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 묵상

용서하지 않는 것도 죄인가?

코이네 2015. 6. 11.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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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말씀 :

마18: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태복음 18장에 용서하지 못한 관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도대체 어떤 짓을 했길래 왕에게 1만달란트라는 어마어마한 빚을 지게 됐을까? 하여간 그런 못된 관원이 있었다. 평소에는 몰랐는데, 왕이 감사를 시작해 보니 왕에게 빚진 것이 1만달란트라는 것이다. 놀란 관원이 어찌할 바를 모르자 왕은 갑자기 진노를 그치고 그 관원을 용서해버린다. 이유가 없다. 순식간에 천국과 지옥을 오간 이 사람, 왕궁을 벗어나면서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얼굴을 몇 번이나 꼬집었을 것이다. 그러다 그에게 5백 데나리온 빚을 진 사람을 만났다. 그는 다짜고짜 빚을 갚으라고 독촉했고, 그 사람이 돈이 없다고 하니 감옥에 쳐넣어버렸다. 돈 갚을 때까지 못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소식이 왕에게 들렸다. 왕은 이 관원을 다시 잡아서 나는 너의 빚을 모두 탕감해줬는데, 너도 친구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하고 꾸짖으며 그를 감옥에 넣어버렸다.

 

실제 있었던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지어내신 이야기다.

얼마나 용서해야 하는지 묻는 베드로에게 용서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기 위한 이야기인 것이다.

 

용서가 무엇일까? 그런데 용서를 생각하기 전에 빚이 얼만지를 먼저 봐야한다.

빚이 무려 일만달란트다. 1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이고,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치 임금이다. 당시 유대 전지역에서 거둬들이는 일년 치 세금이 800달란트라고 한다. 로마정부가 6백달란트, 헤롯이 2백달란트의 세금을 거뒀다고 하는데, 일만 달란트는 무려 12배 이상이 되는 어마어마한 돈인 것이다.

한 사람이 정말 이만큼의 빚을 지는게 가능할까 싶은 그런 금액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짓는 죄를 돈으로 환산하면 이만큼 된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우리가 그렇게 사는 지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서서 우리 인생을 정산할 그 때가 되었을 때 우린 마이너스 일만달란트의 빚을 지고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그리고 처리할 수 없는 그런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의 친구가 진 빚은 5백데나리온이다. 사실 적은 것이 아니다.

적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앞에 왕에게 일만달란트를 탕감 받았기 때문이다.

일만달란트에 비하면 5백데나리온은 정말 껌값도 되지 못한다.

이 오백데나리온이 바로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지는 빚이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서로에게 상처주고 상처입고 그렇게 생긴 빚이 5백데나리온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짖는 죄에 비할바가 아니지만 우리는 이 상처 때문에 죽고 산다.

어쩌면 우리가 하나님께 지고 있는 일만달란트는 너무 커서 그것에 대한 감각 자체가 없어져 버렸는지 하나님께 짓는 죄에 대해서는 사실 무감각하게 산다. 하지만 오백데나리온은 우리의 삶에서 피부로 느끼는 어려움이다. 그래서 일만달란트를 탕감 받았어도 오백데나리온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 용서받은 것은 별 감동이 없고, 느낌도 없다. 하지만 친구에게 빚진 오백데나리온은 정말 절실한 것이 우리 인간이다. 그래서 용서를 모른다. 일만달란트를 탕감 받아도 내가 용서 받은 것은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남을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 우리는 하나님처럼 아무 조건 없이 그렇게 용서해본 적이 없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처럼 그렇게 쿨하게 용서해줄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셋째 그리고 우리는 오백데나리온을 포기할 수 없다. 용서하면 그에 따른 희생과 손해가 생긴다. 그것을 감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좋은 것은 결코 그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좋은 것을 가질려면 엄청난 훈련이 필요하다. 거기에 성령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야 그 좋은 것이 내 것이 되는 것이다. 이 일만달란트 탕감 받은 관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처럼 용서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우리는 정말 열심히 훈련해야 한다. 훈련해서 용서하는 자가 되어야 천국에 갈 수 있다. 그 관원은 다시 왕에게 붙잡혀왔다. 이번에 붙잡혀온 죄명은 빚을 졌고 그것을 갚지 못해서가 아니라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왕이 중요하게 보는 죄가 바로 이것이다. 일만달란트의 빚 정도는 쿨하게 탕감해줄 수 있는데,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법이며, 천국의 법이다.

 

우리는 때로 용서하지 않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알아야 한다.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큰 죄이다. 천국은 용서하는 자,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며 긍휼히 여기는 자에게 허락된 것이다.

 

 

 

 


by 코이네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