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하나님의 성품, 은혜롭고 자비롭지만 질투하시는 하나님

코이네 2014. 4. 25.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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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4장,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이 질투하신다 정말인가?

 

출애굽기 34장, 하나님의 성품, 은혜롭고 자비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 그러나 질투하시는 하나님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지른 죄악 때문에 시내산에서 맺은 하나님과 모세의 언약은 자연스레 파괴되었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을 하나님인양 섬기며 우상숭배를 자행한 것은 정말 돌이키기 힘든 죄였습니다. 이 때문에 분노한 하나님, 그 분노의 모습은 마치 불륜을 저지르는 아내를 현장에서 목격한 그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분노는 좀체 풀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모세의 중재로 하나님은 진노를 거두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용서하기로 하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몸에서 장식물을 다 빼며 자숙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모세를 시내산으로 부르십니다. 지난번에 깨뜨린 그 돌판과 같은 것으로 잘 다듬어서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계약서를 다시 쓰시겠다는 것이죠.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이 지시한대로 돌판을 만들어 그것을 손에 들고 시내산으로 올라갑니다. 시내산에 올라서니 하나님께서 강림하시며, 모세와 대화를 하십니다. 그 대화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어떤 분인지에 대해 세 가지의 설명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바로 하나님의 입으로 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설명하시는 것이죠. 핵심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1. 나는 여호와로다

하나님의 임재 때 하나님은 자신의 입으로 자신에 대해 선포하십니다. 먼저 여호와로다를 두번 반복합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즉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짓고, 행동하는 분이며, 누구의 도움도 또한 누구와도 타협할 필요가 없는 유아독존의 하나님임을 말씀하십니다. 이는 곧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너희는 바로 나 여호와의 기업이고 그 백성이니, 하나님 외의 그 어떤 것과도 타협하거나 숭배하거나 굴욕을 당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숭배한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은혜롭고 자비로우며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또한 자신을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고 선포하십니다. 이 말씀을 하신 것은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록 범죄하였지만 그 죄를 용서하겠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다가 이런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왜 모세에게 이런 말씀을 하실까?

예전에 친하게 지낸 목사님이 계신데 그 분은 정말 언행일치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정의로운 분이고, 자신에게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올곧은 분이셨습니다. 누구나 존경할만한 분인데, 그분이 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용서하는 것입니다. 우린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을 욕하고 미워하다가도 나도 그럴 수 있지 않느냐? 나는 저 사람을 욕할만큼 그렇게 정직하고 바른생활의 사나이냐?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하셨을 때, 거기 있던 사람들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것처럼, 그래 인간이 원래 그렇지! 하면서 이해해주려고 하잖습니까? 그런데 그분은 그게 안되는 것입니다. 자신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것이죠. 당신은 그럼 떳떳하냐? 그렇게 물으면 난 떳떳하다 그렇게 대답할 수 있는 분이셨거든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용서하기 쉬울까요? 아님 우리 인간이 인간을 용서하기 쉬울까요? 제 생각에 어찌보면 하나님도 용서한다는 것이 참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죄라는 것을 전혀 경험하지 않은 하나님, 그 하나님이 죄인인 인간을 용서하고 받아들인다는 게 얼마나 난해한 일이겠습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나타나실 때 스스로 "나는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심으로 어떻게 하든 이들을 용납하고 용서하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내신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3.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질투라는 단어는 그리 긍정적으로 쓰이지 않는 말입니다. 로마서에도 보면 사람의 악행 중 하나가 시기와 질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스스로 질투하는 하나님이라 하십니다. 그래서 혹 이 질투라는 말이 좀 더 긍정적으로 쓰인 다른 말이 있는가 원어를 찾아봤습니다. 히브리 원어로는 칸나인데 이는 '질투하는, 시샘하는 jealous'를 의미하며, 부부간에 자기 짝이 아닌 다른 이에게 한눈을 팔때 나타나는 감정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부부가 부정한 짓을 저지를 때 그에 대한 불붙는 분노를 나타내듯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른 우상이나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겼을 때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하는 이에 대한 제대로된 감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런 분노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반대말은 안사랑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예전 한 드라마에서 불륜을 저지르다 남편에게 들켰는데, 이때는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며 어떻게 하든 가정이 깨지지 않게 노력하였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한 마디에 그녀는 이혼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무슨 짓을 해도 좋으니 나에게 들키지만 말아라" 그 말에 충격을 받은 것이죠. 그 말에 남편이 자신에게 얼마나 무관심하고 있는지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이 없는데 굳이 가정을 지켜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며, 또한 우리의 온전한 사랑을 바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by 코이네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