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 교육

파커 팔머Parker J.Palmer 의 '기독교 교육 인식론' 에 대한 짧은 정리

코이네 2021. 10. 7.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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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커 파머의 『 기독교 교육 인식론 을 읽고

-사회는 소위 교육받은 자들에 의해 오도되어 왔다 

 

 

이 책은 나에게 시사해 주는 면이 많다. 그러기에 그러한 요소들이 나에게는 충격적으로 혹은 깊은 감명으로 다가왔다. 이 책을 통해 얻은 나의 지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저자 팔머는 이 책을 통해 현대 지식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고 있으며 오늘날의 교육이 잘못해 온 것이 무엇이고 그것이 곧 객관주의 인식론에서 비롯됨을 설명하고 있다. 거기에 따른 전통적 교수법과 기독교 영성 전통의 뿌리가 된 수도원 운동 및 4세기 사막의 수도사들에 대해서 논했으며, 진리가 무엇인지 알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을 진실한 관계의 공동체로 초대한 그분의 인격적인 모습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앎의 방법으로부터 도출되는 몇 가지 학습법과 교수법을 소개했으며, 마지막으로 영적인 훈련 방법들을 다루고 있다.

 

팔머는 과학이 우리 사회를 불안과 위협으로 몰아왔다고 지적하면서 우리 사회가 가장 인정하는 소위 교육받은 사람들에 의해 오도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정직한 자기 성찰과 반성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바른 지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식에는 호기심과 지배의 동기가 있는데, 이는 우리를 생명이 아닌 죽음으로 이끌어 왔음을 지적하고 연민과 사랑에의 지식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앎의 행위란 사랑의 행위이며 상대방의 현실 안으로 들어가 감싸는 행위이며 또한 상대방이 안으로 들어와 감싸도록 허락하는 인격적이요 공동체적인 연대인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기도하는 교육이 되어야 하며 얼굴과 마주 대하는 인격적인 앎의 과정이 필요함을 깊이 인식한다. 또한 지식의 가장 깊은 원천은 사랑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에 깊이 공감하는 것이다.

 

수도원에서의 영성 훈련으로서의 교육이 경건 서적과 기도와 명상, 그리고 공동체적인 삶에 있음을 인지하고, 교육의 깊은 차원으로 가면 교육은 자아를 인식의 주체로, 세계를 인식의 대상으로 묘사하며, 이들은 상호 관련하여 불가분성의 관계를 가진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의 주체와 인식의 대상을 지나치게 이질화시킨 것이 오늘날의 문제라고 볼 수 있는데 이 근본 원인은 객관주의 인식론에서 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객관주의는 인식의 주체와 객체 사이의 확연한 구분을 전제하고 있는데 인식의 객체는 저 밖에 있는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팔머는 이에 반하여 진리 가운데서 아는 것이란 객체와 자신의 전인적 자아와 결합하는 것이며, 상호 책임적이며 변화적인 관계 안에서 약속된 맹세이며, 미지의 위험 가운데서도 신뢰와 믿음 가운데 생겨난 것이며, 자기 자신이 알려지도록 허용하고 그 대상이 우리들의 삶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진리란 우리들과는 다르지만 긴밀하게 묶여있는 다른 사람 또는 사물과의 관계속으로 들어감을 의미한다. 진리는 인식의 주체와 객체 사이의 상호 의존적이 될 것을 요구한다.

 

지금까지의 교실은 독창적 탐구의 장소가 아니라 권위를 모방하는 곳이었으며 배우는 사람간에 협동하는 곳이 아니라 경쟁 장소 였다고 비판하면서 교실에서의 공동체 회복을 주장했다. ‘저기 바깥여기 안사이는 구분 지어져서는 안되며 감정은 사실에 의해 조절되고 사실들은 감정에 의해 따뜻해지는 인간화된 학생과 교과목의 만남이 있어야 한다.

반면에 교육이 공동체를 거부하고 파괴하며 우리를 상대방보다 우월하도록 하기위한 끊임없는 경쟁 가운데 둔다면 우리는 조작자에 불과하다. 배운다는 것은 변화한다는 것이다. 진리를 배운다 함은 우리가 관계를 먼저 시도할 뿐만 아니라 응답할 것도 요구하는, 그리고 관계를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주기도하는 관계 맺음을 의미한다. 즉 엄격한 사랑에 근거하는 진리의 개념으로서 응답할 줄 아는 교사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고 있다. 그러나 그의 가르침 이전에 그의 가르침에 생기를 불어 넣는 진리에 대해서 지식의 본질에 대해서 더 많이 배워야만 한다. 오직 그때만이 우리는 우리시대의 진리에 대해 순종하도록 인도하는 교수법과 학습법을 탐구할 수 있다.

 

예수가 부르는 진리에의 초청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 피조물 그리고 창조자와 함께 하는 공동체로의 초청이다. 마틴 부버의 용어에 의하면 더 이상 그것이 아닌 당신으로서의 인격적인 관계가 물질과 자연을 포함한 모든 피조세계에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객관주의적 인식론이 어떻게 분리와 조작의 윤리가 되어 왔는지를 설명하고 이제는 기독교 인격주의의 윤리관이 어떻게 참여와 책임의 인식론으로 되어가는 가를 설명한다. 그리고 결국 진리를 안다는 것은 우리의 전인격으로서 우리와 세계를 사랑의 본래적 의미로 재 형성하는 관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는 인간들만이 이루어가는 것이 아니라 물질세계와 식물 그리고 동물 또한 하나님과도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성육신의 관점에서 세계는 더 이상 조작되거나 소유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세계는 인격들의 공동체이고 그것의 진리를 안다는 것은 우리 사이에서 상실되어 왔던 인격과 공동체의 결속을 회복하는 것이다. 진리는 서로 서로에게 순종으로 듣는 것과 우리가 듣는 것에 대한 응답 하는 것, 그리고 언약의 공동체가 가지는 유대를 인정하고 재 창조하는 것을 요구한다.

 

배움의 공간에는 세개의 특징이 있는데, 개방성과 경계들 그리고 환대의 분위기들이다. 개방성이란 미지의 지식에 대한 열려진 마음인데, 이러한 공간의 개방성은 공간의 경계들의 견고함에 의해 창조되고, 낯선 사람이나 사상에 대해서 환대함으로써 배움의 공간은 더욱 확정될 수 있다. 교실을 진리에 대한 순종이 실현되는 곳이라고 말할 때는 과거-현재-미래 사이의 벽이 부수어지는 것을 말한다. 즉 말하는 것은 교실에서 진행되고 일이 바로 지금 세상에서도 진행되고 있음을 확증하는 것이다. 즉 교실은 진리의 공동체의 한 부분으로 이해한다.

 

학습법 중에서 신뢰로서의 진리에 대한 추구에 대한 학습법으로 합의에 의한 학습법을 소개한다. 합의란 이용 가능한 모든 자원을 사용하고, 창조적으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의사 결정 과정이다. 여기서 의견차이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토론이 좀 더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다양한 선택적 대안들을 제공해 줌은 물론, 상호간 적대감을 의미하는 것이나 조의 단합을 위협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합의의 학습법은 사실 이상의 것을 배울 수도 있다. 진리에의 순종을 실천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뿐만 아니라 다루는 주제에 대해서도 경청할 것을 요구한다. 주제는 그 자체로 소리를 가지며 그 주제에 대해 인격적인 대화를 통하여 내적 자아를 끄집어 냄으로써 진리에의 순종을 실천한다.

 

가르친다는 것은 진리에의 순종이 실천되는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남에게 그 방법을 가르치기에 앞서 우리는 우리 자신 내부의 진리를 위한 공간을 열어 놓아야 할 것이다. 교사의 영성 훈련은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며 또 교수법이 아무리 정확하다 해도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건실하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영적 덕목들의 방법들은 겸손과 믿음, 우상숭배화하지 않는 경외심, 사랑과 은혜의 개방성을 말한다. 또한 학문 속에서 침묵과 고독을 통한 훈련들을 제시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도 속에서 진리에의 순종을 실천할 수 있는 궁극적 공간을 가지며 우리와 관계를 맺고 계시는 성령에 의해 창조된 공간을 만들라고 강조하고 있다.

 

팔머가 주장한 위의 내용은 나에게 현실감을 준다. 어떻게 하면 객관적인 인식을 주관적으로 받아들이고 교육의 대상에게 바른 교육을 시킬 수 있을지를 제시해 주고 있다. 그리고 인격적인 지식을 만나며 그것을 가르칠 수 있도록 유도해 주고 있다. 팔머에게 있어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대상과 주제 사이에서 서로 인격적인 상호성, 관계성 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것을 알고 느끼는데 까지 이르지 말고 실제로 실천하는데 의의가 있을 줄로 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하겠고 또한 꾸준한 실천으로 실패도 경험해야 할 것이다. 내게 충격적으로 다가온 기독교 교육 인식론은 내게 바른 지식의 이해(인식론)를 인도해 준 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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