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야곱의 슬픔, 사랑하는 두 사람이 죽음

코이네 2012. 11. 15.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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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5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죽음,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과 아들 베냐민의 탄생, 이원수의 詩 아버지

 

 

창세기 35장

 

 

참 야곱만큼 굴곡 많은 삶을 산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전 성경에서 가장 친근감이 가는 인물이 야곱이더군요. 야곱의 삶을 보면 하나님께서 제 삶도 이해해주시고 야곱에게 베푼 사랑만큼 사랑해주시겠다는 그런 생각을 갖게 합니다. 이제 그런 야곱의 삶도 중년을 지나가며, 또 다른 슬픔을 당하게 됩니다. 바로 그렇게 사랑했던 아내 라헬의 죽음과 아버지 이삭의 죽음입니다.

 

1. 아내 라헬을 보내며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더부살이를 할 때 그에게 가장 큰 용기와 힘을 준 사람이 바로 라헬입니다. 라헬을 사랑한 야곱은 20년의 세월동안 갖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것을 이겨낼 수 있었고, 마침내 라헬과 가정을 이루어 한 일가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라헬은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신 축복의 선물이었고, 삶의 기쁨이었습니다. 한 남자에게 있어서 한 여인을 마음에 품고, 평생을 바라보며 함께 살 수 있다는 것만큼 큰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리 큰 어려움이라도 함께 있기에 행복하고, 함께 있기에 그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것, 이것이 부부가 함께 하는 사랑의 능력일 것입니다.

 

그런 라헬이 야곱과 작별을 고합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이 또한 너무 가슴 아픈 현장입니다. 그녀에겐 세상에 부러울 것 없었지만 오직 하나 자녀에 대한 한이 있었습니다. 야곱의 다른 아내들, 특히 언니 레아는 여섯, 첩인 빌하와 실바도 둘씩 아들을 낳아 야곱의 대를 잇게 합니다. 하지만 라헬은 야곱의 그런 사랑에도 불구하고, 요셉 하나를 낳았기에 아들 욕심이 남달랐을 것입니다. 그런 그녀가 야곱의 다른 아내들은 더이상 자녀를 생산할 수 없을 때 아들을 임신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야곱이 라헬에 대한 사랑이 어떠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노산의 어려움이 따릅니다. 10달, 아기를 몸에 품고 그렇게 행복했었는데, 그 아이를 낳게 할 힘이 모자라 그녀는 산고로 죽고 맙니다. 태어난 아기를 보고 "베노니" 내 슬픔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는 눈을 감습니다. 곁에서 그녀의 임종을 지켜주던 남편은 그 아이의 이름을 "베냐민"이라고 고쳐짓습니다. 내 오른손의 아들, 눈을 감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당신이 낳아준 아들, 내가 부끄럼 없이 정말 잘 키우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죠.

 

라헬의 죽음을 보며, 새삼 여인의 위대함을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아이를 낳을 때 고통받는 벌을 주셨는데, 그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여인이 자녀를 낳을 때 그것은 단지 고통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쏟아넣는 순간입니다. 사람은 바로 그런 어머니의 고통과 죽음을 감내하는 희생으로 태어나는 것이죠. 그렇기에 이 땅에 태어나는 아이들은 그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이가 없습니다. 라헬에게는 베노니, 슬픔의 아들이었지만 야곱에게는 그 누구 못지않은 소중한 아들 베냐민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녀들을 베냐민으로 키울  의무가 있고, 그렇게 자랄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보낼 때 무슨 말로 할까? 야곱은 "베냐민"이라는 말로 그녀를 떠나 보냈습니다. 우린 무슨 말을 하며 보낼까요?

 

 

2. 사랑하는 아버지를 보내며

 

야곱은 아버지가 계신 헤브론으로 왔습니다. 20년이나 떠나 있던 아버지를 만났고, 아버지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도 이제 때가 되어 주님의 부름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저는 이삭의 죽음이 너무 부럽습니다. 성경의 표현을 빌면

 

"이삭이 나이 많고 늙어 기운이 진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35:29)

 

아마 성경에 나오는 여러 인물 중 가장 잘 죽은? 사람이 바로 이삭이 아닐까 합니다. 그의 죽음이 부러운 것은 첫째, 별 다른 질병 없이 건강하게 노년을 보내다가 자연사한 것입니다. 그것도 자기 고향에서 하나님이 있으라 한 그곳에서 생의 마지막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 야곱과 에서의 손에 장사지냈습니다. 임종을 맞을 때 두 아들이 곁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들의 환송을 받으며, 그는 편히 이 세상을 떠났던 것이죠.

 

야곱에게 있어 아버지 이삭은 어떤 분이었을까요? 아버지는 사실 자기보다 형 에서를 더 좋아하였지만 그렇다고 야곱에게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좀 서운할 수도 있지만 야곱에게 있어 아버지는 큰 산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아동 문학계의 거목이신 이원수님의 시 중 아버지라고 하는 시가 있습니다.

 

아버지/이원수

 

어릴때

내키는 제일 작았지만

구경터 어른들 어깨 너머로

환히 들여다 보았었지

아버지가 나를 높이 안아 주셨으니까.

 

밝고 넓은 길에선

항상 앞장 세우고

어둡고 험한데선

뒤따르게 하셨지

무서운 것이 덤빌땐

아버지는 나를 꼭

가슴속, 품속에 넣고 계셨지.

 

이젠 나도 자라서

기운 센 아이

아버지를 위해선

앞에도 뒤에도 설 수 있건만

아버지는 멀리 산에만 계시네.

 

어쩌다 찾아오면

잔디풀, 도라지 꽃

주름진 얼굴인 양, 웃는 눈인 양

"너 왔구나"하시는 듯

 

아!  아버지는 정다운 무덤으로 산에만 계시네.

 

 

 

우린 누구나 우리가 가야할 그곳을 향해 오늘도 조심스레 한걸음 더 걸어가고 있습니다.

 

 

 

by 소토교회 코이네 박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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