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5장, 형제를 용서하는 요셉, 인생의 소명을 알 때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남탓 하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찾는다. 진정한 용서는 거기에 있다
창세기 45장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꼽으라 한다면 단연 사람들이 서로 화해하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모든 오해를 벗고, 미움과 분노를 풀어버린 채 서로 부둥켜 안고 울면서 서로를 용서하는 장면만큼 감동을 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인생이란 때로 오물보다 더한 혐오감과 악취를 풍기는 부패하고 추악한 것이기도 하지만, 세상의 그 어떤 창조물보다 더 아름답고 고귀하고, 향기를 풍기는 사랑스런 것이기도 하다. 창세기 45장에서 그런 인생의 아름다운 풍경이 그려지고 있다.
요셉은 더 이상 자신의 정체를 형제들에게 숨길 수 없었다. 주위의 사람들을 물리치고는 자신이 요셉인 것을 밝히며 대성통곡한다. 그 울음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왕궁에까지 다 들릴 정도였다. 하지만 요셉의 울음소리보다 더 큰 소리가 있다. 바로 그 형들의 심장 떨리는 소리이다. 얼마나 놀랐겠는가? 아마 그들은 자신들의 심장 떨리는 소리때문에 요셉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제대로 듣질 못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놀라는 형들을 향해 요셉은 이런 고백을 한다.
"내가,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 넘긴 그 아우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책하지도 마십시오. 형님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아 넘기긴 하였습니다만, 그것은 하나님이, 형님들보다 앞서서 나를 여기에 보내셔서, 우리의 목숨을 살려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 (창45:4-5)
그는 형들을 용서하였고, 용서하였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그가 이렇게 자신을 죽이려고 하였고, 노예로 팔아먹은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다름 아니라 요셉은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던 것이다. 그가 죽음의 구덩이에서 건져지고, 다시 노예로 팔려 고난의 세월을 보내며, 눈물의 빵을 먹고, 노예로서 갖은 고생을 하며 살아왔던 지난 날의 생활, 이제 살만하려니까 음란한 여인의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갖히고, 거기서 관원을 만나고 꿈을 해석하고 마침내 바로 앞에서 서서 바로의 꿈을 해석하여 총리가 되기까지의 긴 여정.. 내가 왜 이런 인생을 살아야했던가? 요셉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원하는 소명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요셉이 이렇게 소명을 깨닫게 된 데에는 세 가지의 원인이 있다.
첫째,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그가 고통의 자리, 눈물의 자리, 노예의 자리, 심지어 죄인의 자리까지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함께 해주셨으며, 그에게 복을 주셨고, 요셉때문에 함께한 다른 사람들이 복을 받았다. 그는 어디에 있든, 어떤 신분으로 있든 변함없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였다는 사실이다.
둘째, 형제들의 변한 모습 속에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가 형제들을 만났을 때 그는 형들이 변한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꿈에서까지 증오하고 싶은 악인들이 아니라 약하디 약한, 내가 돌봐줘야할 가족이었던 것이다. 어린시절 저지른 잘못으로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리며, 오직 아버지와 어린 막내동생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겠다고 나서는 그런 형제였던 것이다. 그제서야 그는 내가 지금 이자리에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와 내 형제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러신 것이구나.
셋째 자신의 출세보다 하나님 뜻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셉의 인생의 가장 큰 특징을 꼽으라 한다면,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 일 것이다. 그의 생각의 중심도 삶의 중심도 모두 하나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는 재물도 명예도 그리고 권력도 그 인생의 목표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했기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형제를 위해 울고 그들을 용서하고 함께 화해하여 그들을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알았기에 그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의 인생 목표는 세상에서 성공자의 자리에 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하며, 그 뜻을 이루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성공인 것이다. 요셉은 그렇게 성공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고, 그것은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결실을 이루고 있다.
또한 하나님이 일을 진행하시는 것을 보면 참 놀랍다. 억지로 하지 않으신다. 물이 흘러가듯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당신의 뜻을 이루어가신다. 만일 형제들을 용서하라고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억지로 강요하셨다면 어땠을까? 마지못해 용서할 순 있지만 그건 용서가 아니라 그저 하나님 때문에 참는 것에 불과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 스스로 그렇게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도록 일을 진행시키셨고, 그렇게 되도록 도우셨고, 또 그렇게 되기까지 기다리신 것이다.
by 소토교회 코이네 박동진 목사
↙총리가 된 요셉 그 아들의 이름에 담긴 신앙고백
↙하나님은 왜 덜떨어진 요셉에게 꿈을 주시는가?
↙하나님의 영이 감동한 사람 요셉은 무엇이 다를까?
↙진정 나라를 사랑하는 서민정책 요셉에게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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