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11장,완악한 마음, 사람을 완악하게 하시는 하나님과 구원의 섭리
여호수아의 가나안정복, 여호수아 11:16-20에 하나님께서 가나안을 진멸하신 이유를 그들의 완악한 마음 때문이라 하였다. 그런데 그 완악한 마음은 하나님께서 그리하셨기 때문이라 하였다. 이 구절만 보면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완악하게 해서 심판하는 악의 근원처럼 보인다. 완악한 마음에 얽힌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비밀이 있는가, 완악한 마음에 관한 비밀을 풀어본다.
완 악 한 마 음
본문 : 여호수아 11:16-20
2013.3.10. 소토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1. 하나님은 인간을 인격체로 만들었다
하나님이 하신 일 중 가장 이해가 가질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을 인격체로 만든 것이죠. 인격이라는 말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느끼고 결단하고 행동하는 자유를 가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아주 정교한 컴퓨터 프로그램에 따라 행동하도록 하는 존재도, 조작하는대로 움직이는 기계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인격체로 만들었습니다. 기계로 만들었다면 인간들 말 안 들어서 속썩는 일은 없을텐데, 인격체로 만드는 바람에 말 안듣는 인간들 때문에 하나님께서 참 고생이 많으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사람의 참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인격, 좀 더 부연해서 설명하면 하나님 중심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존재,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하나님과 소통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중심적으로 변했습니다. 자기중심적이 되다보니 하나님과 벽이 쌓이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단절되어 버렸으며,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을 우리말로 천륜이라고 하고, 다른 말로 ‘진리’라고 합니다. 진리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 그 마음에 진리가 없는 사람, 성경은 이런 사람의 모습을 죄인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원래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인격체입니다. 그렇기에 그 마음 중심에는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와 함께 하나님을 떠난 죄인이기 때문에 그 진리를 찾지 않으려고 하는 저항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이죠. 우리의 마음을 조금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의 마음은 이런 이중적인 모습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진리를 찾으려고 하는 본능과 그것을 거부하고 회피하고자 하는 자기중심적인 의지, 이것이 우리 내면에서 갈등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예전 참 온유한 장로님과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하는 도중에 이런 말을 하십니다. “목사님 제 마음에 지옥이 있습니다.” 깜짝 놀라서 무슨 말인가 물으니 “제가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틈만 나면 제가 이 사람에게 마음속에서 복수를 합니다. 처음에는 손으로 때려죽이는 상상을 하고, 칼로 찔러 죽이기도 하고, 총으로 쏴 죽이기도 하고..갈수록 더욱 흉폭한 방법으로 이 사람을 마음으로 살인합니다. 어떨 땐 지금 내가 뭐하는 짓인가 하고 깜짝 놀라 그만두기도 하지만, 대부분 제 마음에서 그 사람을 죽여야 끝이 납니다. 그리고 난 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나 하며 회개하지만 또 좀 지나면 분노에 사로잡혀 제 마음을 그런 짓을 되풀이합니다. 제 마음에 지옥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그 마음을 지옥으로 만듭니다. 그래서 지옥 같은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은 그대로 두면 점점 더 부패하고 타락하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철학과 종교, 윤리와 예절 등을 만들어서 좀 더 인간답게 살고자하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러면 그나마 좀 덜 타락하게 됩니다. 이게 사람의 마음입니다.
2. 완악한 마음 하나님 때문인가?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가나안 사람들을 진멸하신 이유를 설명합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대적하여 싸우다 진멸하게 된 이유를 그들의 완악한 마음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완악한 마음으로 이스라엘을 대적하게 한 것은 하나님이 그리 하신 것이며, 이렇게 하신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고, 그들을 진멸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이 부분을 보면 가나안 사람들이 죽은 것은 모두 하나님 탓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한번 찍히면 그것으로 끝장이 날 것 같은, 그래서 하나님은 인정사정없는 잔인하고 무시무시한 분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원어성경으로 읽으면 좀 미세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가나안이 완악하게 된 것은 하나님이 완악하게 만들어서 그런 것처럼 번역이 되어 있는데, 원어로 좀 더 자세하게 번역하면 사람이 완악한 대로 내버려두었다는 뜻입니다. 부모 말 듣지 않고 제 멋대로 사는 아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설득해도 그냥 제 고집대로 하니까 이렇게 말하죠. “니 마음대로 해라” 그러면 아들이 “앗싸! 이제 부모님이 포기하셨구나, 내 마음대로 해야지” 아마 그런 마음이 들 겁니다. 철없는 아이들이죠. 부모님이 그렇게 말한 것은 내가 널 포기하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을 고쳐먹으라는 최후통첩과 같은 것입니다. 정말 막가는 대로 내버려두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막가서 망하는 것이죠.
사람의 마음 역시 그렇습니다. 원래 완악한데 이 완악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든 고쳐보려고 무진장 애를 쓰도 안 되는 것이죠. 더 타락하고 악독해지고 하나님께서 더 이상 손쓸 수 없을 만큼 망가져버렸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기계는 고장 나면 고치면 됩니다. 하지만 사람의 인격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스스로 생각을 고쳐먹고 달라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고칠 수 있도록 도와주시지 억지로 조작하지 않으십니다. 억지로 조작되는 것이라면 그건 인격이 아닌 것이며, 억지로 조작했다면 그건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우하는데, 사람들은 서로를 그렇게 인격적으로 존중하질 않습니다. 부모와 자식이 왜 갈등을 빚습니까? 부모가 자식의 인격을 자기 뜻대로 조종하려고 하기 때문이 아닌가요? 부부가 갈등을 빚는 것도 서로를 인격적으로 대하기보다 내 뜻대로 조종하려고 하다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사람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는 말은 완악한 대로 내버려두셨다는 것입니다. 니 마음대로 해라 그렇게 포기하셨다는 것이죠. 좀 강하게 그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시며 그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를 해도, 그 때 뿐이지, 시간이 지나면 더 타락하게 되고 마침내 변할 가능성이 눈꼽만치도 없을 만큼 완벽하게 완악하고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억지로 은혜 받도록 이끌지 않고 내버려두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완악한 대로 내버려뒀을 때 일어나는 현상을 로마서 1장 28절부터 아주 상세하게 보여줍니다. 다함께 찾아 읽어봅시다.
“1: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여러분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이 만져주지 않으시면, 우리의 인생에 하나님이 간섭하지 않으면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 없는 채로 내버려두면 그 마음은 온갖 악한 것에 중독되어서 더욱 타락하고 비참해지고 악해져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제 마음대로 살다가 망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나안이 망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3. 신앙은 회개로부터 시작한다.
“예수님을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고백입니다. 그런데 이 고백에는 숨겨진 많은 사실들이 있습니다. 그 말 속에는 예수님을 통해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 없는 마음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이 계신 마음, 하나님이 중심이 된 삶을 살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살겠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주신 사랑을 받으며 살겠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간섭하시고 이끌어달라고 맡기는 것입니다. 왜냐면 내가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을 간섭해주시고, 다스려주십시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면 제일 먼저 일어나는 현상이 회개입니다. 내가 왜 하나님 모르고 이렇게 살아왔을까? 자책하기도 후회하기도 하고, 그렇게 살아온 자신이 밉기도 하고, 이제는 좀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자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인생이 달라지는 것이죠. 예전에는 마음에 지옥을 두고 죽어가는 인생이었는데, 이제는 천국을 향해 살아가는 인생이 된 것입니다.
4. 기브온은 어떻게 회개했을까?
그런데 신통방통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기브온 사람들입니다. 그들 역시 마음이 방치된 채로 죽어야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살 길을 찾았을까? 그들은 이스라엘과 화친했습니다. 일방적으로 항복하였고, 종이 되기를 자처하였고, 자신들의 재산과 재물 모든 소유를 바쳤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칼날을 피할 수 있었고, 도리어 하나님에게 보호받았고 구원받았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지난주에도 이야기 했지만 그들이 항복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의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기 전까지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이렇게 막가는대로 살아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가나안 지역의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사니 그렇게 살아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소문을 들었고,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들었습니다. 이렇게 살면 안되겠구나, 우리가 얼마나 잘못 살았기에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이렇게 진멸하려고 하시나, 이제 살길을 찾아보자. 그리고 결심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자. 그래서 하나님께 항복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려서 하나님의 소유가 되자. 계산기를 두들겨보니 이게 더 남는 장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항복하고 우리가 가진 것을 다 넘겨줘서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면 지금 가지고 있는 것 다 드려도 아까울 것이 없다는 겁니다. 우리의 것을 다 드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게 훨씬 낫다는 것입니다. 비교 불가라는 것이죠.
최소한 그들이 이런 생각 이런 판단 이런 행동을 할 때 그들의 마음은 결코 방치된 채로 있질 않았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뭔지 모르는 성령의 역사가 그들을 움직이도록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기브온만 그런 것이 아닐 것입니다. 왜냐면 에스겔서에 보면 하나님은 악인들이 악인으로 죽는 것을 바라지 않으시고, 그 악인들이 돌이켜서 회개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브온 사람들은 회개하라는 그 성령의 말을 들었고, 다른 가나안 사람들은 배척하고 대적했습니다.
5. 마음의 훈련
하나님을 배척하지 않는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것, 이것은 정말 중요한 신앙의 훈련, 영성훈련입니다. 우린 마음의 훈련을 부지런히 해야 합니다. 잠언에 보면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을 지킨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바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준비를 해놓으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소리를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이도록 훈련하라는 말입니다. 어떻게요?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잠언에 보니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판에 새기라고 하십니다. 우리 마음에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고,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자리하도록 계속해서 의지적으로 모셔두는 것입니다. 기브온 사람들이 하나님께 항복했듯이 그렇게 항복하며, 성령께서 우리를 다스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혼을 당한 한 여인이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예배 시간마다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심한 저항감이 마음에 자리 잡습니다. 예배드릴 때마다 하나님이 날 사랑하신다면 왜 나를 이 꼴이 되도록 내버려두셨는가? 지금 자신이 잘 못된 모든 것이 마치 하나님 탓처럼 느껴집니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찬송을 부를 때, 겉모양은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하는 표정인데, 마음 깊은 곳에서 비웃음이 자리 잡습니다. 날 사랑한다는게 이 모양이야? 웃기고 있네. 회개하라는 말씀을 들으면, 그 인간이 회개해야지 내가 왜 해? 하나님 붙들고 좀 잘아보려고 교회에 나왔는데, 예배 자리에 앉으면 마음속에서 격렬한 저항감과 반항심이 자리 잡고, 그 마음에 격렬한 전쟁이 일어납니다. 하루는 머리가 어지럽고,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눈앞이 하얀게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데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 때 갑자기 그 마음에 예전 목사님이 가르쳐준 기도문이 생각납니다. 아주 짧은 기도, 이 기도문을 그저 반복하기만 하면 된다고 했던 기도문이 생각이 납니다. “예수 그리스도시여, 날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그녀는 그래서 마음으로 그 말을 읖조리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씩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뭔지 모르지만 서러움이 북받쳐 오르고, 힘들게 살아왔던 자신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눈앞에서 지나갑니다. 내가 이리 살아왔구나, 그런데 그 속에서 하나님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손을 내미셨는데, 얼마나 야멸차게 그 손길을 뿌리치며 살아왔는지..참 모질게도 하나님 마음에 못 박으며 살아왔구나, 하나님께 미안하고, 감사하고, 부끄럽고, 난 불쌍한 사람이구나, 하나님 저 불쌍한 사람입니다. 절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그런데 그 마음을 누군가 어루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평안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는구나..
다같이 복음송을 한곡 같이 부를까요?
“부서져야 하리, 부서져야 하리, 무너져야 하리, 무너져야 하리, 깨져야 하리, 더 많이 깨져야 하리, 씻겨야 하리, 깨끗이 씻겨야 하리, 부서지고 무너지고 겸손히 낮아져도 주님 앞에 정결타고 자랑친 못할 거예요, 부서져야 하리, 무너져야 하리, 깨져야 하리, 깨끗이 씻겨야 하리.”
주님, 우리의 마음이 주님 모시고 살아갈 수 있도록 다스려주십시오. 기도합시다.(*)
by 소토교회 코이네 박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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