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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2장
새로운 지도자로 세워진 여호수아는 이제 요단강 건너 편에 있는 여리고성을 공략하기 위한 준비를 합니다. 그는 성을 공격하기 전에 먼저 두 명의 정탐꾼을 몰래 그 성으로 잠입시켜 첩보 활동을 하게 하죠. 그런데 그 성에 들어간 두 첩보원은 이미 방비체제를 갖춘 여리고성의 첩보망에 걸려들게 됩니다. 당시 여리고성 성벽 근처에 있던 기생 라합의 집에 유숙하며 첩보활동을 벌이던 것이 발각되어 그들은 큰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그 때 기생 라합은 기지를 발휘하여 그들을 위험에서 구해내고, 또 그들이 무사히 자기편 진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일러줍니다. 그 때문에 그들은 무사히 본영에 돌아가 자신들이 수집한 정보를 여호수아에게 전하게 되고, 이후 여리고 점령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우리는 리생 라합이라는 여인을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참 당혹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이 기생이라는 말은 창녀로 번역하는 것이 더 맞다고 말하며, 신전에서 몸을 파는 여사제와 같은 고급창녀와는 구분된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이는 리생이라기 보다 여인숙 주인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올바르다고 하죠. 제 생각에는 아마 둘 다를 포함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여인숙을 운영하면서 매춘도 함께 행하는 그런 곳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두 정탐꾼은 이곳을 거점으로 삼아서 첩보활동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고, 또 그런 곳이기에 이곳을 드나드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자연스럽게 여리고성에 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활동이 첩보망에 걸리게 되고, 그들은 체포당할 위기에 처했지만 그 집 주인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납니다. 이런 그녀의 행동, 즉 자기가 거주하는 성에 대한 배반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 우리의 국가와 민족관에 근거하여 어떻게 자기 살자고 자기 민족을 배반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고민을 하는데, 이 부분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또 그런 점에 관심이 별로 없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하게 서양의 연구자들은 대부분 이 기생 라합이 행한 거짓말에 초점을 두고, 이런 행위는 비윤리적인 것이 아닌가? 백색 거짓말도 상황에 따라 믿음의 행동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관심을 가지고 논의를 진행합니다. 도리어 이런 연구는 더더욱 저를 당황케 하네요. 이게 문제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면 서양사람들의 정신적인 성향은 다른 어떤 주제보다 거짓말이 갖는 비윤리성을 가장 큰 문제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이런 연구 경향을 보면, 당시 여리고성이 등장하는 팔레스타인의 부족국가의 인식이 우리가 생각하는 민족국가와는 다른 면모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충성보다는 개인의 안전이 더 중시되고 있었다는 것이죠. 즉 이 성의 안위에 대한 생각이 여리고성을 통치하는 지배자와 이곳에 살고 있는 백성들과는 아주 다르다는 것이죠. 즉 백성들에게는 이 성이 자신들이 살아가는 삶의 한 방편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국가관 민족관과는 아주 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 않나 추측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도움을 준 라합이 두 첩보원에게 하는 말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녀는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은 상천하지의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그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성은 하나님에 의해 무너질 것이고 그 때 당신들은 우리의 생명을 살려달라는 것이죠. 그리고 이 성의 백성들은 홍해를 가르고 시혼왕을 무너뜨린 하나님 때문에 간담이 녹아 버려 이미 전의를 상실해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주의해서 살펴보면 이스라엘의 군대가 얼마나 무서운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도 없습니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내고 있는 하나님이 두렵다는 것이죠. 이미 여리고성 뿐만 아니라 가나안땅에 사는 부족들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전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보고 있는 현실이었기에 그녀는 그 하나님 편에 서기로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그녀의 행동을 후대 신약성경에서는 믿음의 행위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해석한 것입니다.
이 부분은 또한 사사 기드온의 일화를 연상시켜 줍니다.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기드온은 자신이 전쟁에서 이길 것에 대한 확신을 달라고 하나님께 구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밤에 미디안 진으로 들어가 첩보활동을 하라고 하고, 그렇게 몰래 미디안진으로 들어간 기드온은 보초를 서고 있는 미디안 군사들의 대화에서 전쟁을 승리할 확신을 갖게 됩니다. 라합은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승리의 확신을 주는 하나님의 응답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두 첩보원이 이 땅을 정탐하면서 얻고자 했던 가장 중요한 정보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기대하고 있었던 내용이기도 하구요.
즉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전을 수행하고 있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게 가장 중요한 정보는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먼저 왕벌을 보내 그들을 진멸하시고, 전쟁을 치기 전에 이미 전쟁을 승리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리생 라합을 통해 그 답을 이스라엘에게 보내 주셨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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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2장, 여리고성과 기생라합, 라합의 배신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여호수아2장
새로운 지도자로 세워진 여호수아는 이제 요단강 건너 편에 있는 여리고성을 공략하기 위한 준비를 합니다. 그는 성을 공격하기 전에 먼저 두 명의 정탐꾼을 몰래 그 성으로 잠입시켜 첩보 활동을 하게 하죠. 그런데 그 성에 들어간 두 첩보원은 이미 방비체제를 갖춘 여리고성의 첩보망에 걸려들게 됩니다. 당시 여리고성 성벽 근처에 있던 기생 라합의 집에 유숙하며 첩보활동을 벌이던 것이 발각되어 그들은 큰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그 때 기생 라합은 기지를 발휘하여 그들을 위험에서 구해내고, 또 그들이 무사히 자기편 진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일러줍니다. 그 때문에 그들은 무사히 본영에 돌아가 자신들이 수집한 정보를 여호수아에게 전하게 되고, 이후 여리고 점령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우리는 리생 라합이라는 여인을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참 당혹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이 기생이라는 말은 창녀로 번역하는 것이 더 맞다고 말하며, 신전에서 몸을 파는 여사제와 같은 고급창녀와는 구분된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이는 리생이라기 보다 여인숙 주인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올바르다고 하죠. 제 생각에는 아마 둘 다를 포함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여인숙을 운영하면서 매춘도 함께 행하는 그런 곳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두 정탐꾼은 이곳을 거점으로 삼아서 첩보활동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고, 또 그런 곳이기에 이곳을 드나드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자연스럽게 여리고성에 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활동이 첩보망에 걸리게 되고, 그들은 체포당할 위기에 처했지만 그 집 주인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납니다. 이런 그녀의 행동, 즉 자기가 거주하는 성에 대한 배반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 우리의 국가와 민족관에 근거하여 어떻게 자기 살자고 자기 민족을 배반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고민을 하는데, 이 부분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또 그런 점에 관심이 별로 없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하게 서양의 연구자들은 대부분 이 기생 라합이 행한 거짓말에 초점을 두고, 이런 행위는 비윤리적인 것이 아닌가? 백색 거짓말도 상황에 따라 믿음의 행동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관심을 가지고 논의를 진행합니다. 도리어 이런 연구는 더더욱 저를 당황케 하네요. 이게 문제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면 서양사람들의 정신적인 성향은 다른 어떤 주제보다 거짓말이 갖는 비윤리성을 가장 큰 문제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이런 연구 경향을 보면, 당시 여리고성이 등장하는 팔레스타인의 부족국가의 인식이 우리가 생각하는 민족국가와는 다른 면모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충성보다는 개인의 안전이 더 중시되고 있었다는 것이죠. 즉 이 성의 안위에 대한 생각이 여리고성을 통치하는 지배자와 이곳에 살고 있는 백성들과는 아주 다르다는 것이죠. 즉 백성들에게는 이 성이 자신들이 살아가는 삶의 한 방편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국가관 민족관과는 아주 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 않나 추측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도움을 준 라합이 두 첩보원에게 하는 말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녀는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은 상천하지의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그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성은 하나님에 의해 무너질 것이고 그 때 당신들은 우리의 생명을 살려달라는 것이죠. 그리고 이 성의 백성들은 홍해를 가르고 시혼왕을 무너뜨린 하나님 때문에 간담이 녹아 버려 이미 전의를 상실해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주의해서 살펴보면 이스라엘의 군대가 얼마나 무서운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도 없습니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내고 있는 하나님이 두렵다는 것이죠. 이미 여리고성 뿐만 아니라 가나안땅에 사는 부족들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전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보고 있는 현실이었기에 그녀는 그 하나님 편에 서기로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그녀의 행동을 후대 신약성경에서는 믿음의 행위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해석한 것입니다.
이 부분은 또한 사사 기드온의 일화를 연상시켜 줍니다.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기드온은 자신이 전쟁에서 이길 것에 대한 확신을 달라고 하나님께 구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밤에 미디안 진으로 들어가 첩보활동을 하라고 하고, 그렇게 몰래 미디안진으로 들어간 기드온은 보초를 서고 있는 미디안 군사들의 대화에서 전쟁을 승리할 확신을 갖게 됩니다. 라합은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승리의 확신을 주는 하나님의 응답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두 첩보원이 이 땅을 정탐하면서 얻고자 했던 가장 중요한 정보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기대하고 있었던 내용이기도 하구요.
즉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전을 수행하고 있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게 가장 중요한 정보는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먼저 왕벌을 보내 그들을 진멸하시고, 전쟁을 치기 전에 이미 전쟁을 승리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리생 라합을 통해 그 답을 이스라엘에게 보내 주셨던 것이죠.
by 코이네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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