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이야기

보수적인 기독청년이 사회현실에 눈을 뜨게 된 계기

코이네 2020. 3. 19.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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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학 85학번입니다. 1985년도에 대학에 입학했다는 것이죠.

이 시절은 민주화운동이 거세게 일고 있을 때였고,  많은 학생들은 거리로 나가 군부독재타도를 외쳤습니다. 그리고 그보다는 훨씬 적은 수이지만 꽤많은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각종 시험공부에 매진하기도 했구요. 


당시 기독교 학생들은 대다수가 도서관파였습니다.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기도하기도 했지만 현실참여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저도 그랬지만 운동권이 주도하는 투쟁방식은 기독교인들이 받아들이기엔 너무 과격했고 따르기 힘든 점도 있었구요, 또 대다수의 교회들 그 교회의 목회자들이 사회현실에 대해 무관심하였고, 또 무관심한 것을 신앙이라고 가르친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신학교에 와보니 그 시절에 열심히 도서관에서 공부했던 교회오빠들이 다수였습니다. 이들은 여전히 세상돌아가는 것에 무관심하고 개인적인 영성과 교회생활에 충실했으며 그런 성향들은 목사가 되고 난 뒤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들 눈에는 당시 데모를 주도했던 운동권 출신들은 여전히 부담스럽고 꺼려지는 존재들이라 그냥 주는 것없이 미운 모양입니다. 아무리 잘해도 그냥 미운 존재들이다 보니 어떨 때는 이성의 끈을 놓은 채 비판하는 모습도 종종 보게 됩니다. 





저도 보수적인 성향의 기독교인입니다. 착한 교회오빠였고 대학에서 데모하는 선배들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그들의 좌경사상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대학1학년 여름방학 때인가 우연히 광주민주화운동 사진전을 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참혹한 현장이 내 눈 앞에 펼쳐졌고 그때 우리나라의 현실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정의로운 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통치자들 역시 정의롭고 나라를 사랑하는 권력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전을 보면서 너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이 나라를 지키고 이 나라의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군이 광주시민에게 총부리를 들이댈 수 있는지, 그리고 이렇게 잔인한 짓을 저질렀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저 북한의 김일성은 자신들의 권력욕과 사상 때문에 동족에 총부리를 들이대며 전쟁을 했는데, 전두환과 그 무리는 김일성보다 더 못한 악행을 저질렀고, 그 현장을 사진을 통해 보게 된 것이죠. 


너무 큰 충격에 처음에는 현실부정을 했습니다. 설마 그럴 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현실에 진실해지고, 사실을 확인하면서 우리나라는 정의로운 정권이 아니라 군부독재였고, 자유대한이라 하지만 전혀 자유롭지 않은 사회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운동권 그당시에는 주사파가 주류였는데 그들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못하지만(그들과는 정말 많이 싸웠습니다.) 이 부도덕하고 정의롭지 못한 현실 그리고 이 시대가 반민주주의라는 현실인식은 같이 했습니다.


안따깝게도 기독교 시각에서 사회를 이끄는 세력이 없었습니다. 있기는 했겠지만 제겐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 주변에 있는 목사님들과 교회 지도자들은 일신의 안위를 살피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서 제발 데모 같은 것은 하지말라고 신신당부하고 있었으니까요. 현실이 이렇다보니 당시의 운동권이 주도하는 것을 따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거리로 나갔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세상을 개혁하는 물결에 동참했습니다.


그래도 수업은 빠지지 않았습니다. 후에는 학교 전체 아니 이 나라의 대학들이 대부분 수업거부를 했지만 그 이전까지 수업도 열심히, 과제도 열심히, 그렇게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데모하는 것이 교수님들에게 발각되엇고, 학과장님께 불려가 경고까지 받았습니다. 그래도 별로 달라지지 않다 보니 그 학기 학점이 올c+를 받았습니다. 쩝..그래서 내 대학 성적은 평균 b가 되지 않습니다. 평점이 아마 2.97일겁니다. ㅎㅎ

 

이 성적으로 그 어렵다고 하는 장로회신학대학원에 입학한 것만해도 주님의 엄청난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by코이네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