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엘로 올라가라
본문 : 창 35장 1절 -15절
2016.10.23. 소토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저는 지난 주 설교 때 한 가지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그 지역 족장인 세겜으로부터 강간을 당하고, 이에 분개한 야곱의 아들들이 모략을 써서 세겜과 그 성에 사는 사람들을 아주 잔인하게 죽이고 노략질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야곱과 그 가족은 큰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자신들이 세겜 사람들을 죽인 것처럼 자신들도 하루 아침에 죽을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 속에서 야곱은 아들과 상의하고, 걱정만 하지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그 모든 험난한 세월동안 야곱은 항상 기도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순종하며, 자신이 겪는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며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그런 야곱이 이 절체절명의 순간이 되기까지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
야곱은 에서와 감격적인 상봉을 하였습니다. 이제껏 쌓였던 감정의 앙금이 모두 사라지고 형제는 화해하였습니다. 에서가 먼저 떠나고 이제 야곱이 그 아버지의 집을 향해 길을 떠납니다. 그런데 숙곳을 지나 세겜에 이르렀을 때 무슨 일인지 그곳의 밭을 사서는 그곳에서 정착할 준비를 합니다. 하나님과 약속했고, 또 하나님이 명령한대로 벧엘을 거쳐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야곱이 더 이상 가지 않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린 것입니다. 그만큼 세겜 땅이 아주 매력적인 곳이었던 모양입니다. 그곳에 정착하며 사는 것에 대해 다른 가족들도 별 불만이 없습니다. 왜 고향으로 더 가지 않습니까? 이렇게 따지는 사람도 없습니다. 사실 세겜에서 벧엘까지는 겨우 48km의 거리입니다. 바삐 재촉하면 하루, 천천히 가도 사흘만 더 가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곳입니다.
야곱과 그 가족은 일차 목적지인 벧엘을 목전에 두고 그만 주저앉아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정착하기에 정신이 없습니다. 그렇게 1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10년 참 긴 세월 같은데, 요즘 제 경우를 생각해보면 눈 깜짝할 사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우리 소토교회에 온 지 벌써 6년입니다. 온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6년입니다. 한 곳에 정착하는데 10년이라는 세월은 정말 금방 지나가버리는 세월이 아닐까 싶습니다. 야곱의 성격상 그곳에 정착하는데 엄청난 노력을 들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좀 살만하다 싶을 때 디나 사건이 일어났고, 그 후에는 자신들이 감당못할 그런 짓을 저지르고 만 것이죠.
지도는 news bible에서 제공한 것을 가져왔습니다.
야곱이 왜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이 되기까지 기도하지 않았을까요? 잊어버린 것입니다. 사람이 그렇습니다. 긴박할 때는 하나님을 절실히 찾는데, 그 모든 어려움들이 해소되고 난 후에는 점점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이전에는 하나님 없인 못살 것 같았는데, 문제들이 해결되고 난 뒤에는 하나님 없이고 충분히 잘 살 수 있고, 또 별 문제없이 잘 살기 때문에 잊어버리는 것이죠. 하나님은 야곱 곁에 그대로 있는데, 야곱은 점점 하나님을 떠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10년을 살았던 것입니다. 또한 세겜 땅이 참 매력적인 곳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야곱은 그가 가야 할 목적지도 잊어버린 체 야곱은 세겜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벧엘에 올라가야 할 사람인지 세겜에 머물러 있어야 할 사람인지 분간이 되지 않은 세월을 보낸 것입니다.
야곱이 이렇게 넋놓고 있을 때 하나님이 야곱을 찾아와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35장 1절 말씀을 보면 바로 이때 하나님의 음성이 야곱에게 들려왔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벧엘은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경험으로 여기가 하나님의 집이라고 이름 지었던 곳입니다. 그는 거기서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과 약속하였습니다. 벧엘에서 야곱은 거듭났고, 하나님은 야곱의 약속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벧엘은 바로 야곱의 첫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그곳으로 올라가 네가 내게 했던 약속을 지키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단을 쌓고, 다시 너의 정체성을 바르게 가지라는 것입니다.
신기한 것은 우리는 위기에 당했을 때 평상시에 듣지 못했던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 평상시에 멀리 보이던 하나님께서 우리가 위기에 있을 때 우리에게 나타나 주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위기에 처했을 때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늘 말씀하시지만 우리가 평안할 때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거기에 의지하며 삽니다.
그러나 지금 야곱에게는 세상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리를 듣습니다. 사방이 꽉 막히고 절망에 싸여 희망의 소리가 들려오지 않고 깜깜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어디에 서 있어야 할 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가 당하는 인생의 위기는 우리가 서야 할 곳에 서있지 않기 때문에 당하는 것입니다. 이제 벧엘로 가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겸손하게 엎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어려움이 생기면 우리의 힘으로 해결해 보려고 발버둥 칩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지식으로 연줄로 경험으로 고집을 부립니다.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한 절대로 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정말로 그 위기에 서 벗어나려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고 자신의 잘못을 하나 님 앞에 아뢰고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 순간에 또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뾰족한 수가 생기는가?”
야곱의 경우를 보면, 뾰족한 수가 생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가 이전에 얍복강에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생겼습니까? 그는 기도했더니 무엇이 중한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상황이 변한 것은 없는데 무엇이 중한지를 알게 되는 그런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그 형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었고,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하나님의 군대를 만났으며,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모든 위기를 극복하고 그가 부자가 되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의 문제는 항상 우리에게 닥쳐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우리는 이 문제를 너끈히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게 닥친 그 문제가 얼마나 크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얼마나 대단하신 분인가를 알고, 그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야곱은 세상에 눈이 어두웠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았지만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다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회개했습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어긋난 길을 바로 잡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벧엘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가 어떻게 했습니까?
첫째 그는 일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어디서 일어나야합니까? 그렇습니다. 실패의 자리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유혹 받은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라는 것이죠? 예, 벧엘로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벧엘은 어디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자리, 약속의 자리 하나님께서 계시는 자리입니다. 이곳으로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이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일어나야 합니다. 실패의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유혹 받은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이곳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면 올라갈 수 없습니다. 벧엘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여기서 일어나야만 합니다. 이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말씀입니다. 우리들도 사실은 벧엘을 향해 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이 이 벧엘까지 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일어나야 합니다. 어디에서 일어나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들을 유혹한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여기서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갈 수 없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실패의 자리 세상의 자리에서 전혀 일어나지도 않은 채 벧엘로 올라가려 합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일어나야 만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시간 여러분들의 자리를 점검해 보십시오. 그리고 여러분들이 세겜에 앉아 있다면 일어나십시오. 그리고 벧엘로 향해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둘째 모든 신상을 버렸습니다.
셋째 자신을 정결하게 하였습니다.
넷째 의복을 갈아 입었습니다.
그리고 벧엘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사방을 두렵게 해서 야곱을 보호해주십니다.
우리는 야곱과 같은 처지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인생이 위기와 환란의 반복이라지만 어려움을 당하면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어떻게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발버둥을 치게 됩니다. 때로는 너무 낙심하여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 이마에 주름살 이 늘어가고 흰머리가 돋아나고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살이 녹고 뼈가 삭는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문제는 누가에게나 닥치는 이러한 인생의 환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위기와 환란을 잘 극복하면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지만 극복하지 못하면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인생의 행복, 가 정의 행복은 바로 여기에서 승패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누구든지 피할 수 없는 이러한 절대 절명의 위기를 어떻게 잘 벗어날 수 있는가에 달려있습니다.
by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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