃대를 세워서 위협합니다. 그래야 난 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어서 자신을 지키는 것이죠. 우리 살아가는 세상이 그렇습니다. 그런데요, 교회에서는 그러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 긴장 다 내려놓고 ‘난 종입니다’, 그러고는 남보다 높아지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에 오면 남에게 무시당하지 않아야지,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좀 더 존경받아야지 하는 그런 생각은 포기하고 좀 편안하게 지내세요. 우리 한국교회에 고질병이 하나 있는데 바로 ‘장로병’입니다. 어떻게 된 건지 성도들의 목표가 장로가 되는 것입니다. 장로가 되어서 교회에서 어른노릇, 주인노릇 하려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의 영성이 얼마나 성숙한지는 자신이 어떤 종의 모습인가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직도 주인이 되고 싶고, 더 높은 왕이 되고 싶다면 낮아질 준비를 하십시오. ‘제가 종입니다.’ 그래서 남을 더 잘 섬기는 사람이 되어갈 때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이 되고 있는 것이며, 훌륭한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훌륭한 종이 될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에 보면 아브라함과 그 종의 대화 속에서 그들은 참 잘 소통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훌륭한 종이 되려면 주인과 잘 소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기본입니다.
국어사전을 보니 소통은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하는 것이며,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 소통을 잘하려면 막힌 것, 또는 막힐 수 있는 것을 치울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서로 오해가 될 만한 것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오해가 생겼다면 이것을 풀 수 있어야 소통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 소통하려면 일단 남의 이야기를 잘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뭐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의 이야기를 잘못 듣거나 오해하는 것이죠.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말을 하게 되면 받아들이질 못하고 들으려 하지 않는 습성도 있습니다. 내 생각에 골몰하고, 내 중심적으로 판단하면 오해가 생깁니다. 그래서 들을 때 ‘당신의 말을 나는 이렇게 알아들었는데 맞느냐?’라고 물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렇게 잘 들으려면 낮아져야 합니다. 겸손해져야 합니다. 당신의 말을 먼저 듣겠습니다 라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남의 말은 들을 생각도 않고 그저 자기 말만 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 말이 중요하면 남이 하는 말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기도합시다. 하나님 제가 남의 말을 경청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남의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제 마음을 겸손하게 하옵소서. 또한 하나님의 말씀도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제 마음을 겸손하게 하소서.
둘째, 소통을 잘하려면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말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종에게 며느리를 데려오되 여기가 아니라 자기 고향으로 가서 데려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종은 다시 묻습니다. 만일 정말 괜찮은 며느리감을 보았는데 그 여인이 여기로 오지 않으려 한다면 당신의 아들을 그리로 데려갈까요? 라고 묻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당연히 며느리를 여기로 데려오는 것이지 아들을 그리로 보낼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아브라함은 대답해줍니다. 아니다, 아들을 데려가지 말아라.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곳에서 내게 복을 주시고, 대대손손 번성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분명하게 자신의 뜻을 보여줍니다.
여러분, 이처럼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밝힐 때 대화가 되는 것입니다. 소통은 이런 대화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한다고 대화하는 게 아닙니다. 서로의 생각을 분명하게 교환해서 무엇을 해야 할 지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대화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한 장로님이 계셨는데 저랑 같이 선교부를 섬기면서 행사를 하기 전에 서로 이야기를 다 나누었고 이렇게 하는 게 좋다고 합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희안하게 제 앞에서 그렇게 하자고 해놓고 밖에만 나가면 딴 소리를 합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일을 진행해버립니다. 저만이 아니라 다른 분들도 그 장로님과 일을 하면 항상 뒤통수를 맞습니다. 그래서 함께 일하기를 아주 싫어합니다. 왜 그러느냐? 자기 의사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자기 생각을 말하면 남들이 무시할까 그것이 걱정되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자꾸 이런 식으로 일을 하려하니 나중에는 다 회피해버리고, 스스로 왕따가 되어 버린 것이죠. 소통을 하려면 자기 생각이 무엇인지 그것을 똑똑하게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도 마찬가집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중언부언하면서 말을 많이 하는 기도는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뜻이 분명한 기도를 하며,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알아듣고 순종하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종은 이처럼 주님과 온전하게 소통할 줄 아는 종입니다. 그래서 주인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잘 소통하는 속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생깁니다. 아브라함은 이번에 이 일을 시킬 때 종을 불러 자신의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고 맹세를 시킵니다. 이것은 그 종을 아주 신뢰하기에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표시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읍시다.
여러분은 얼마큼 종이 되셨습니까? 아니 어떤 종의 모습입니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할 수 있습니까? 자기의 의사를 분명하게 말하며 대화할 수 있습니까? 주님과 잘 소통할 수 있는 훌륭한 종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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