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보라
본문 : 요한복음 1:29~34
2023.6.18. 소토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1. 안 본 눈 삽니다.
누군가가 아주 불쾌하고 징그러운 사진을 올린 것을 본 한 사람이 이렇게 댓글을 답니다. “안 본 눈 삽니다.” 우린 살면서 참 안 볼 걸 너무 많이 보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좋은 것을 보며 눈을 정화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가장 많이 봅니까? 무엇을 보면 불쾌하고, 무엇을 보면 상쾌하고 또 행복합니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꼭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보면 우리의 심령이 정화가 되고, 치유가 되고, 또 새롭게 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2. 예수를 보라
세례요한이 자신을 찾아온 예수를 봤습니다. 그러자 그는 바로 이렇게 외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로다”
세례요한은 예수를 보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그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사람들에게 소개하며, 자신의 사명이 바로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증언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세 가지로 소개합니다.
첫째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29절)으로,
둘째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이(33절)로,
셋째는 하나님의 아들(34절)로 증거합니다.
3.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어린양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어린 양이 아니라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그 어린양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입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은 하나님께 바쳐진 어린양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제물을 바치거나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제물을 바칠 때 양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양은 흠이 없고 건강한 생후 1년 된 어린양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두고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한 것은 제물로 구별된 어린양처럼 '완전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보라'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이사야서 53장에 보면 예수님에 대해 예언하는 고난받는 종에 관한 내용이 있습니다. 거기서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 하였도다"(이사야53:7)라고 말합니다.
제가 몽골에서 직접 양을 도축하는 장면을 봤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그 양은 자신이 죽는 데에도 저항하지 않습니다. 이 어린양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데 저항하지 않고 죽기 까지 순종하였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희생양이 되어 우리에게 온 그리스도입니다.
즉 세례요한 보고 세상 사람들에게 당신들도 보라고 소리친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 위해 이 땅에 온 하나님을 보라는 것입니다.
4. 성령이 임하신 분
세례요한은 세상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만이 아니라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내려와 그 위에 머물고 계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5. 억울하지 않습니까?
얼마 전 재밌게 본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한 가정주부가 집에 참 헌신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족들은 그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갑질을 합니다. 시어머니도 갑질하고 남편도 딸과 아들도 그런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며 그것을 귀한 줄 모릅니다. 어느 날 이 여인이 각성합니다. 억울한 생각이 듭니다. 그 여인도 의과대학을 졸업해서 의사 자격증이 있는 의사출신입니다. 그런데 가정을 위해 그 모든 걸 포기하고 가족들에게 헌신했는데, 돌아온 것은 박대와 갑질입니다. 억울하다고 생각이 들면서 다시 자신을 위한 인생을 도전하며 다시 의사의 길을 걷습니다.
전 예수님께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예수님은 하나님입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수 있는 영광의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왜 그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셔야 합니까? 하나님의 어린양은 자신을 완전히 희생하는 인생입니다. 그 목숨까지도 죄인들을 위해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 땅에서 희생양으로 살아가는 것 억울하지 않습니까?
제가 주님께 물어봤습니다.
주님 억울하지 않습니까?
그랬더니 주님께서 제게 묻더군요.
“넌 억울하냐?”
6. 희생하는 낭만
전도를 하니 이렇게 말합니다-“예수 믿어도 별일 없는 사람 있고, 예수 안 믿어도 잘 되기만 하는데 굳이 예수를 믿을 필요가 있을까?”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인생의 목적을 둔다면 굳이 예수를 믿지 않아야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 예수님처럼 천국을 만들면 살아가고 또 죽어서도 영원한 영생을 누리기를 원하신다면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낭만닥터
“우리가 왜 사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에 대한 질문을 포기하지 말라. 그 질문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의 낭만은 끝이 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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