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신앙훈련

[제자훈련] 돌이킬 수 없는 후회 _ 박동진 목사

코이네 2023. 10. 4.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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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후회

읽을 말씀 : 25:29-34, 12:15-17

외울 말씀 : 12:16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1. 에서와 야곱

 

야곱에게 쌍둥이 아들이 있었습니다. 에서와 야곱입니다. 에서라는 말은 붉다는 뜻인데 이름처럼 그는 살결이 붉고 온 몸에 털이 많은 상남자였습니다. 야곱은 태어날 때 형 에서의 발꿈치를 움켜잡고 나왔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남의 발꿈치를 움켜잡은 자라는 뜻으로 이름을 야곱이라 지은 것입니다. 에서는 사냥을 좋아한 상남자였고, 야곱은 장막에 있기를 좋아하는 성격이 조용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에서가 사냥에서 돌아와 보니 야곱이 붉은 죽을 끓이고 있습니다. 야곱의 성향으로 봐서 에서가 돌아올 때쯤 에서가 좋아하는 맛있는 죽을 끓였을 것입니다. 예상대로 에서가 야곱에게 배가 고프니 죽 한그릇만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야곱은 댓가를 요구합니다. 바로 맏아들의 권리를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야곱의 요구를 에서가 받아들입니다. 그는 장자의 권리를 붉은 죽 한 그릇에 팔고서 죽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이런 에서의 행동에 대해 창세기는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라고 기록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런 에서를 망령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2. 장자권과 죽 한그릇

 

옛날 히브리 사람의 전통에 의하면 맏아들의 위치는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의 약속이 담겨진 자리입니다. 그래서 맏아들의 위치는 가문에서 아주 중요한 자리였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에서 맏아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살아남은 구원의 선물이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13:2)

 

하나님이 거룩히 구별하여 자신의 소유로 삼는 것, 이것이 장자입니다. 장자는 거룩한 존재이며, 장자는 하나님이 구별한 특별한 존재이기에 장자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 있었습니다.

먼저 장자는 다른 형제에 비해 두 배의 유산을 받았습니다.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21:17)

그리고 아버지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을 우선적으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배고픔 앞에선 에서는 지금 당장 자신의 배고픔을 달래줄 죽이 필요했을 뿐이지 장자의 권리 따윈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쉽게 죽 한 그릇에 이 엄청난 장자의 권리를 팔아버립니다. 굶주린 에서에겐 장자의 권리보다 죽이 더 소중했던 것입니다.

에서는 왜 이리 경솔한 결정을 했을까요? 에서에게 주어진 장자의 권리는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태어나 보니 장자였고, 장자에게 자연스레 주어지는 권리이자 선물이었습니다. 장자의 권리는 자신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였을 뿐이지,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귀중한 선물인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잊고 살았던 것입니다. 설혹 동생에게 이것을 팔았다 하더라도 자신이 장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소홀히 여긴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동입니다. 십계명에서 두 번째 계명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내용에 하나님은 나를 싫어하는 자에게는 아비의 죄를 그 후손 삼 대에까지 갚는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여 나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그 후손 수천 대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푼다.”고 하셨습니다. 에서는 자신이 하나님을 무시해도 하나님은 자기를 소중히 여기며 축복해줄 것이라고 하는 엄청난 착각을 한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장자의 권리를 팔아버린 에서는 아버지에게서 장자에게 주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에서와 그 자손은 이삭의 아들이면서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 못합니다.

 

3. 배설물처럼 여기다

 

예수님이 공생에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사십일 금식을 마치자 사탄이 찾아와 세 가지로 시험을 합니다. 첫째는 배고픈 예수님에게 돌로 빵을 만들어 먹으라는 것이고, 둘째는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이적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산 위에 올라가서 세상을 보며주며 자신을 경배하면 세상의 모든 권세를 주겠다고 합니다. 세상을 지은 하나님 앞에서 이런 도발을 하는 것이죠.

 

사탄의 주장은 간단합니다. 인간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경제와 명예와 인기 그리고 권력입니다. 예수님도 인간이시니 이런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시고, 인간들에게 이런 것을 주셔야 인간들이 구원자로 믿고 따를 겁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아니다, 사람은 빵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하고, 하나님을 믿고 살아야 하며, 오직 하나님만 경배하며 살아야 한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이를 모르고 진리를 왜곡하는 마귀에게 물러가라고 꾸짖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바울은 에서와 정 반대의 선택을 합니다. 바울이 아직 회심하기 전에 그는 자신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살았습니다. 바울은 태어난 지 팔 일만에 할례를 받은 순수 히브리 사람으로 베냐민 지파 사람이며,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바리새파 사람이요, 학문적으로는 그 당시 최고의 학부인 가말리엘 문하생인데다, 태어날 때부터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자부심에 넘쳐난 바울은 급기야 교회를 핍박하고, 스데반 집사의 순교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만난 뒤 자신의 이러한 육적인 자랑거리를 모두 오물처럼 여기고 버렸다고 말합니다.

 

3:8~9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예수를 아는 것, 예수 안에서 발견되는 것,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며, 이것에 비하면 세상의 자랑거리는 모두 배설물에 지나지 않다는 것입니다.

 

4. 거룩함

 

무엇이 가장 소중한가? 지금 우리는 에서와 같은 처지입니다. 배고픔에 시달린 에서가 죽 한그릇과 장자권을 두고 선택을 해야 하듯 우리도 그런 선택 속에 살아갑니다. 에서와 같이 망령된 선택을 하면 돌이킬 수 없는 후회만 남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소중하고 귀하다고 하는 것을 구별할 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는 것을 소망하며 내 것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합니다.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온전하다는 것은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이 거룩함은 인간이 인간 되게 하는 가장 소중한 삶의 본질입니다. 이것이 있을 때에만 삶이 확고해지고 흔들림이 없습니다. 인간의 삶의 의미와 기쁨이 이 거룩함에서부터 나옵니다. 거룩함을 상실할 때는 삶이 흔들리고 무의미 속에 빠지고 분열이 됩니다. 거룩함 포기하면 인생의 목적을 상실한 것이며, 남는 것은 허무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을 성도라고 부릅니다. 성도란 헬라어로 '거룩함'이란 뜻입니다. 거룩하기 위해 세상을 떠나 은둔생활을 한다고 해서 거룩해지지 않습니다. 도리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행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

 

by 박동진목사(소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