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마태복음3장] 세례요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코이네 2014. 4. 7.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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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3장, 세례요한의 등장과 사명자의 길



 

 


마태복음3장, 세례요한의 등장과 회개의 선포

하나님은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땅에 보내실 때 아주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단 태어나서 돌봐줄 부모를 잘 선택하셨고, 태어날 때 이를 이해하게 한 동방박사들을 보내주셨고, 또 자랄 때는 나사렛이라는 동네를 통해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30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일할 때가 되니, 일하시기 전에 한 사람의 선지자를 보내 예수님의 등장을 준비하게 했습니다. 그가 바로 세례요한입니다.

세례요한을 설명할 때 구약성경 이사야를 인용해서 그는 주의 길을 준비하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하였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다른 말로 그를 선지자라고 합니다. 성경에 선지자에 대해 세 가지의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선견자, 선견지명이 있다는 뜻으로 앞으로 될 일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일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또 하나는 예언자라고 합니다. 장래일을 점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이를 선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마지막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이해하고 사명을 행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죠. 히브리어로 선견자는 호제, 예언자는 로이, 선지자는 느비임이라고 합니다. 조금씩 뜻이 다르긴 하지만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뜻을 받아서 하나님의 시킨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세례요한이 그런 선지자인 것입니다.

세례요한, 선지자 요한을 보면 우리도 그와 같은 사명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선지자 세례요한의 모습을 통해 주의 길을 예비하는 선지자이 어떠한지를 이해하고 우리도 그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제사장 가문으로 그 당시 지배계층이었지만, 그는 광야에서 자랐습니다. 어릴 때부터 세상에 물들지 않고, 오직 하나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하나님 말씀으로 삶을 훈련하여, 전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입니다. 그의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분주한 도심 속에서 들려오지 않고,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들려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이 세속의 영달과 명예와 성공에 집착해 있을 때 우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광야에 머무는 것처럼 오직 하나님과 나만이 만나는 그 고독 속에서 우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둘째, 그는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그가 입은 옷은 야생에 버려진 낙타털로 만든 것이었고, 가죽끈을 매었습니다. 음식 또한 야생의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습니다. 그가 사는 곳은 광야의 동굴이었습니다. 그의 모습은 구약성경의 엘리야와 흡사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이런 것에 염려하거나 걱정하며 살아가지 않고, 그는 오직 하나님이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헌신하며 살고자 작정한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참 선지가의 삶을 대하는 모습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호사를 누리기 위해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셋째, 그는 회개를 선포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막 살아가고 있는 세상 사람들에게 천국이 있음을 선포하였고,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깨닫게 하였습니다.

회개는 먼저 죄를 비난하는 것입니다. 그에게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왔습니다. 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 회칠한 무덤이라고 욕을 해댑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거룩한 척하지만 그 속은 세상의 욕정과 욕망, 욕심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위선을 들추어내고, 그들에게 자신의 영혼을 진실되게 바라보는 것이 회개입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과 대면하게 하는 것, 여기서 우리의 신앙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또한 회개는 단지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어떤 분은 집회 때 펑펑 울면서 자기의 죄를 자복합니다. 속은 후련해졌지만 그 삶이 변화되지는 않습니다. 달라지려고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회개는 돌아서는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깨닫고 여기서 돌아서서 바른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개는 두리뭉실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에게 나아온 자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고쳐야 할지를 물었고, 요한은 답을 해줍니다.

그리고 하나님 백성이 되도록 이끕니다. 죄인인 삶을 벗어나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회개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가 혈통적으로 하나님이 선택한 선민이기 때문에 천국 백성이라는 가당찮은 자신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누가 뭐래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이죠.

어떤 경우 지금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이런 허황된 자신감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와 친한 목사님이 그 교회 설교가 달라졌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그 교회 교인들을 제가 개인적으로 잘아는 분들이 있는데, 어쩌다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이 분들이 제게 하소연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 가기 싫다구요. 권사고 장로인데 그럽니다. 이유가 뭐냐고 하니, 목사님이 요즘 설교를 하시는데 치는 설교를 한다는 것입니다. 목사님 말씀대로 살려고 하니 너무 힘들고, 그렇게 못하면 구원 못받았다고 하니, 지금껏 헛믿었는가 싶고, 또 교회 가면 설교시간에 죄인처럼 맞을 걸 생각하니 겁이 나서 못가겠다는 겁니다. 이렇게 삽시다 하면 좋을 건데, 이렇게 못살아서 되겠습니까? 그래서 천국가겠습니까? 그러니 미칠 노릇이라는 것이죠. 제가 그랬습니다. 그 목사님 성품으로 봐서 뭔가 단단히 화가 나셨나봅니다. 아니면 강한 위기감을 가지셨던지요. 그러니 아무 말도 못해요.

때때로 그런 긴장감을 느껴야 합니다. 세례요한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두고 너희는 찍혀 불에 던져질 것이라고 등에 땀이 뻘뻘 흘리게 하는 무시무시한 선고를 듣고, 정신 차려야 합니다. 대충 천국갈 생각 말아야 합니다. 뭐 성경에는 없지만 대충 믿어서 대충 천국가고자 하는 얍삽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 천국 가서 제 느낌에 천국부적응자 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마지막으로 요한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알았습니다.

그의 삶의 목적은 앞으로 예수님이 활동하시도록 예수님의 앞길을 열어두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잘 소개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그의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는 이 목적에 충실하였습니다.


 

 


by 코이네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