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6장, 사라와 하갈의 갈등, 브엘라해로이 그 샘 이름에 있는 인생의 묘결
가나안 땅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아브라함에겐 한 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바로 자식이 없다는 것이죠. 그의 나이가 85세 되었고, 아내의 나이가 75세가 되었는데도 아직 자녀가 없다보니 이들의 걱정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사라를 통해 아들을 주신다고 하였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마냥 기다리자니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무언가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마침내 그들은 당시 그 지역의 풍습을 따랐습니다. 자신이 임신을 못하게 되는 경우 자신의 부리는 몸종이나 노예를 대신하여 대를 잇게 하는 것이었죠. 이전에 씨받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그 당시에도 그런 씨받이를 통해 대를 잇게 하는 것이 일반적인 풍습이었고, 또 이는 임신하지 못하는 여인이 당연히 해야 할 의무 중의 하나였습니다. 사라도 그런 풍습을 따라 그의 여종 하갈을 아브라함의 후처로 주었습니다.
하갈은 이집트에서 팔려온 여인이었는데, 그가 아브라함의 후처로 들어가자 덜컥 임신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임신을 하게 된 하갈이 갑자기 태도가 달라집니다. 그의 주인이었던 사라를 무시하게 된 것이죠. 하갈의 그런 오만불손한 태도에 사라는 이중고를 겪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이때까지 임신하지 못하게 된 원인이 자신에게 있었다는 것을 하갈의 임신을 통해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죠. 내 몸에 문제가 있구나, 그런 자괴감에 사로잡히게 되었던 것이죠. 거기다가 자기가 부리던 종이 자신을 비웃고 학대하는 것에는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꼈고, 참다못한 그녀는 아브라함을 찾아가 분통을 터트린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런 그녀에게 하갈의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다시 확인해주었고, 그 때부터 상황은 역전되어 하갈이 사라의 학대에 못 이겨 집을 도망쳐 나오게 되었습니다. 잠언에 보면 종을 어렸을 때부터 곱게 양육하면 그가 나중에는 자식인 체하리라 (29:21)고 하였는데, 하갈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분수를 넘어서게 되면 이런 비극을 당하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처 없이 도망쳐 나온 하갈, 그녀는 사막에서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래도 자신의 아들을 임산한 여인인데, 아브라함이 이 일을 두고 얼마나 걱정했겠습니까? 하지만 사라의 눈치를 살피느라 어떻게 행동하지 못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대신하여 하갈에게 나타나서는 그녀를 살려주십니다. 주인에게로 돌아가 그녀에게 복종하고 자녀를 낳으라고 당부하면서 그 아들이 큰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이라 예언해줍니다. 그런 하나님의 배려에 하갈은 다시 돌아와 무사히 아들을 낳을 수 있었고,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하나님의 천사를 만난 그 곳의 샘 이름을 “브엘라해로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브엘라해로이는 천년이 지난 후에 이스라엘의 운명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명이 되기도 합니다.
예전 알렉산더 대왕이 겪은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그가 소아시아의 골디운이라는 도시에 갔을 때 그 신전에 이륜마차 하나가 묶여 있습니다. 그 마치를 묶고 있는 매듭을 풀면 세계의 제왕이 될 수 있다는 전설이 있었고, 이를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라고 하였죠. 알렉산더가 이 매듭을 푸는 일에 도전하였고, 그는 매듭을 풀다가 안 되자 칼로 삭둑 잘라버렸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도 살다보면 이렇게 풀기 어려운 매듭으로 꼬여가다 나중에는 삭둑 잘라버려야 할 그런 상황에 부딪히게 되죠. 그나마 삭둑 잘라버려서 해결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결코 인생이란 그럴 수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지금 아브라함 역시 그 힘으로는 어쩔 수 없이 꼬여만 가는 문제 앞에 속수무책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의 일에 개입해주시고, 그 문제를 해결해주십니다.
하갈이 브엘라해로이라고 이름 붙인 그 샘의 뜻은 “나를 살피시는 살아계신 이의 샘물” 이라는 뜻입니다. 그 샘물의 이름 속에 자신의 분수를 넘어서 화를 자초한 하갈이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고, 자신의 분을 못 이겨 남편의 자식을 죽일뻔한 사라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두 여인의 갈등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그저 일어 되어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무능한 아브라함을 구원할 수 있었던 비밀이 담겨있는 것이죠. 브엘라해로이, 바로 당신을 위한 샘물이기도 하구요.
사랑하는 자의 죽음을 준비하는 아브라함
아들을 내놓으라는 잔인한 하나님, 내주는 비정한 아브라함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사면초가에 몰린 아브라함
by 코이네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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