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 인생

하루 15시간 나랏일 한다며 일하는 노동자의 이야기

코이네 2010. 4. 22. 15:58
>



몇 달전입니다. 오랜만에 조금 시간의 여유가 생겨 TV를 켰더니 다큐멘터리를 하더군요. 방송 제목은 기억이 나질 않네요. 배들이 보이고, 화물들을 싣고 나르고, 화물을 지키는 일을 하는 사람들, 화물을 옮기는 일을 하는 사람들..생선을 잡고, 구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 등등 다들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가 담아내고 있었는데, 항만에서 일하는 제 조카가 생각이 나 더 관심을 갖고 시청을 했습니다.

PD가 한 청년에게 일이 힘들지 않냐고 질문을 하니, 그 청년이 아주 재밌는 대답을 합니다.

"아닙니다. 나랏일하는 사람인데, 이정도 힘든 건 참아야죠."

"예? 나랏일요?"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같은 수출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파업을 해보세요. 나라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열심히 일을 하니, 중간도 있고 윗대가리도 있는 것이 아닙니까?"

"예 맞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요즘 청년실업도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니 감사하며 일해야죠."

그 청년은 아주 당당해 보였고, 자신의 일에 많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 했습니다. 얼굴도 잘 생겼는데, 마음도 참 바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루 15시간이라는 고된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그 청년에게 PD는 또 물었습니다.

"15시간 일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기분이 어떻습니까?"

"예 아주 좋습니다. 처음 입사 했을 때, 이곳에서 뿌리를 박겠다고 생각하고 들어 왔는데, 5년을 일한 지금도 변함은 없습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갈 때면 뿌듯하고 행복합니다."

다소 피곤하고 지쳐 보였지만, 그 청년은 분명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죠. 고된 일을 5년하고 그리 많은 수입을 받지도 않을 텐데, 그는 긍정적인 눈과 마음으로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이 정말 예뻐 보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켠으로는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드네요.

일단 하루 15시간 근무라는게 말이 되는 이야기일까요? 사람이 기계도 아닌데, 또 기계도 이런식으로 부린다면 어떻게 견뎌나겠습니까? 이 사람에게 급료를 얼마를 주는지는 PD가 물어보지 않아 잘 알지 못하지만 급료가 아무리 많으면 뭣합니까? 이렇게 뼈빠지게 일한다면 지금은 젊으니까 좀 견딜 수 있을지 모르나 곧 몸이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 땐 누가 어떻게 보상할 수 있을까요?

갑자기 이런 사람의 아내는 어떨까? 집이 잠만 자는 곳도 아니고, 일하기위해 쉬러 오는 곳은 더더욱 아니니까요. 정상적인 부부생활, 가정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듭니다.

방송이 끝난 뒤 과연 이 방송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혼란이 왔습니다. 지금 경제가 이리 어려울 때 일자리를 얻은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고, 이왕 일할 것이면 이 사람처럼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해라. 그래서 15시간이든 20시간이든 딴 소리 말고 그냥 일해야지 파업이니 뭐니 하는 그런 엉뚱한 짓은 생각지도 말아라. 혹 그런 것일까요? 아니면 어려운 경제사정 내세워 이렇게 착한 사람들을 이용해먹고 있는 현실을 고발하면서, 기업윤리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말하는 것인가요?

오랜만에 참 반듯한 생각을 가진 참한 청년의 모습에 가슴 뭉클한 감동도 느껴오지만, 웬지 예전에 국정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대한늬우스"를 보는 것 같은 이 찜찜함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예전에는 남이 하지 않는 힘든 일을 불평하지 않고 일하는 분들을 보면 그 희생정신에 대해 감사와 존경심이 우르러 나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조금 바뀌어지네요. 이렇게 우리 사회가 이런 고마운 분들의 희생만을 강요하게 된다면 그건 결코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건 곧 사회구조를 무너뜨리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죠.

앞서 TV에서 보았던 반듯한 청년과 같은 사람,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그 사명감으로 일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이젠 이 나라가 정말 "나랏일을 하는 분"으로 모시고 제대로 대우하는 사회가 되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