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사도행전8장, 제가 세례를 받겠습니다

코이네 2013. 4. 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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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토교회 박동진 목사의 주일낮 예배 설교, 제가 세례를 받겠습니다. 신앙인이 되는 결단

 

제가 세례를 받겠습니다

본문 : 사도행전 8장 26절-40

2013.3.24. 소토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이디오피아의 재정을 담당하는 높은 관리가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우리말로는 내시라고 번역했지만 이 내시라는 말이 그 당시 주변국에는 왕궁의 일을 맡은 높은 관리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에 내시라기 보다는 장관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이디오피아 사람이면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는 신앙에 열심이었습니다. 이디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는 무려 1500Km에 달하는 먼 거리인데도 그는 유대의 한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하였고, 돌아가는 길에 성경을 하나 구입하여 그의 마차 안에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빌립에게 의문을 제기한 내용으로 보아 이사야서를 구입한 것 같습니다.

 

이 때 성령께서 빌립을 그의 마차 곁으로 이끄셨습니다. 급한 일이 아니니 아마 천천히 마차가 움직였던 모양입니다. 빌립은 그가 성경을 읽고 있는 것을 보며, 당신이 읽고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 사람은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 제가 읽기는 읽어도 이해가 잘 되질 않다며 빌립 집사를 그의 마차로 들어오게 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듣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신앙은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배워야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어느 한 죄수가 감옥에서 주는 성경을 읽다가 믿음을 갖고 방 사람들에게 전도합니다. 그런데 창세기 1장에 하나님의 신은 수면 위를 운행하시고라는 구절에 대해 하나님이 신발을 신고 물위를 날아다녔다는 식으로 해석을 하였습니다. 성령에 관해 들은 적이 없으니 그저 한글 성경에 하나님의 신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하나님이 신발신고 다녔다고 이해한 것이죠. 올바른 신앙을 가지려면 성경을 잘 아는 사람에게 물어서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바른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홀로 해석하고 홀로 이해하는 것은 상당한 위험이 있습니다. 이 이디오피아 장관처럼 내가 장관인데 하면서 체면을 내세우거나, 묻는 것에 대해 자존심 상해하지 않고, 모르는 것은 물어서 배워야겠다는 그런 겸손한 자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고, 또 믿음을 키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소토교회 성도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누구에게 배워야겠습니까? 좀 부족해도 여러분은 제게 배워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또 기도하기 위해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 저도 제대로 더 잘 이해하고 가르치기 위해 더 많이 배워야 하겠죠. 이것이 목사가 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과제입니다.

 

초대교회에 교회가 커지면서 사람들이 늘어나니 사도들이 해야 할 일이 늘어났습니다. 너무 바빴습니다. 사도들이 이거 안되겠다, 우리는 우리 본연의 일을 하도록 하자, 그래서 성도들에게 우리는 말씀을 연구하는 것과 기도하는 일에 열심을 쏟겠다, 구제하는 것이나 교회 행정을 이끌어가는 그런 일은 집사를 뽑아 시키도록 하겠다고 해서 일곱 명의 집사를 세웠습니다. 지금으로 한다면 부목사를 세운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의 가장 큰 사명은 말씀을 더 잘 이해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매년 좋은 세미나가 있다면 가서 배우려고 합니다. 가르치기도 하지만 잘 배워야 잘 가르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제게 묻고 저는 대답하고 서로 소통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탐구하며, 그 말씀을 생활에 적용하고, 실천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1. 장관의 질문과 빌립의 대답

 

그 이디오피아 장관은 마침 이사야 53장, 고난 받는 종에 관한 질문을 합니다. 이 사람이 누구인가? 그러자 빌립집사님이 그에게 복음에 관해 조리 있게 잘 설명합니다. 성경에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지만 아마 이렇게 대답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사람은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제물을 가지고 성전으로 갑니다. 성전 제단 앞에 서서 제사장들이 보는 앞에서 그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 제사장이 너의 모든 죄가 이 죄 없는 제물에게 옮겨졌다고 선포하고, 그 죄 없는 짐승을 잡아서 그 피를 제단에 뿌리며, 그 제물을 온전히 불태워 자신의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제물은 일회성입니다. 다시 죄를 지으면 또 그들은 제물을 갖고 와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민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모든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할 수 있을까? 내가 그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 용서해서 이들을 내가 처음 만든 그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을 되찾고, 나의 백성,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되게 할 수 있을까?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죄 없는 누군가 죄인들을 대신해서 제물이 되어 죽는 것입니다. 그 제물은 모든 사람의 죄를 다 용서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생명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히 우리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지만 또한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분입니다. 그는 죄가 없는 사람이며, 사람이 되신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아들의 생명값으로 사람들을 용서하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를 키워봐서 알겠지만 아버지에게 있어 자녀는 바로 자신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생명입니다. 하나님 아들의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우리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제물이 되려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십자형의 죄인이 되어 죽으셨습니다. 빌라도도 그분이 죄가 없는 것을 알았지만 십자가형을 선고했습니다. 제자들은 생각하기를 아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도리어 자신을 못 박은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건 예수님을 오해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십자가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제물이 되어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주님은 그 형벌이 주는 끔찍한 고통을 모두 겪으셨고, 그렇게 죽으셨습니다. 오늘 당신이 읽은 이사야 53장은 바로 이분에 대한 예언을 기록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어 가실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옆에 같이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는 죄인이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애원하자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고통이 극에 달하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 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렇게 절규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도 그런 예수님의 고통을 외면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하기 위한 그 모든 고통을 끝까지 감내하셨고, 그렇게 죽으셨습니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도다. 아버지여 나의 영혼을 당신의 손에 맡깁니다.” 이렇게 주님은 죽으셔서 무덤에 묻혔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 속제물로 죽으셨기에 우리는 우리의 모든 죄를 하나님께 용서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희생을 받고 우리를 용서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를 용서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하나님은 당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그분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의 삶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그 죽음을 딛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용서받음을 경험한 사람,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이 부활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땅의 생명이 전부가 아니라 죽음 너머 또 다른 생명, 영원한 생명,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에 함께 사는 영생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우리 모든 제자들을 만나며 소명을 주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렇게 복음을 전하자, 복음에 마음이 감동된 이디오피아 장관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마차를 멈추게 하고, 오아시스에 있는 물가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는 그 순간 하나님께 용서받은 죄인이 되었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며,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2.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세례는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예식입니다. 깔뱅은 세례를 가리켜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로 삼으시는 거룩한 인침이며 이것은 그리스도와의 접붙임으로서 새로운 출발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공동체에 참여하는 인간의 결단”이라고도 말합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아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결정되는 사건입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예식입니다. 그리고 새 사람으로 탄생하는 순간이며, 교회의 일원이 되는 의식인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번거롭게 세례 받고 그럽니까? 그냥 조용히 마음으로 믿고 살아가면 되는 것이죠. 아닙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내가 이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을 세상에 선포하는 것이며, 나의 신앙을 교회가 인준해주는 것입니다. 숨어서 조용히 예수 믿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싫든 좋든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제가 잘 아는 놀기 좋아하는 친구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린 자리에서 갑자기 이렇게 말합니다. “나 오늘 세례 받았다.” 친구들 모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말합니다. “야 그 교회 이제 큰 일 났다.” 그런데 마음속으로 다들 이런 생각을 합니다. “도대체 그 교회는 뭔가? 어떻게 저렇게 놀기 좋아하고, 세상을 막사는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월남 이상재 선생님은 서재필 선생님과 독립협회를 이끄시고, 나중에는 신간회라는 단체를 세워서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앞장서신 분입니다. 그는 38세 되던 해에 정상품 당상관의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하였습니다. 어떻게 이 나라는 이런 강대국이 되었을까? 애국심으로 가득 찬 그는 미국이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근원에 기독교가 있었음을 알고 성경을 읽어보았습니다. 무기를 만드는 법이나 군사를 훈련하는 법과 같은 내용이 있을 줄 알았는데, 떡 다섯 조각과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인다는 허무맹랑한 소리만 있는 성경을 읽곤 아주 실망하였습니다. 이후 독립협회에서 일할 때 많은 이들이 기독교인들이었는데, 그는 독립협회가 기독교화 되는 것을 걱정하여 이를 정면으로 저지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독립협회 때문에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그는 감옥에서 기이한 체험을 하였습니다. 어느 날 밤에 위대한 임금이 보낸 사자의 음성을 듣게 되었는데, 그 사자는 그에게 “나는 수년 전에 워싱턴에서 그대에게 성경을 주어 믿을 기회를 주었지만 거절했다. 이것이 첫 번째 큰 죄다. 그대가 독립협회에 가담하였을 때에도 기회를 주었는데 그대는 믿지 않았을뿐더러 다른 사람까지도 믿지 못하게 방해하였다. 이런 식으로 그대는 민족이 진보할 길을 막았으니 이것이 더 큰 죄다. 나는 그대 생명을 보전하여 옥중에 그대를 두었고, 이제 믿을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주노니 지금이라도 그대의 잘못을 회개하지 않는다면 전보다 더 큰 죄가 될 것이다”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후 그는 주님을 두려워하게 되고 이전보다 열심히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는데, 그 말씀들이 술술 풀려나가며 믿어지기 시작하였고, 이렇게 성경에 정통하게 되니까 유교 등의 다른 학문의 내용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54세의 나이로 기독교 신자가 되었습니다. 수감 3년 만에 석방이 되자마자 감옥동지들과 함께 게일이 창립한 연못골 예배당(오늘날 연동교회)을 찾아가 세례를 받고 입교하였습니다. 블록만이라는 선교사는 그가 믿음을 갖게 된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였습니다.

 

“마침내 그는 영광에 가득 찬 진리를 깨우쳤다. 그의 체험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뭔가 두렵기도 한 것이었다. 자신을 억울하게 옥살이하게 만든 자들에 대한 증오심도 사라졌다.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계심을 느꼈다.”

 

이처럼 우리가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셔서 우리를 그의 제자 삼아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처럼 우리 인생에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으며, 영광스러운 사건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 중에는 이미 세례받은 이들도 있고, 세례를 받아야 할 분들도 있습니다. 세례받은 여러분, 세상에 나는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을 떳떳하고, 당당하게 외치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아직 세례 받지 못한 이들은 온전한 믿음의 고백으로 이디오피아 내시가 세례를 받은 것처럼 그렇게 믿음이 성장하시길 축원합니다. (*)

 

 

소토교회 코이네 박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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