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광복절 경축사에 건국 68주년 표현이 잘못된 이유
* 이 글은 이번 광복절에 박근혜 대통령의 건국 68주년이란 표현으로 건국절 논란을 일으킨 것에 대해 역사학자 이만열 교수께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전문입니다.
오늘 8.15광복절 경축사에서, 한 때 그 용어의 사용이 역사의식의 결여로 비판을 받아 다소 삼가는 듯했지만, 올해도 여전히 보란 듯이 ‘건국 68주년’이란 용어로 나타났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최근 『거리에서 국정 교과서를 묻다』(민족문제연구소, 2016.3)라는 책에 「1948년 대한민국정부 수립인가, 대한민국 수립인가」라는 글을 쓴 바 있어서 더 언급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오늘만 해도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구하는 이들이 있어서 몇 자 쓰고자 한다.
논란의 시작은 이명박 정권 때, 그의 취임 후 2008년 8월 15일을 제 60주년 ‘건국절’로 지키겠다고 한 데서부터다. 이는 대한민국의 건국을 1948년으로 전제로 한 것이었다. 학계의 반대목소리가 있었지만, 콧방귀도 뀌지 않던 정부가 훈장까지 반납하겠다는 광복회원들의 분노 앞에서는 주춤했다. 그 해 8.15 기념행사가 ‘광복 63주년 및 건국 60주년’이라는 이름으로 어정쩡하게 치러진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국회에서는 8.15를 종래의 ‘광복절’ 대신 ‘건국절’로 하자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고, ‘건국공로자예우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의원 10명에 의해 제안되기도 했다.
1948년8월15일 광복절에 '대한민국정부수립국민축하식'이라는 걸개가 걸려있다.
이렇게 ‘건국절 소동’으로 부각된 것은 대한민국이 언제 건국되었는가 하는 문제였다. 역사학계에서 정리한 것은 이렇다. 1919년 3.1운동으로 ‘독립을 선포’하고 거기에 따라 건립한 것이 대한민국이라는 것이다. 1919년 4월 10일 13도 대표 29명이 상해 프랑스 조계에서 모였다. 그들은 그 모임의 이름을 ‘임시의정원’이라 하고 그 이튿날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하고, 10개조의 임시헌장을 발표했다. 그 제 1조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었다. 이 조항은 임시정부 하에서 5번의 개헌 때에도 계속되다가 1948년 제헌헌법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계승되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세웠으니 그것을 운용하는 정부는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해외에 임시정부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당시 임시정부는 서울(한성)과 블라디보스톡, 상해에서 각각 세워졌으나, 1919년 9월 세 임시정부를 통합, 대통령제의 통합임시정부로 발전시켰다. 이게 대한민국 임시정부(상해임정)였다.
상해 임정은 의정원과 정부로 구성되었고, 출발 때부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라는 헌법적 기초 위에 서 있었으며, 뒷날 이당치국(以黨治國)의 정당정치로까지 발전했다. 임정의 외교적 활동도 괄목할 만하여, 1943년 말 미영중 삼거두의 카이로 회담에서 중국의 장개석 총통을 통해 전후(戰後) 한국독립을 유일하게 약속받는 성과도 거두었다. 외국 영토인 중국에서 독자적인 광복군을 예하에 두었던 임정은 미영중 연합국과 항일공동전선을 펴는 한편 국내 정진대 파견을 준비하다 해방을 맞았다.
임정의 이같은 활동과 업적은 해방 후 제헌헌법에 대한민국이 임정을 계승했음을 분명히 하도록 했다. 제헌국회는 대한민국의 출발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있음을 분명히 밝히려고 했다. 1948년 5월 총선 이후 회집된 제헌국회는 헌법 초안 전문(前文)에 대한민국의 뿌리를 명기하도록 했다. 그러나 기초위원회 초안에는 “3.1혁명의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한다는 정도로만 밝혔다. 이를 본 이승만은 국회 본회의 때 의장석에서 내려와 평의원으로 발언권을 얻어, 새로 수립되는 정부가 임정의 법통계승을 명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제헌헌법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고 명시한 것은 이승만의 노력에 의해서다. 제헌헌법의 그 정신은 현행헌법에도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는 것으로 명시되어다.
1948년 8월 15일, 정부청사에 걸린 새정부 출범 축하 프랑카드에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국민축하식”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대한민국 건국 국민축하식’이라고 하지 않았다.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개원연설에서 “민국 연호는 기미년에서 기산(起算)할 것”이라고 언명한 이승만은 그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정부의 관보뿐만 아니라 공식문서에도 ‘대한민국 30년’이라고 썼다. 다른 나라 헌법에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헌법전문에다 이 점을 분명히 밝혔던 것이다. 이렇게 이승만이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로부터 시작된다고 밝힌 것은 뒷날 그를 ‘국부’로 모시겠다는 이들이 혹시라도 대한민국의 근원을 부정할까봐 이렇게 쐐기를 박아놓은 것은 아닐까.
혹자는 말한다. 국가는 국토·국민·주권이 있어야만 성립한다고.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승만과 제헌국회 때의 정치인들이나 국민들은 그걸 모르고 1919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고 했을까. 완벽하지는 않지만, 당·정·군을 갖고 외교활동을 벌이며 국내외의 독립운동과 기맥을 통하면서 그 영도적 성격을 가졌던 임정을 높이 평가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혹자는 또 말한다. 임정 때의 대한민국은 당시 국제적 승인을 받지 못했으니 국가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1776년 독립을 선언한 미국이 국제적 승인을 받은 것은 그 7년 후이고 연방정부를 세우게 된 것은 13년 후다. 그러나 그들의 국가 출발은 1776년으로 못박았지만,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국가적 자부심을 강조하는 데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이 정부가 민족의 독립운동과 국가적 정통성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인색하게 구는지, 반면에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면서 일제 통치의 연장선상에서 나라가 이뤄졌다고 보고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부정, 폄훼하는 뉴라이트의 그런 주장에는 왜 그렇게 쉽게 동조하고 그걸 부끄러워하지도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듣건대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수립(건국)’으로 하지 않으면, 그 3주 후인 9월 9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건국’했다는 북한에 비해 국격이 떨어진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모양인데 이건 역사를 모르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 그들은 1919년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계승을 거부하니까 1948년에 ‘건국한다‘고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계승할 수 있는 국가 대한민국(임시정부)이 있었고 대한민국 30년이라는 연호마저 계승했으니 그 얼마나 떳떳한 것인가. 이 시점에서 다시 묻겠다. 북한이 1912년을 ‘주체’ 1년으로 하는 연호를 제정하여 사용하고 있다. 왜 그러겠는가.
by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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