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이 꿈을 꾸다
본문 : 창세기 37:1-11
2016.11.20. 소토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요즘 우리 사회는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로 아주 혼란스럽습니다. 하루가 지나면 숨겨졌던 또 다른 비리와 문제가 불거져 나옵니다. 어제 신문을 보니 수영선수 박태환이 리우올림픽에 자진 사퇴하라고 문체부 차관이 직접 박태환측에 전화를 해서 압력을 행사하였고, 피겨스케이팅의 세계적인 스타 김연아도 늘품체조 시연회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러 불이익을 받았다고 합니다. 경제계는 더 많이 긴장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최순실과 박근혜 게이트에 빌붙어서 그들에게 뇌물을 바친 덕에 엄청난 특혜와 이익을 받았고, 이런 점들이 하나 둘 밝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항간에는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로 기업들을 협박하여 삥을 뜯었고, 기업들은 독재권력의 피해자인 것처럼 보도되기도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런 부정한 권력에 야합하여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정책들을 이끌 수 있었고, 또 각종 특혜를 받아 엄청난 부당이익을 챙겼습니다. 그런 것들이 하나둘 밝혀지기 시작한 것이죠.
이번 사건을 보면서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사람을 보는 안목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지도자는 사람을 잘 만나야 하고, 또 그 사람이 훌륭한 인재가 될 수 있도록 잘 키워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좋은 인재를 만나고 이를 발굴하려면 인재를 보는 지도자의 안목이 탁월해야 합니다. 옛날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한 날 농담으로 무학대사에게 말합니다. “대사의 모습이 마치 돼지 같구려” 그랬더니 무학대사가 이성계에게 “자신의 눈에는 임금님이 부처같아 보입니다.” 그랬습니다. 이성계가 좋아서 정말 그렇냐고 물으니 무학대사 하는 말이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고 했답니다. 무학대사가 간이 큰지 아니면 이성계의 사람됨이 큰지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듣고도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습니다. 유유상종이라고 훌륭한 인재를 발굴하려면 그 지도자의 안목이 먼저 훌륭해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전 성경을 읽다보면 한 가지 잘 이해가 되질 않는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일할 사람을 고르실 때 뭔가 좀 덜떨어진 그런 사람들이나 그 사람의 상황이 어려울 때, 부족할 때에 부른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그렇고 야곱이 그렇습니다.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다윗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의 대표격인 사람이 바로 요셉입니다. 우리는 요셉하면 자신을 죽이고자 했던 형들을 모두 용서한 성자 같은 사람으로 생각합니다만 성경을 좀 더 유심히 읽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37장은 요셉의 어린 시절 아니 17살 정도이니 청소년시절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군요. 그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1. 17세의 요셉은 어떤 사람?
2절을 보면 요셉은 아버지의 첩의 아들들과 함께 양을 치면서 그들의 잘못을 모두 아버지께 고해바치는 고자질쟁이였다는 것입니다. 본 것을 본 대로 말해야 하는 성격입니다. 이것은 그가 상당히 고지식한 성격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3절을 보면 야곱은 그런 요셉을 다른 자녀들보다 편애하였습니다. 다른 자녀들은 들에 나가 양을 치고 고된 일을 할 때, 야곱은 요셉을 자신의 장막에 있게 하였고, 다른 형제들과 다른 채색옷을 입혔습니다. 당시 채색옷은 왕이나 왕자가 입을 만큼 귀한 것이었습니다.
4절을 보면 요셉은 그래서 형들의 미움을 받았습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아침에 서로 만날 때 인사도 하지 않을 정도로 미움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유대사람들은 서로 반갑게 인사합니다. 모르는 사람도 길에서 만나 30분간 서로의 안부를 물을 정도로 친절합니다. 그런데 인사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사람을 사람취급하지 않는다는 아주 모욕하는 태도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자신이 그런 모욕을 받으며 형제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정도가 되면 내가 뭔가 문제가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아야 할텐데 요셉은 그런 것을 깨닫질 못합니다. 왜 형들이 날 미워할까? 이상하네! 뭐 이런 생각을 가지는 정도입니다. 즉 남의 입장에 서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5절 이하를 보면 요셉이 자신이 꾼 꿈을 형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형들 볏단이 자기 볏단을 향해 절을 하더라는 이야기를 아주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이걸 보면 요셉은 상황판단이 참 안되는 사람입니다. 시대말로 하면 "개념이 없다" 그런 아이였습니다. 이 말을 하면 어떻게 될까 생각지 못하고,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형들에게 마구 떠들어 대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의 말을 잘 듣는 효자였고, 맡은 일은 꼭 해내는 아주 정직하고 충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가 그의 형들이 있는 곳에 가보라고 하자 요셉은 두 말하지 않고 길을 떠납니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형들이 없자 그만 집으로 돌아와도 될 텐데 아버지가 시킨 일이라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그 형들이 있는 곳에 가고야 말았습니다. 거리를 보면 무려 20Km 이상을 걸어갔습니다. 여러분 여긴 사막지대입니다. 이런 광야길을 20km 이상을 걸어간다는 것, 그것도 처음 가보는 길, 자칫하면 아주 위험한 상황에 부딪힐 수 있고,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그는 아버지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그 형들에게 갔던 것입니다.
이런 점을 종합해보면 요셉은 정직하고, 성실하고, 충직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개념이 없고 사리 판단 못하며, 아버지의 편애와 후광을 입은 응석받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셉도 그렇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이렇게 장단점이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장점이 두드러지면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단점이 두드러지면 나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들은 자신의 장점은 두드러지게 하고, 단점은 잘 감추어서 보이지 않도록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눈에 띄는 장점만 보고 그 사람을 호의적으로 대합니다만 그 사람도 숨은 단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7살의 요셉. 아버지에게는 더없이 사랑스럽고 믿음직한 아들이었지만 형들에게는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나쁜 놈이었던 것입니다.
왜 형들에게 요셉은 이렇게 나쁜 놈이 되었을까요? 전 아버지 탓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야곱에게는 네 명의 아내가 있었고, 그 중 가장 사랑하는 아내는 라헬이었습니다. 다른 세 명의 아내가 열 명의 아들을 낳을 동안 라헬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낳은 아들이 요셉입니다. 여러분 야곱이 요셉을 어떻게 키웠겠습니까? 상상이 가시죠. 금이야 옥이야, 불면 날아갈까 잡으면 꺼질까 정말 귀하게 떠받들어 키웠을 것입니다. 그렇게 떠받들어 키운 아이들의 특징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 사람이 바로 요셉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덜떨어진 요셉, 형제들의 미움의 대상이 된 이 요셉에게 꿈을 주십니다.
2. 하나님이 주신 꿈
하나님은 요셉에게 두 개의 꿈을 주셨습니다. 같은 내용의 꿈을 연거푸 보여주셨다는 것은 그 일을 분명히 이루겠다는 하나님의 확고한 의지를 나타내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의 가족의 곡식단들이 자신의 곡식단을 향해 절을 하는 것, 즉 형들이 자기 앞에 엎드리고 자신은 그런 공경을 받는다는 내용이었고, 그 다음은 그 형제들의 별과 아버지 어머니를 상징하는 해와 달까지 자신을 향해 엎드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요셉은 훌륭한 사람, 지위가 높은 인물이 될 것이라는 것이죠.
요셉은 이 꿈을 꾸자마자 입이 근질거려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형들을 모아놓고 자기 꿈을 침을 튀겨가며 자랑합니다. 나이가 열일곱인데, 이 자랑이 형들에게 얼마나 큰 분노를 자아낼지 생각도 못합니다. 그만큼 사태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개념을 밥말아 먹고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 요셉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덜떨어진 요셉에게 꿈을 주셨고, 그 꿈을 이루시겠다고 하십니다.
왜 그러셨을까? 하나님의 안목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람 보는 눈이 다른 것이죠. 다윗을 선택하실 때도 하나님은 그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잖습니까? 지금은 덜 떨어지고, 개념 없고, 아버지 후광을 업고 복에 받쳐 제 잘난 맛에 살아가는 정말 밥맛없는 아이지만, 하나님은 그 아이가 13년 후에 가뭄에 허덕이는 세계를 구원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영에 충만한 사람이 될 것을 보신 것입니다.
저도 이런 안목을 가지고 살았으면 합니다. 솔직히 지금 그런 안목이 없기에 사람을 볼 때 조심합니다. 지금 내 눈에는 좀 아니다 싶어도 혹 이 사람을 하나님께서 요셉처럼 쓰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 “될 성 싶은 나무 떡잎보고 알아 본다” 이런 속담을 아주 싫어합니다. 그리고 “세 살 버릇 여든 간다” 이 속담도 아주 싫어합니다. 떡잎이 좋으면 그 나무가 좋은 나무로 자랄 가능성은 있고, 세 살 적 버릇이 좋으면 좋은 습관을 익힌 사람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지, 꼭 그렇게 된다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사람은 얼마든지 자라면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금 철없는 요셉이 나중에 세상을 구원하는 애굽의 총리가 되는 그런 변화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 사람 만들기 프로젝트
또 하나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요셉은 다른 형제와 달리 하나님의 꿈을 가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그 계획을 이루고자 요셉에게 꿈을 주셨고, 그 꿈대로 이루겠다고 연거푸 꿈을 꾸게 해서 요셉으로 그 꿈에 대해 확인시켜주었습니다. 분명 꿈대로 될 것입니다. 그런데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꿈을 받은 요셉, 꿈만 받았다고 다 된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지금 이런 철부지 요셉의 모습으로 그 꿈은 전혀 가당치가 않습니다. 달라져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요셉을 그대로 개념 없는 아이로 내버려두질 않고, 훈련을 시킵니다. 하나님의 꿈 그 비전을 이루기에 충분한 실력자가 되도록 훈련시킵니다. 대충이 아니라 아주 혹독하게 시킵니다. 즉 형들에게 죽을 뻔 했다가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이후의 모든 여정이 하나님의 꿈을 이룰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 만들기 프로젝트’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만들기 프로젝트’, 요셉을 보면 하나님에게 대충이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충분하게 훈련시킵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꿈을 이룰 실력을 갖춘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여러분 모두 요셉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런 꿈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꿈을 달라 기도하시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실력자로 훈련시킬 수 있도록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길 바랍니다. 분명 힘든 여정이지만 힘든 만큼 우리 인생이 달라집니다. “인내는 쓰나 열매는 달다” 맞습니다. 훈련은 쓰지만 그만큼 우리 인생은 훌륭해집니다. (*)
by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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