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계3:1] 사데교회 살았지만 죽은 교회

코이네 2017. 3. 7. 22:21
>

사데교회, 살았지만 죽은 교회

본문 : 요한계시록 31- 6

2017.2.26. 소토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1. 우리는 요한계시록에서 주님이 소아시아의 일곱교회에 하신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에베소교회를 향해 네 첫사랑을 회복하라, 교회의 핵심은 사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서머나 교회를 향해서는 죽도록 충성하라, 교회는 주님께 충성해야 한다. 버가모 교회에는 환란이 있어도 믿음을 굳게 지켜라. 끝까지 견뎌서 마침내 승리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두아디라 교회를 향해 교회는 점점 더 나아져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것이 무엇인가를 배웁니다. 교회의 핵심은 사랑이며, 교회는 주님께 충성해야 하며, 교회는 환란을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히 서가야 하며, 교회는 이전보다 점점 더 진보해가야 한다. 그것이 건강하고 주님이 원하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또한 우리에게 경고하십니다. 교회를 위협하는 것이 있는데, 거짓되고 잘못된 교리로 성도들을 유혹한 이단과 교회를 향한 세상의 핍박, 그리고 세상과 타협해서 교회가 변질되는 세속화입니다. 교회가 이단의 교리에 현혹되고, 세상의 핍박을 무서워해서 믿음을 저버리면 위험해집니다. 그리고 세상과 타협해서 그 속이 변질되기 시작하면 교회는 죽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사데교회가 그렇습니다. 교회가 세속화되어서 죽어버린 교회, 그 교회가 사데교회입니다.

 

사데교회

 

2. 사데라는 도시는 현재는 터키에 있습니다. 옛날 루디아라는 나라의 수도였고, 염직업과 양털업 그리고 사금이 많이 발견되어서 아주 풍요롭고 화려한 도시였습니다. 게다가 지형 상 삼면이 300미터 이상의 깎아지른 절벽이고, 들어올 수 있는 입구 쪽은 아주 구불구불하고 협소한 계곡이어서 어린아이라도 이 성을 지킬 수 있다고 할 만큼 천혜의 요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페르시아의 고레스왕과 로마의 안티오커스 대제 때 이 성은 깎아지른 절벽을 타고 올라온 적군에 의해 두 차례 점령당했습니다. 그래서 페르시아와 로마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 해도 사도 요한 당시 사데는 과거의 명성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굉장히 풍요롭고 화려한 면모를 가지고 있었으며, 동양을 대표하며, 사치와 부의 도시로 그 명성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이런 도시에 교회가 개척되었고 성장했습니다. 이 사데교회는 여러 소아시아지역의 교회와 특별히 다른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핍박이 없었습니다. 여긴 황제숭배에 대한 위협도 없었고, 니골라당 같은 이단도 없었으며, 유대인의 핍박도 없었습니다. 정말 교회가 성장하기에 이상적인 환경을 가진 평안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에 대해 주님은 네 이름은 살아있지만 죽은 교회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네 이름은 살아있다는 말은 네가 과거에는 명성이 자자한 교회였지만 지금은 죽은 교회이다는 뜻입니다. 다른 교회들이 사데 교회를 보면 정말 이상적인 교회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데 교회 반만이라도 그렇게 평안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부러워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너는 죽었다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3. 어떻게 죽었다는 것입니까?

주님은 사데교회를 향해 네 행위가 온전한 것이 없다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드러난 겉모습이 아니라 그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진찰해보니까 그 행실을 보니 온전한 것이 없을 정도로 다 죽어있더라는 것입니다. 겉은 멀쩡히 살아있는 것 같은데 산 사람의 행동을 하지 않고 죽은 자처럼 되었더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살아 있는 사람들이 산 사람의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시체가 앉아 있는 것처럼 그렇게 죽어있더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18을 보면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마음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나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다. 이것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나님의 생명에 연결돼 있는 사람이 진정한 의미로 생명 있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사람 그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사데교회 성도들은 하나님과 단절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은데, 그 중심에 하나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는데 하나님을 향해 드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의 예배를 받으실 것이라는 기대가 없습니다. 그저 그곳에 모인 사람들끼리 감동하고,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그런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그 자리에 산 사람은 하나도 없고, 마치 시체들이 앉아서 예배하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시체들은 세 가지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생동감이 없습니다. 행동이 없고, 반응이 없고, 감격도 없습니다.

둘째, 성장이 없습니다. 사람이 살았을 때는 육체지만 죽으면 시체가 됩니다. 육체는 시간이 지날수록 성장하지만, 시체는 시간이 지날수록 썩어가며, 악취가 진동하게 됩니다.

셋째, 그러니 어떤 영향력을 미치지도 못합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주에 바나 리서치 그룹이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기독교에 대해 각종 설문조사를 하는 곳인데, 2000년 초반에 미국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의 행태를 이렇게 보고하였습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인라고 하는 사람 중 20%는 거의 주일예배에 출석하고 있지 않으며, 25%의 기독교 신자는 거의 기도를 하지 않으며, 35%의 기독교인들은 가정에서 성경을 읽는 일이 거의 없으며, 40%의 교인들은 일정한 헌금을 교회에 드리지 않고, 75%의 교인들은 교회에서 어떤 책임도 지고 있지 않으며, 85%의 교인들은 불신자를 한명도 교회로 인도해 본 일이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100%의 교인들이 천국에 가기를 희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5절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바로 사데 교회가 그러하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경건해 보이는데, 그 능력이 없는 것 바로 죽은 교회의 모습입니다.

 

능력을 상실한 경건은 어떤 것이지요? 하나님이 없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 보기에는 그럴싸하고 괜찮아 보이는데, 속이 비어있고, 생동감이 없고, 힘이 없는 것이지요. 경건해 보이지만 더 중요한 그 경건의 능력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려도 감격과 열정이 없고, 말씀을 배우는데도 신앙의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서로 교제하는데 진심이 통하질 않고, 구제와 봉사를 하는데도 감사와 기쁨이 없으며, 전도를 하는데 결실은 없는 것이지요. 그리스도인의 모양을 갖추고 있는데, 세상 사람들과 무엇이 다르냐고 물으면 다를 것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채 그저 시간이 지나는 대로, 세월이 흐르는 대로 자신을 맡긴 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죽은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깔뱅은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자기의 거룩한 삶을 통해서 입증해야 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로마서 116절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며,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능력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혔을 때 그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구원자가 당신입니까? 이 질문에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본대로 말하라.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것은 경건의 능력을 지니며, 그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되길 원하는 것입니다.

 

4.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문의 말씀을 보니 주님께서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먼저 일깨워야 합니다. 자신이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살펴야합니다. 그리고 부족하고 불완전하지만 아직 없어지지 않고 있는 신앙의 흔적들, 은총들을 붙잡고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정신 차려야 합니다.

 

두 번째는 내가 어떻게 은혜 받았는가를 기억해내야 합니다. 그 옛날 영화로웠던 과거를 동경만 할 것이 아니라, 그 때 어떻게 해서 은혜 충만했는지 깨닫고 회개해야 합니다. 우린 정말 중요한 것은 잘 잊어버리고, 별 쓸모없는 것을 기억하는데 에너지를 낭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을 기억하면 지금 잘못된 죽음의 길로 가고 있는데서 돌이킬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켜야 합니다. 이제 다시 그 시체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고, 늘 새롭고 목적이 분명한 인생을 제대로 살 수 있도록 훈련하고 지켜야 합니다. 대충 살려고 하지 마세요. 여러분의 인생의 태도가 건강하고, 대학이나 직장생활 잘해서 생활에 별 염려 없고, 그래서 교회생활 충실하게 잘 다니는 것으로 만족하지 마세요. 그것으로 다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는 부흥을 꿈꾸어야 합니다. 왜 교회가 부흥해야 하죠? 바로 교회가 여러분 자신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의 지체가 되고, 주님의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교회가 부흥한다는 말은 일단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앙과 그 삶이 부흥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부흥을 꿈꾸세요. 복음의 능력을 갖고, 눈멀고, 귀먹고, 앉은뱅이 되고 그래서 소망 없이 살아가는 세상을 보게 하고, 들리게 하고, 일어서게 하고, 소망을 갖고 살아가도록 능력을 행하세요. 그런 인생을 꿈꾸고 소망하고 기도합시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그렇게 강건하게 되고, 능력이 있는 교회가 되고, 세상을 변화시키며 세상을 구원하는 교회가 되도록 소망합시다. 부흥을 꿈꿉시다. 그리고 부흥의 주역들이 되길 바랍니다.

 

5. 흰옷을 입은 몇 사람

 

주님은 사데교회를 향해 아주 중요한 주님은 사데 교회의 몇 사람을 놓고 기대를 거신다는 것입니다. 사데 교회는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몇 사람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이 사람들을 주목하셨습니다. 옷을 더럽히지 않았다는 말은 세속에 물들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신앙의 지조를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 사데 교회에 이런 사람이 몇 있었습니다. 이것이 사데 교회의 항체였습니다. 사데 교회의 자존심이었고 희망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들과 함께 다니면서 주님의 교회를 온전케 하겠다고 말씀합니다.

죽었다고 생각한 사데교회, 그런데 이 시체들 속에 살아있는 몇 사람이 희망이 된 것입니다. 이런 소수를 놓고 역사가 토인비는 말합니다.

역사는 창조적 소수가 바꾸어 간다.”

이 창조적 소수, 세상의 세속 역사도 창조적인 소수가 좌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도 창조적인 소수, 성령의 손에 붙들린 몇 사람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6. 일곱영과 일곱별을 지니신 분

 

주님은 사데교회를 향해 자신을 소개할 때 나는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다고 말씀합니다. 일곱 별은 교회를 지키기 위해 파송한 하나님의 사자들을 가리키며, 일곱 영은 교회의 생명이 되시는 성령님을 말합니다. 주님의 교회를 부흥케 하기 위해 주님은 우리에게 수호천사를 보내 주십니다. 성령을 부어주셔서 우리가 부흥할 수 있도록 생명을 주시며, 능력을 주시며, 힘을 주십니다. 사데 교회가 거의 다 죽어가도 그 남은 것을 가지고도 다시 옛 영화를 이룰 수 있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아니 아예 죽어서 무덤에 사흘이나 썩어 있던 나사로를 살리신 주님입니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성령을 의지합시다. 성령께 도움을 구합시다. 성령께 능력을 구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으며, 승리할 수 있습니다. 승리하는 자들에게 흰옷을 입혀주시며, 그 생명책에 우리의 이름이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by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