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기스칸의 리더십, 인재를 개발하는 지도자의 통치 비결
징기스칸의 리더십, 징기스칸은 몽골의 작은 인력으로 어떻게 중국과 세계를 다스릴 수 있었는가? 인재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끈 징기스칸의 리더십, 인재가 능력을 발휘하게 하라. 징기스칸에게서 인재를 키울 수 있는 리더십의 비결을 배운다.
예전 역사의 변방에 있던 몽골이 어떻게 세계의 정복자로 우뚝 설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그 누구도 징기스칸의 공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징기스칸이 다른 지도자와 남다른 정책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전투 과정에서 전사한 모든 병사의 과부와 고아에게도 일반 병사와 똑같은 몫을 챙겨주었던 것입니다. 이 일로 칸의 병사들은 자신이 죽더라도 칸이 남은 가족을 돌보아준다고 믿었으며, 이런 믿음은 전장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최강의 군대를 만드는 기초가 되었던 것입니다. 칸은 이 정책을 통해 부족 내에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지원을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병사들의 충성심도 더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죠.
구약성경을 보면 다윗도 이와 비슷한 정책을 시행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블레셋이라는 적대국에 망명해 있을 때에 그와 그의 정예군대가 성을 비운 사이 아말렉 군대에 의해 성이 약탈당하고 그 모든 가족들이 사로잡혀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과 그의 용맹한 군사들을 급하게 뒤를 좇았지만 600의 군사 중 200명 정도가 지쳐서 더 이상 따라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지친 군사를 시냇가 근처에 남겨두고 남은 400이 아말렉의 수만의 군대와 싸워서 승리합니다. 가족을 무사히 구한 것은 물론이고 엄청난 전리품을 갖고 돌아오죠.
그런데 뒤쳐져서 시냇가에 남은 후방부대와 합류했을 때 어떤 이들은 그들에게 자신의 가족을 챙겨서 우리를 떠나가라고 소리칩니다. 너희들은 우리와 함께 있을 자격이 없다는 것이죠. 그런데 다윗은 그런 그들을 진정시키고, 모든 전리품을 남겨진 자나 전쟁을 치룬 자나 동일하게 나눕니다. 그리고 이것이 전례가 되어 이후 전리품을 나누는 법령이 되게 합니다.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전쟁에 나가나 여기 있으나 내 수익은 동일하니 굳이 싸우러갈 필요가 있을까 싶어 몸을 사렸을까요? 아닙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다윗의 군대는 더욱 결속력이 강해지고, 서로를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는 그런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어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화합이 마침내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는 가장 큰 뒷받침이 되었던 것입니다.
경영이나 리더십에 있어 핵심은 인재 경영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얼마나 좋은 인재를 키워내는가 아니면 그런 인재를 영입할 수 있는가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인재가 자신의 잠재능력까지 발휘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그 잠재력을 활용하도록 하는 데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을 봅니다. 기껏 그렇게 애써서 인재를 키워놓았는데 그 인재를 활용할 기회가 없어서 썩히는 것만큼 억울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요즘 백만 청년실업이 옛말이 되어버릴 정도로 지금 우리 사회는 인재를 썩히는 사회가 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 인재들에게 멍석을 깔아줘서 신명나게 놀이판을 열 수 있을까요?
저는 징기스칸과 다윗에게서 그 지혜를 얻습니다. 바로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이 사회는 자신의 능력으로만 살아가는 세상이 아닙니다. 또한 자기 혼자만이 모든 것을 독식해서 살아갈 수 있는 곳도 아닙니다.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부자는 그만큼 세금을 많이 내어서 부자로서 자신이 해야할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일자리도 서로 나눌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규직들이 조금 양보하면 더 많은 정규직을 양산할 수 있습니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을 보호해야 하고,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버팀목이 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공부잘하는 아이가 해야 할 일이 있고, 공부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이 잘 하는 일도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서로 어울리는 사회가 되면 이 땅에는 쓸모없는 사람이 사라질 것입니다. 모두가 꼭 필요한 인재가 되는 것이죠.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멍석을 깔아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즘 교육의 정책을 책임지는 사람들은 소수의 인재를 위해 다수를 쓸모없는 존재로 만드는 일에 앞장서고 있어 가슴이 아픕니다. 경쟁을 해서 인재를 양성한다는 그 발상만큼 인재를 죽이는 발상이 어디 있을까요? 이것이 비단 교육계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전 분야에 걸쳐 자행되고 있는 현실이기에 더욱 마음이 미어지는 것입니다.
이 땅에 쓸모없는 사람이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 그런 사회가 되길 오늘도 주님께 간절히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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