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3장, 에덴동산과 선악과,
사람의 눈이 밝아졌다는 의미
창세기를 읽으면 정말 흥미진진합니다. 마치 재밌는 연속극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죠. 지난 번 글까지 창세기에 대해 6번의 글을 썼는데, 제가 마치 시나리오 작가가 된 것 같은 느낌입니다. 지난 번까지는 내용이 선악과를 먹으면 죽게된다는 하나님의 경고와 그것을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는 말하는 뱀 즉 마귀의 유혹 속에서 마침내 마귀의 말을 따르는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마 이를 극화한다면 선악과 아래에서 고민하며, 마침내 선악과를 손에 넣는 하와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시청자들의 긴장을 고조시키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리고 그 다음 장면 과연 결과는 어떻게 될까? 시청자들이 숨죽이며 그 결과를 기다릴 때, 아랫부분에 조그맣게 '.. 다음회 계속' 이라는 자막이 뜰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은 사람들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성경을 보니 선악과를 먹은 두 사람에게 네 가지의 큰 변화가 생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그들이 눈이 밝아졌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계관 가치관이 확 달라졌다는 것이죠. 사람이 그 생각과 추구하는 가치관이 달라지면 완전 딴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 한 선악과를 먹은 사람들, 완전 딴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죠. 이전에는 하나님을 세상의 중심으로 삼고 살았는데, 이제는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세상의 주인이 마치 인간인양 착각하며, 모든 것을 자기 중심으로 생활하는 그런 사람으로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그것을 두고 성경은 눈이 밝아졌다고 표현합니다.
둘째,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그때부터 서로를 구별하기 시작합니다.
이전에는 자신도 세상도 모두가 하나님의 창조물로 인식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피조물로서 같은 것이었고, 인간도 그 속에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습니다. 세상과 인간이 구별되지 않았죠. 그런데 선악과를 먹고 눈이 밝아진 인간은 세상과 인간을 구별할 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과도 구별하기 시작합니다. 여자와 남자가 다르다는 차별심을 갖게 되고, 벌거벗은 몸을 부끄럽게 여기고 부끄러움을 가리기 시작한 것이죠.
셋째, 하나님을 피하게 되고, 그늘에 자신의 몸을 숨기게 됩니다.
이전까지 인간은 하나님이 참 반가운 존재였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동산에서 놀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자기중심적이 되어버리니 하나님이 귀찮고 무서운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죠. 세상의 중심은 인간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는데, 진짜 주인이 나타나니 아주 껄끄럽게 되어 그저 피하고 싶은 것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기에 당연히 그 책임을 져야 하기에 하나님이 두려운 것이죠.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자 나무 그늘에 자신의 몸을 숨긴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마귀의 말을 더 믿고 하나님을 배반한 인간들, 그 결과는 참혹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창조물로서의 그 본분을 잊어버리게 되고, 자신이 세계의 주인이 되고자 할 때 인간은 세계와 단절되고, 고립된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죠. 이전에는 사람들이 이 세상의 관리자요 지배자였습니다. 인간이 있었기에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가 더 완벽하고 아름다운 것이 되었죠.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인간이 없으면 세상은 더욱 아름답게 잘 보존되고 돌아가는데, 인간의 손만 닿으면 파괴되어지고 그 아름다움이 사라집니다. 그 이유는 인간이 세상을 자기 이익에 맞는대로 자기 뜻대로 바꾸어버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 입맛대로 파괴되어진 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인간의 미적 감각 또한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현 대통령이 4대강 사업을 벌이려고 하는 이유도 그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이전에 지리산에 올라가서는 여기는 아직 개발되지 않아서 안타깝다고 했다고 하더군요. 그의 눈에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은 아름답지가 않은 것이죠. 대신 돈이 되도록 개발되어진 모습, 정원처럼 잘 가꾸어진 모습이야말로 선진국다운 좋은 것이라는 나름의 신념이 있기에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한 인간과 인간이 서로 구별하며 차별하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만들어지고, 성별과 피부색 그리고 인종, 민족 등 하여간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 수 있는대로 만들어서 구별하고 차별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은 약육강식이라는 이상한 신조를 만들게 되고, 힘있는 자들이 세상을 지배해야 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강박관념을 갖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현 사회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하나님을 회피하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사실 이것이 인간에게 있어 가장 안타까운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잊어버린 인간에게 찾아온 것은 다름 아닌 죽음입니다. 이전에는 죽음을 몰랐는데, 이제는 죽는 존재, 유한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죠. 이것이 선악과를 먹은 인간에게 찾아온 네 번째 변화입니다. 죽음의 덫에 걸린 인간.. 수많은 철학자들이 이 부분에 대해 질문을 하죠? 하지만 그 누구도 이 죽음을 해결할 수 있는 답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왜냐면 그 답을 찾았다고 한 사람들 모두도 다 죽었기 때문이죠.
신앙은 바로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by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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