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신앙훈련

[제자훈련] 무엇이 두려운가? _ 박동진 목사

코이네 2023. 6. 7.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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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두려운가?

읽을 말씀 : 왕하 6:14-17

외울 말씀 : 왕하 6:16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심리학자들은 인간에게는 누구나 가난에 대한 불안과 공포, 고통에 대한 불안과 공포, 실패에 대한 불안과 공포,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 불안의 실체는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이를 극복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1. 현실적인 여건을 바라볼 때 두려워집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활동하던 때 이스라엘은 아람이라는 나라와 전쟁 중이었습니다. 아람은 당시 최고 강국이었는데, 그런 아람이 아무리 해도 이스라엘을 공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람왕은 그들 중에 적과 내통하는 스파이가 있을 것이라며 스파이 색출을 지시하자 왕의 심복들이 이것은 다 엘리사 선지자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엘리사를 처리하지 않는한 이스라엘을 침략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안 아람왕은 대군을 보내어 엘리사를 체포하러 보냈습니다. 엘리사가 잠자고 있는 사이 그 성은 포위되었고, 엘리사의 사환은 이른 아침에 그 광경을 보고는 두려움에 떨면서 급히 엘리사에게 달려가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왕하 6:15)라고 울부짖었습니다.

사환은 왜 이렇게 두려워했을까요? 본문 말씀에 보면 그 성은 엘리사가 잠자고 있는 성이요, 그 사환이 잠자고 있는 성입니다. 엘리사의 사환은 아람군대가 자신의 삶의 터전을 파괴하려고 에워싼 것을 보고 두려웠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현대인들은 왜 두려워합니까?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때, 어떤 사람은 질병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때, 어떤 사람은 가정적인 불행과 현실적인 고통으로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여건이 파괴되는 것에 불안과 공포를 느낍니다.

 

2. 불안과 공포는 환경의 산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러한 불안과 공포가 현실의 환경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환경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서 오는 결과인 것입니다. 똑같은 곤고와 고통과 괴로움에 직면했어도 어떤 사람은 마음이 평안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엘리사와 그 사환은 같은 환경, 같은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엘리사의 사환만이 아람군대에게 포위된 것이 아니라 엘리사 자신도 포위되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사선지자는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베드로를 생각해 보십시오. 갈릴리 바다를 걸어 주님을 향해 가던 베드로는 자기를 덮쳐오는 풍랑과 바람을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물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베드로는 감옥에 갇혀 헤롯의 칼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편안히 잠듭니다.

자신의 상황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도단성을 포위하고 엘리사와 엘리사의 사환을 죽이려했던 아람군대는 그들 모두에게 위협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같은 위협, 같은 두려운 환경 속에서도 문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시각은 완연히 달랐습니다. 이 때문에 엘리사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그의 사환은 불안과 공포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3. 우리가 보아야 할 것

 

영국의 유명한 작가 버나드 쇼는 뛰어난 유머와 기지를 가진 사람입니다. 어느날 어떤 사람이 그에게 "선생님! 어떤 사람이 낙천주의자이고, 어떤 사람이 염세주의자입니까?"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버나드 쇼는 이에 말하기를 ", 여기에 내가 한 컵의 물을 반만 먹고 놓아 두었다고 합시다. 이때 그 반정도 남은 물컵을 바라보고 '아직도 반이나 남았는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낙천주의자이고, '반밖에 안 남았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염세주의자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를 낙관적이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염세적이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 긍정의 힘을 키우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영적인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안목으로 세상을 보지 말고 신령한 눈을 떠서 영적인 세계를 바라보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의 어려운 곤경의 배후에서 나의 고통과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를 에워싸고 계시는 하나님을 보게될 것입니다.

엘리사의 사환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아람군대의 위용에 기가 꺾여 버렸습니다. 자기를 예워 싸고 있는 실패와 가난과 절박한 환경을 바라보며 견딜 수 없는 불안과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엘리사 선지자는 그런 사환을 향해 말합니다.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그들과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왕하 6:16)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하늘의 천군천사를 보내셨음을 알게 됩니다. 영적인 시각을 가지고, 믿음의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볼 때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생활 곳곳에서 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눈,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는 눈,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와 손길을 발견하는 신령한 눈을 소유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에 우리 성도들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4. 기도하라

 

여러분! 지금 무엇에 둘러 싸여 있습니까? 믿음의 눈으로 주님의 역사를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을 얽어매고 있는 현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간절히 기도할 때 영적인 시각이 열립니다. 기도하면 신앙적인 눈이 열리고, 신앙적인 눈이 열리면 하나님의 비밀하신 역사가 내 눈에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기도합니다.

왕상6:17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엘리사의 기도의 특별함이 보입니까? 하나님! 우리를 도와달라고 기도하고 있지 않고 "하나님! 이미 저를 돕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는 영안을 열어 주옵소서 내 눈을 열어 주의 기이한 법을 보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지 않습니까?

 

보이는 현실 세계만을 바라보면 불안과 공포 뿐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에서 세상을 주관하시고 자기 백성을 눈동자같이 지키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볼 때에는 기쁨과 용기와 확신과 평안이 넘치는 것입니다. (*)

 

by 박동진 목사(소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