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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2장 하반부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나안 땅에서 정착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있지 않아 시련이 닥쳤습니다. 바로 그 땅에 심한 가뭄이 든 것이죠.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 가뭄이 들면 아브라함과 같은 목축업자들은 목축을 할 수 있는 물이 풍부한 곳을 찾아 떠나야만 했습니다. 북쪽보다는 남쪽이 더 여건이 괜찮기에 점점 남방으로 이주하다 더이상 그곳에서 버티기 힘들어지면 애굽 지금의 이집트로 내려갔습니다. 왜냐면 이집트에는 마르지 않는 나일강이 있기 때문이죠. 아브라함도 그렇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집트로 넘어와서 정착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가 사라였는데, 이 여인이 절세가인이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녀의 미모는 이미 궁중에까지 소문이 났고, 이 때문에 아브라함은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당시 사라의 나이는 적어도 6세가 넘었습니다. 지금으로 본다면 완전 할머니인데 그 할머니가 얼마나 예뻤기에 그런가 싶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라가 죽을 때 나이가 12세였습니다. 인생의 절반이 되었을 때였죠. 지금으로 보면 한 사십대 미시의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단순한 목축업자가 아닙니다. 한 부족의 족장이었고, 그 규모도 남들이 무시못할 정도였습니다. 이런 부족이 애굽에 들어왔으니 항상 그 감시받는 처지였고, 자칫 빌미를 제공했다가는 부족 전체가 몰살당할수도 있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런 때 사라의 미모가 궁중에까지 알려지게 되고, 이집트이 왕 파라오의 관심이 되었다면 이건 정말 큰 일인 것이죠. 파라오가 사라를 자기 소유로 취하기 위해 아브라함을 죽일 수도 있는 그런 시대였거든요. 그래서 아브라함은 아내에게 이런 제안을 합니다.
"잘못하다가는 우리 모두 파라오에게 죽을 지 모르니, 당신을 내 처가 아니라 동생이라고 합니다. 사실 당신은 나의 사촌 동생이기도 하지 않소?"
사라가 아브라함의 제의에 동의하고, 둘은 부부가 아닌 것처럼 행세했습니다. 궁중에서 사라가 아브라함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자 정식적인 절차를 거쳐 사라를 궁중으로 데려가고 맙니다. 이 때문에 아브라함은 엄청난 혼인선물을 받게 됩니다. 이 때문에 아브라함의 재산은 갑자기 늘어나게 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좋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자기 살자고 아내를 남에게 주는가 말입니다. 이 상황을 보아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선택받는 사람으로 특징이 없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렇게 비열한 짓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책망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사라를 데려간 파라오를 찾아가 혼을 내줍니다. 뭐랄까요? 제가 어릴적에 동네 형에게 가진 구슬을 한 보따리 빼앗긴 적이 있는데, 울 할머니가 좀 무섭거든요,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그 집으로 가서 한 바탕 난리를 치신 후에 제 구슬을 찾아주셨습니다. 얼마나 무섭게 하셨는지 그 형이 절 보면 슬슬 피하더군요. 하나님은 우리가 좀 더 당당하게 살기를 원하시지만 이렇게 약한 우리의 처지를 이해하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대신해서 척척 알아서 척척 도와주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 할머니 같다는 생각을 하며, 내심 그것이 힘이 됩니다.
이 당시만 해도 아브라함은 영적으로 참 철없을 때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단 한 마디 회개의 말도 감사의 말도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멀거뚱히 바라보기만 하고, 아주 수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가 자기 아내를 돌려받을 뿐 아니라 더 많은 재산을 얻어 애굽을 떠나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좀 더 믿음이 성장하고 난 뒤 이 사건을 다시 기억해낸다면 어떠했을까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만큼 창피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다음에 또 이런 일을 저지른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달라진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애굽에서 겪은 아브라함의 사건 상당히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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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12장,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아름다움에 반한 이집트의 왕
창세기 12장 하반부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나안 땅에서 정착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있지 않아 시련이 닥쳤습니다. 바로 그 땅에 심한 가뭄이 든 것이죠.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 가뭄이 들면 아브라함과 같은 목축업자들은 목축을 할 수 있는 물이 풍부한 곳을 찾아 떠나야만 했습니다. 북쪽보다는 남쪽이 더 여건이 괜찮기에 점점 남방으로 이주하다 더이상 그곳에서 버티기 힘들어지면 애굽 지금의 이집트로 내려갔습니다. 왜냐면 이집트에는 마르지 않는 나일강이 있기 때문이죠. 아브라함도 그렇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집트로 넘어와서 정착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가 사라였는데, 이 여인이 절세가인이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녀의 미모는 이미 궁중에까지 소문이 났고, 이 때문에 아브라함은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당시 사라의 나이는 적어도 6세가 넘었습니다. 지금으로 본다면 완전 할머니인데 그 할머니가 얼마나 예뻤기에 그런가 싶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라가 죽을 때 나이가 12세였습니다. 인생의 절반이 되었을 때였죠. 지금으로 보면 한 사십대 미시의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단순한 목축업자가 아닙니다. 한 부족의 족장이었고, 그 규모도 남들이 무시못할 정도였습니다. 이런 부족이 애굽에 들어왔으니 항상 그 감시받는 처지였고, 자칫 빌미를 제공했다가는 부족 전체가 몰살당할수도 있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런 때 사라의 미모가 궁중에까지 알려지게 되고, 이집트이 왕 파라오의 관심이 되었다면 이건 정말 큰 일인 것이죠. 파라오가 사라를 자기 소유로 취하기 위해 아브라함을 죽일 수도 있는 그런 시대였거든요. 그래서 아브라함은 아내에게 이런 제안을 합니다.
"잘못하다가는 우리 모두 파라오에게 죽을 지 모르니, 당신을 내 처가 아니라 동생이라고 합니다. 사실 당신은 나의 사촌 동생이기도 하지 않소?"
사라가 아브라함의 제의에 동의하고, 둘은 부부가 아닌 것처럼 행세했습니다. 궁중에서 사라가 아브라함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자 정식적인 절차를 거쳐 사라를 궁중으로 데려가고 맙니다. 이 때문에 아브라함은 엄청난 혼인선물을 받게 됩니다. 이 때문에 아브라함의 재산은 갑자기 늘어나게 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좋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자기 살자고 아내를 남에게 주는가 말입니다. 이 상황을 보아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선택받는 사람으로 특징이 없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렇게 비열한 짓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책망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사라를 데려간 파라오를 찾아가 혼을 내줍니다. 뭐랄까요? 제가 어릴적에 동네 형에게 가진 구슬을 한 보따리 빼앗긴 적이 있는데, 울 할머니가 좀 무섭거든요,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그 집으로 가서 한 바탕 난리를 치신 후에 제 구슬을 찾아주셨습니다. 얼마나 무섭게 하셨는지 그 형이 절 보면 슬슬 피하더군요. 하나님은 우리가 좀 더 당당하게 살기를 원하시지만 이렇게 약한 우리의 처지를 이해하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대신해서 척척 알아서 척척 도와주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 할머니 같다는 생각을 하며, 내심 그것이 힘이 됩니다.
이 당시만 해도 아브라함은 영적으로 참 철없을 때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단 한 마디 회개의 말도 감사의 말도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멀거뚱히 바라보기만 하고, 아주 수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가 자기 아내를 돌려받을 뿐 아니라 더 많은 재산을 얻어 애굽을 떠나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좀 더 믿음이 성장하고 난 뒤 이 사건을 다시 기억해낸다면 어떠했을까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만큼 창피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다음에 또 이런 일을 저지른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달라진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애굽에서 겪은 아브라함의 사건 상당히 씁쓸합니다.
by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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