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계3:7] 적은 능력 위대한 승리

코이네 2017. 3. 6.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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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능력, 위대한 승리

본문 : 요한계시록 37- 13

2017.3.5. 소토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1. 빌라델비아 교회

 

빌라델비아는 사데 남쪽 40Km지점에 위치, 교통의 요지입니다. 작은 아테네라고 불릴 만큼 문화의 꽃을 피웠던 곳이며, 포도 생산지로 유명한 곳입니다. 하지만 근처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이 있고, AD17년에는 지진으로 인해 도시가 거의 파괴되었습니다. 지진의 공포 때문에 도시 중심에 살지 않고, 근교에 사람들의 주거지가 형성되었습니다. 이후 로마제국의 밀 생산을 증대한다는 계획에 따라 포도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되자, 도시의 재정이 악화되었고, 마침내 소아시아지역에서 가장 살기 힘든 도시가 되었습니다.

옆동네인 사데 교회와 아주 대비되는 환경을 가졌습니다. 사데 교회가 부족한 것이 없이 풍요로우며, 모두가 부러워할 전통을 지닌 유명한 교회였고, 거기다 별다른 핍박 없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이 완벽하게 갖춘 곳인데 반해, 빌라델비아 교회는 재정적으로 빈곤하였으며, 소아시아 교회 중 가장 역사가 짧은 교회였고, 사단의 회라고 칭할 정도의 유대인들에 의해 큰 핍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빌라델비아 교회를 칭찬합니다. 그 교회에 열린 문을 두었고, 그들은 비록 그 힘이 미약하지만 승리하는 교회였으며, 끝까지 승리하여 마침내 성전의 기둥같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열린문

 

2. 열린 문을 두다

 

정말 열악하고 살기 힘든 지역에 세워진 작은 교회, 그런데 주님은 이 빌라델비아 교회에 열린 문을 두었다고 말씀합니다. 교회가 성장하기에 모든 여건이 충분한 사데가 아니라 모든 것이 부족하고 열악한 지역, 과연 이런 곳에 교회를 세운들 제대로 운영이나 될 수 있을까 싶은 그런 교회에 주님은 열린 문을 두었고, 이 교회는 작은 능력으로 주의 말씀을 지키고 그 믿음을 이어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열린 문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께서 스스로를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빌라델비아 교회는 예수님을 그들 삶의 문으로 삼고, 이 문을 통해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비록 적은 능력이지만 이를 통해 주님의 뜻을 세우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갈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사데교회에는 이런 열린 문이 없었을까요? 예수님이 문이니 당연히 거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데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그들의 문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문이 되지 못하는 교회, 교회라고 들어왔는데 보니 그 문이 예수님이 아닌 교회, 그런 교회가 있을까요? 있습니다. 그게 바로 사데교회입니다. 교회 종탑에는 분명히 십자가가 세워져 있고, 그 안에 들어가니 아주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을 하고 있고, 그들은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찬송을 합니다. 그런데 그 속에 예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있어야 할 자리에 사람이 있고, 돈이 있고, 권력이 있고, 사람들만 기쁘게 하는 문화가 있고, 사람들의 교제가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에 예수님이 없으면 그건 사교집단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데교회를 향해 너희는 이름은 살았다고 하는데 실상은 죽은 교회이다, 그렇게 분노하시는 것입니다.

 

3. 적은 능력을 가진 자와 열린 문

 

다시 빌라델비아 교회로 돌아가봅시다. 빌라델비아 교회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적은 능력으로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앞서 사데 교회와의 비교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빌라델비아교회는 모든 면에서 열악한 환경을 가지고 있고, 또 극심한 핍박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교회가 성장하며, 마침내 소아시아의 믿음의 보루가 될 수 있었을까요?

이것은 우리의 일반 상식을 깨뜨리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흔히 환경이나 여건, 갖추어진 역량이 좋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는 공식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이런 여건을 구비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명문대학에 진학하려고 발버둥을 칩니까? 그런 배경이 있어야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지지 않고, 좀 더 평탄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명문대를 나와서 엄청난 스펙을 쌓아도 실패하는 것이 다반사이지 않습니까?

 

교회도 그렇습니다. 성장하고 부흥하는 교회가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여러분은 어떤 비결을 갖고 있습니까? 아마 대부분 사람을 많이 모이게 하는데 초점을 둡니다. 그래서 교회의 위치가 좋아야 한다, 주차장이 넓어야 한다, 교육시설을 잘 갖추어야 한다, 다른 교회가 갖지 않는 우리만의 특별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전도프로그램을 계속 가동해서 사람들을 많이 끌어들여야 한다, 예배를 재밌게 해서 흥미를 유발시켜야 한다 등등.. 많은 학자들이 이것을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교회는 부흥하기 어렵다. 그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이 사람을 모으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런데 빌라델비아 교회는 이런 요건들을 제대로 갖춘게 하나도 없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열악한 여건 속에서 이런 멋진 성공을 일구어낼 수 있었을까?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여기서 적다는 말의 헬라어는 미크로스인데, 일반적으로 미크론 하면 1/1000mm를 나타낸다. 즉 능력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정말 미미한 능력을 갖고도,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았고, 또 그 심한 핍박 속에서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혹 떠오르는 사람이 없습니까? 모세가 생각났습니다. 모세는 그의 나이 40세 때, 왕자로서 권력과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지혜가 충만하였습니다. 그는 그의 능력으로 자기 민족을 구하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80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40세의 모세는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의 능력은 그가 의도한대로 되지 않았을 때 실패하였다. 사람들의 생각에 그 정도의 능력이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실상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도 한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의 능력이라는 것이 이런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정말 보잘 것 없는 이름 없는 목동 그것도 석양의 노을을 바라보며 미래에 대한 아무런 희망이 없이 그저 이름 없는 초로로 늙어갔을 때 주님은 그를 부르셨습니다. 그를 주님의 사람으로 세우셨고, 하나님의 지팡이를 갖게 하셔서, 그 백성을 구원하는 일을 감당하게 하셨다. 그 때 모세의 모습이 어떠했습니까? 그는 모든 일에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능력을 구하고, 잘하고 있을 때도 하나님을 찾고, 잘 안될 때도 하나님을 찾고, 자기 기대와 달라질 때도 찾고, 힘이 들 때도, 기쁠 때도, 열받을 때도, 스트레스로 몸살을 앓을 때도 주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발견되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그는 모든 일을 주님과 함께 하였습니다. 그는 천국을 통하는 열린 문을 통해 살았던 것입니다.

 

4. 열린 문

 

여러분, 주님이 빌라델비아교회에 두신 열린 문은 생명의 문, 구원의 문입니다. 하나님과 소통하는 기도의 문입니다. 하늘의 축복으로 이끄는 축복의 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입는 능력의 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새롭게 하는 소망의 문입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의 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소토교회에도 이 열린 문을 두셨을까요? 당연하죠. 여러분은 오늘 예수님이 두신 그 열린 문, 예수님의 문을 통해 이곳에 왔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에게서 생명을 얻고, 축복받고, 능력을 입으시길 바랍니다. 살아계신 주님과 소통하면서 여러분의 인생을 주님께 맡기시길 바랍니다.

 

캄보디아에 림 청이라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 아버지는 은세공장이였습니다. 림목사님이 12살이 되던 해 이런 의문을 가졌습니다. ‘과연 우리 아버지가 만든 우상들에게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소원은 이루어질까?’ 그래서 스님인 그의 삼촌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삼촌은 저 불상에게 소원을 빌었을 때 한 번이라도 응답된 적이 있습니까?” 삼촌은 확실하게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대답에 만족할 수 없었던 그는 이웃에 사는 서양 선교사를 찾아가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선교사는 지체 없이 자신이 경험한 몇 가지의 사실을 이야기했고, 이 일로 림청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자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던 어느 날 자신은 예수님을 섬기며 살겠다고 가족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썩 나가서 그 놈의 예수와 같이 살아라 아들을 집에서 쫓아버렸습니다. 흔히 집나가면 개고생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정말 엄청나게 고생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그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과연 살아계신 하나님이 나를 돌보실 것인가?’ 그런 마음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부모님의 도움 없이 고등학교를 마칠 수 있었고, 전액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진학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학교에 진학하여 목사가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어머니와 형제자매들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도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너의 하나님께나 가서 돌봐 달라고 해라며 매정하게 자신을 내몰던 아버지마저도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살필 수 있을까? 그는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맡겼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였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하나님은 자신이 개발해야할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셨고, 그것을 갖추게 하셨고, 그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헤밍웨이라는 분 아시죠? 노인과 바다, 무기여 잘있거라,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이런 명작을 지은 미국의 소설가입니다. 이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두려워하는 것을 위해 기도할 때 용기가 주어진다.” 우리가 강해서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이기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두려움을 이기는 것이다.

144:15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약한 능력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지금 나의 능력이 적다고, 그게 너무 미미하다고 생각되면 기뻐하시길 바랍니다. 그 작고 미미한 능력을 가지고 열린 문으로 들어갑시다. 주님은 그 적은 능력을 큰 능력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의 기둥 같은 존재가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 앞에서 이런 존재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

 



by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