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1장,처가와의 갈등, 야곱은 어떻게 해결해 갔을까?
창세기 31장
거자필반(去者必返)이요,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이 있듯이 만남이 있으면 언젠가 헤어질 때가 있습니다. 20년을 외삼촌이자 장인인 라반의 집에 머문 야곱, 이곳에서 그는 아주 큰 부를 이루었고, 여기에 정착해서 살아도 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장인 가족들이 그를 경계하고 힘들게 한 것이야 충분히 겪었고, 도리어 이런 어려움을 통해 더 큰 기회를 만들어온 야곱입니다. 그런데 상황은 야곱을 그렇게 안주할 수 없도록 만들어갑니다. 그의 장인과 처가집 식구들이 그를 대하는 태도가 이전과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죠. 그에 대한 불평을 노골적으로 하고 있고, 적개심도 공공연히 드러냅니다
라반과 그의 가족들을 보면 참 그릇이 얕은 사람들이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들이 선의로 야곱을 가족처럼 대해주지만 항상 그를 어떻게 하면 더 잘 이용하여 나의 잇속을 챙길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잔머리로 사람을 대합니다. 그런 잔수로 그들이 원하는 나름의 부를 이루었지만 그들은 만족할 줄 모르고 감사할 줄 모릅니다. 복덩이가 굴러들어온 줄 모르고 다 자기들이 잘나서 그런 줄 압니다. 점점 야곱이 잘나가게 되니까 그들은 질투하게 되고 마침내 그 복덩이를 제발로 차버리는 우를 범하고 마는 것이죠.
야곱이 그런 그들의 태도를 읽고 고민합니다. 이제 뭔가 결단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야곱에게 명령하십니다.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그런데 야곱이 그 처들에게 한 말을 보면 하나님은 이 말 외에도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다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고 하셨다 합니다. 야곱의 말을 들어보면 그는 지금 뭔가 결단할 때, 고민하는 것을 하나님께 기도하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야곱에게 하나님이 응답하셨고, 야곱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제 야곱은 그의 처가를 떠나 그의 본가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마침내 결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야곱의 행동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1. 야곱은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아내들을 모아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들려주며, 상의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야곱은 저랑 좀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낍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그것을 아내들과 함께 상의하며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의견을 일치를 보고는 함께 일을 결행합니다. 솔직히 저는 이 부분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습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께 제일 많이 들었던 말씀 중 하나가 "아버지의 뜻은 지상명령이야"라는 것입니다. 토달지 말고 그냥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이죠. 그게 가장의 권위라는 것입니다. 저도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결혼 전까지 배우고 익혀왔으니 결혼하고 난 뒤 같은 방식으로 가정을 이끌어갔습니다. 아내가 처음에는 좀 참아주더니 어느 때가 되면서 왜 그렇게 매사를 일방적으로 통보하느냐? 내가 당신의 아내인가 아니면 하인인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갈등이 일어납니다. 저는 그런 아내를 이해하지 못했고, 아내는 그런 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참 지혜롭습니다.그는 가장의 권위를 그렇게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아내들을 존중하였고, 그녀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데 가족 간에 갈등이 없이 한 마음으로 해나갈 수 있었던 것이죠. 만일 야곱이 저처럼 가장의 권위를 내세워 일방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이니 가자고 했다면 다른 가족들 어쩔 수 없이 따르겠지만 그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대한 분노가 자리잡고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불신으로 가득찼을 것입니다. 때때로 중요한 결단을 할 때 가족은 들러리가 아닙니다. 함께 가야할 동반자이며 동역자입니다. 야곱은 그의 결단을 하나님과 함께 했고, 또한 가족과 함께 하여 모든 가족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도록 했던 것,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일 것입니다.
신앙의 진정한 힘은 문제가 없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게 하는 것이다.
2. 그런데 왜 몰래 떠났을까? 그가 떠나기로 결단을 내렸을 때, 처가 식구들은 양털을 깎기 위해 먼 곳에 있었습니다. 사흘길을 걸어야 만날 수 있는 거리입니다. 야곱은 처가에 인사도 하지 않고 그렇게 떠납니다. 야곱 생각에는 이렇게 가야 내 식구와 자신의 재물을 모두 챙겨서 갈 수 있지 안그러면 다 빼앗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만큼 처가 식구들을 불신했던 것입니다. 이 부분도 하나님께 맡기고 좀 당당했다면 어떨까요? 그렇게 믿지 못할 장인과 처가식구들에게서 갖은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지금을 이룰 수 있었는데, 그 하나님이 끝까지 책임져주시지 않았을까요? 야곱의 이런 자기생각에 치우친 행동으로 인해 또 다른 문제가 불거집니다. 아무리 미워도 처가인데, 이 처가와의 관계를 단절될 위기를 갖게 된 것이죠. 그리고 이 위기는 아내 라헬의 부적절한 행동으로 그 큰 위기를 자초하게 됩니다.
3. 라헬은 미련을 버리지 못했나 봅니다. 그녀는 가정수호신이자 그 가문의 신물인 드라빔을 훔쳐왔습니다. 이 드라빔은 가정 수호신의 역할을 하는 신물이면서도 그 가문의 존장을 상징하는 상징물입니다. 라헬이 이것을 훔쳐 가지고 간 것은 아마 나중에 다시 친정으로 돌아올 일이 생기면 이 신물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야곱을 따라 나서기는 하지만 그것은 미지의 세계이고, 잘 될 지 못 될 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 혹시나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죠. 하지만 그녀의 이런 행동은 아버지 라반의 노여움을 사게 하고, 이것이 빌미가 되어 가족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게 하였습니다. 거기다 이것을 계속 지니고 있음으로 그의 자녀들에게 믿음의 본이 아닌 자칫 우상에 빠지게 되는 위험을 갖게 된 것이죠.
4. 역시나 라반은 뒤를 쫓아왔습니다. 그는 분기탱천해 있었습니다. 야곱이 일단 자기의 허락 없이 떠났다는 괘심함과 그 때문에 뺏을 수 있었다고 생각했던 그 재물들을 놓쳤다는 아쉬움, 거기에 자녀에 대한 인간적인 배신감 그리고 자기 가문의 상징인 드라빔을 야곱일당이 훔쳐 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사람이 분노에 눈멀면 이성적인 판단이 생기지 않고, 지극히 개인적이며 이기적인 행동을 합니다. 그는 그런 상태에서 야곱을 거의 뒤쫓았습니다. 아마 그 당시 마음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가득차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라반은 참 안타까운 사람입니다. 그는 권모술수가 능하다 보니 정말 귀한 것, 복덩어리를 스스로 차는 우를 범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존경하고 사랑해야할 두 딸에게 버림받는 아버지가 되고, 사위의 적으로 행동합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 또한 저버리며 오직 자신의 이기적인 이익만을 쫓아 달려온 것이죠. 도대체 그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우리네 인생이 이 라반과 같지 않은가 싶습니다. 그렇게 아둥바둥 악을쓰고 기를 쓰며 달려가는데, 정작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는 알지 못한채 폭주하는 기관차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죠. 누군가 이 폭주기관차를 멈추게 해주어야 합니다.
5. 하나님께서 그 기관차를 멈추게 해줍니다. 라반의 꿈에 나타나 그에게 경고하죠. 야곱을 건드리지 말라. 하나님의 이 준엄한 경고에 라반은 정신이 번뜩 듭니다. 그리곤 이성을 찾게 되고, 마침내 그의 딸들과 사위와 대화로 문제를 풀게 되죠. 물론 잃어버린 드라빔을 찾기 위해 살벌한 풍경을 벌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는 아버지로서 장인으로서 할아버지로서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관계라는 것이 좋은 일을 해주진 않아도 그만이지만 해서는 안되는 짓을 저지르게 되었을 경우 완전 원수가 됩니다. 쏟아져 버린 물이 되어 다시 주워담을 수 없는 그런 지경에 이르게 되죠.
하나님의 적절한 나타남은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게 되고, 그간 서로에게 서운했던 마음을 속시원히 풀어가며 언약을 맺게 합니다. '여갈사하두라'와 '갈르엣' 말은 달라도 뜻은 같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증인이 되신다는 것이죠. 그들은 서로 불가침 협정을 맺고, 그 자리에서 떡을 떼며 가족의 정을 나눈 후 아주 좋은 모습으로 헤어집니다. 이것이 참 중요합니다. 결자해지라 맺은 자가 서로 풀어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리고 잘 풀어서 다음에 다시 만날 때 반갑게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성공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비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롬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풀어가며 살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by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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