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인 리더십,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독재자의 변명
고대 그리스신화에 프로크루스테스라는 도적은 ‘메가라’라는 아테네로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나그네들을 집으로 유인해 특수한 침대에 재웠다. 그 사람의 키가 침대보다 작으면 늘리고, 침대보다 크면 자르는 방식으로 무고한 생명과 재산을 강탈하던 그는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에 의해 똑같은 방법으로 죽임을 당하였다. 이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자신이 세운 기준에 얽매어 잘못된 판단을 하는 사람이나, 융통성이 없는 사람을 지칭하는 관용구로 쓰이고 있다.
만일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은 사고방식을 살아간다면 별로 갈등할 일이 없을 것이다. 무엇이든 자신의 편리대로 자르거나 늘리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도 동일한 방법으로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였다. 그보다 더 비극적인 것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친구 하나 없었으며, 그의 기준에 맞지 않는 자를 다 죽여버렸기에 그는 늘 혼자 살아야했다는 것이다.
독재자들은 이 프로크루스테스 침대를 가장 적절하게 사용하고 애용하여 왔다.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은 권력이라는 힘을 가지고, 그들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은 과감하게 잘라버리거나 늘일 수 있었다. 이 맛에 중독되어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하나님이라도 된 것 같은 착각을 갖고 권력을 누렸으며, 그 때는 그것이 영원하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권불십년이라고 그런 독재 권력은 곧 역사의 심판을 맞았고, 비참한 최후로 끝이 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우리가 경험해온 실제 역사의 현장이다.
우리에게는 삶의 기준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이런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그리운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는 다 용서받고 이해받고 싶은 그런 이기적인 심리가 가득하다. 그렇게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과거를 반성할 줄 모른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프루크루스테스의 침대를 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런 이들이 지도자가 되면 그 사회는 정말 비참해진다.
요즘 우리 사회에 다시 이 프루크루스테스의 침대의 망령을 지닌 사람들이 떠오른다. 예전 유신독재에 대한 제대로된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보니, 독재자의 딸도 유신의 희생자라는 망발을 한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전두환과 그 가족들은 518의 희생양이고, 히틀러나 일본 천황도 2차대전의 희생자이며, 이완용과 을사오적도 구한말 격변기의 희생양이라는 말인가?
지도자들에게 과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하는 것은 과거에 묶이자는 것이 아니라 그 잘못된 과거라면 그것을 청산하고 새로운 길로 가자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과거에 대해 철저히 반성하기를 꺼려하고 갖가지 망발로 떠들어댄다면 그것은 반성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며, 다시 그 시대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지도자를 뽑을 때 가장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바로 이런 역사의식인 것이다.
by 코이네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
|
'코이네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동예화, 벤카슨 박사의 인생 역전을 이룬 어머니의 격려 (0) | 2012.09.04 |
---|---|
지도자들을 실패로 이끄는 함정들 (0) | 2012.09.03 |
탈진할 줄 모른 채 일만하는 목사 위험하다 (0) | 2012.07.28 |
기독교와 노무현 그리고 사람에 대한 예의 (0) | 2012.05.23 |
지성과 감성 신앙의 양극화를 극복해야 한다 (0) | 2012.04.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