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 인생

설교예화, 장편소설 완장의 작가인 윤흥길과 어머니의 기도

코이네 2013. 10. 7. 07:07
>

설교예화, 장편소설 완장, 장마, 아홉켤레의 구두의 작가 윤흥길, 윤흥길과 어머니의 기도, 윤흥길이 말하는 글쓰는 이유 그리고 기독교 문학이란?





작가 윤흥길씨가 있습니다. 80년대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분입니다. 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회색면류관'으로 등단한 후 83년 중편 `꿈꾸는 자의 나성'으로 한국창작문학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에 장편 `완장'으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중견 소설가입니다.

그가 어린시절부터 기독신앙을 가졌으며 그는 초등학교 시절 무허가 판잣집이라는 이유로 그의 집이 강제 철거를 당하는 참혹한 장면을 목격한 이후 세상과 불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현실에 불만족과 실망을 느낀 나머지 초등학교 5학년때 처음 가출을 단행했습니다. 그의 가출벽은 중학교 2학년때까지 계속됐습니다.
 
마지막 출로 기록된 그날은추운 겨울 새벽이었습니다. 가출 며칠만에 집을 찾은 그는 어머니 몰래 담을 넘어 마루 밑으로 기어들어가 방에 불이 꺼지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때 그는 집을 나간 아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어머니의 기도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자신 때문에 고통을 받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출벽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것입니다.

 

엄마의 기도

눈물로 기도하는 어머니@영화의 한 장면



공군에서 비행기 정비사로 복무하던 시절 격납고에서 작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갑자기 집체만한 비행기가 눈에 나타났습니다. 직감적으로 사고임을 느끼고 몸을 옆으로 굴렸답니다. 고장난 비행기가 추락한 것입니다. 거기에서 그는 살아났습니다. 사고 며칠 후 어머니로부터 "언제나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고 그 편지는 사고 당일 쓴 편지임을 알았다고 합니다.  

또 한번은 84년 독일정부 초청으로 베를린에서 열리는 제3세계 문화축제에 참석하고 있을 때 연이은 과로로 왼쪽 반신마비증세가 왔답니다. 귀국후 치료를 받아도 아무 소용이 없어 낙담하고 있었습니다. 아내와 병원을 다녀오던 길에 불현듯 그날이 수요일이란 것을 깨닫고 택시를 교회로 향했답니다.

예배당에 들어선 그는 맨 뒤에 앉아 `십자가를 내가 지고'라는 찬송을불렀습니다. 마비증세로 발음이 잘 안됐지만 목청껏 부르자 통회하는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평소 눈물이 없던 그는 통곡을 하며 찬양을 했습니다. 마음이 평안해졌고 하나님께서 이미 자신의 몸 치료하시기 시작했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이때 그는 "앞으로 제가 똑똑한 발음으로 크게 찬송을 부를 수 있게 해주시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문서선교에 힘을 쏟겠다"고 서원했답니다. 그후 건강을 회복한 그는 그때 서원한 것을 지키려고 애쓰고 있다고 합니다.


윤흥길

윤흥길 작가



다음은 작가 윤흥길이 기독공보에 기고한 에세이의 한 부분입니다.

당신은 왜 문학을 하는가.
지난 80년대 초반 파리의 리베라시옹 지가 특집 부록을 꾸미기 위해 각국의 4백여 문인들에게 던진 설문 내용이다. 나라와 민족의 문학환경과 전통에 차이가 있고 응답자의 개성이 제각각 다른 만큼 별의별 대답들이 다 나왔다.나는 그때 이렇게 답했던 기억이 있다.

"가출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그렇다. 나는 정말로 가출을 도모하기 위해 문학을 시작했고, 또 문학이란 수단을 통해 여태껏 수많은 가출을 경험해 왔다. 내가 처해있는 현실은 나에게 늘 불만족과 실망만을 안겨주곤 했다. 가정도, 학교도, 고향 마을도 그리고 교회도 내게는 진정한 의미의 구원이 되지 못했다. 내가 꿈꾸는 이상은 아직까지 내가 밟지 못한 미지의 땅, 걷지 못한 어느 길, 하지 못한 어떤 일 쪽에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에 늘 초조하고 늘 갈급했다. 밑빠진 독과도 같은 내 영혼의 빈 그릇을 채우기 위해 나는 뭔가를 통한 정신의 가출만이 내게 허용된 유일한 구원수단임을 뒤늦게야 깨닫기에 이르렀다.

(중략)
이세상에 부재중인 아버지와의 때늦은 화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과의 화해로 어렵지 않게 이어졌다. 어린 시절의 나로 하여금 간난신고만을 겪도록 방관자처럼 내내 모르쇠만 잡고 계시던 하나님의 가혹한 처사 도한 당신의 백성을 정금으로 연단시키기 위한 웅숭깊은 배려였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참으로 장구한 시일이 걸린 셈이다.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아들이 어느 틈에 초등학교 5학년으로 성큼 자라 있는 것이었다. 덜컥 겁이 난 나머지 나는 당장 아들을 불러앉히고는 무섭게 협박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내 앞에서 건방지게 가출 따위를 꾀할 경우 국물도 없을 줄 알라고.

(중략)
소설을 대하는 주변 기독교인들의 시각이 나를 한동안 번민에 빠뜨렸다. 그들은 나에게 그냥 문학만 하지 말고 기독교문학을 하라고 권고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기독교 교리에 영향받아 창작에 임하는데도 그들의 눈에 비친 내 문학은 기독교문학이 아니었다.

그들이 말하는 기독교문학은 일종의 선교문학이자 간증문학이었다. 나는 누구의 간섭도 받음이 없이 그냥 문학에 매달리기 위해서는 교회를 멀리할 필요성을 느꼈다. 또다시 하나님과 버성겨 지내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세상 속에 꼭꼭 숨어 숨바꼭질을 벌이는나를 용케도 찾아내 당근과 채찍을 번차례로 주시곤 했다. 나이 들고 건강마저 상해 이젠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고 판단했을 때 나는 절대자 앞에 두 손을 번쩍 들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바탕삼아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미력이나마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거드는 문학이 다름아닌 기독교문학이라고 나 나름대로 입장도 정리했다. 창조주께 모든 것을 의탁하고 그가 베푸시는 모든 것에 감사하고자 하는 지금의 나는 마치 해저 깊은 곳에 마땅한 쉴 곳을 찾은 상어만큼이나 신간이 편안함을 느낀다.


윤흥길_타이핑

타이핑으로 글을 쓰고 있는 작가 윤흥길



(윤흥길: 위키대백과)
윤흥길(尹興吉, 1942년 12월 14일 ~ )은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전라북도 정읍군 정주읍 시기리 출생이며, 전주 사범학교를 수학하고 원광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19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회색 면류관의 계절〉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황혼의 집》,《장마》,《묵시의 바다》,《완장》,《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등이 있다. 인간의 근원적인 갈등과 민족적 의식의 저변에 위치한 삶의 풍속도를 예리하게 파헤치는 솜씨를 지닌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