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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2:13]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_박동진 목사 설교

코이네 2024. 12. 23.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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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본문 : 2:13-22

2023.7.23. 소토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예전 제 신대원 선배 중에 아주 잘나가는 분이 있었습니다.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신대원도 아주 높은 성적으로 졸업하였고, 노래도 잘하고 설교도 잘하고, 거기다 인물까지 빼어난 요즘말로 하면 엄친남에다 차도남 스타일의 그런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섬기던 교회에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담임목사님과 장로님들이 서로 싸우는데, 이 목사님은 어떻게 하든 중립을 지키며 교회의 분쟁을 가라앉히려고 정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중립은 양쪽 모두에게 욕을 듣습니다. 견디다 견디다 못한 목사님, 사표를 제출하고, 임지를 옮기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될 듯될듯 하면서 안되는 겁니다. 그분이 훌륭한 것을 아니까 선배든 후배든 그 분이 임지를 구할 수 있도록 많이 돕기도 했는데, 이상하게 막판에 가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렇게 일년이 흘렀습니다. 이미 사표를 제출했기 때문에 일년동안 백수가 된 것이죠. 너무 속이 상해서 하루는 결심하고 금식하며 기도하였는데, 한참을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한 장면을 보여주었습니다. 바로 사표 쓰는 장면이었는데, 사표를 쓰면서 목사님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까짓 교회 그만 둔다. 여기 아님 교회가 없는 줄 아냐? 내 치사해서 그만둔다.” 얼마나 당시 화가 났으면 그렇게 말했을까요? 그런데, 바로 목사님이 화가 나서 내뱉은 말 이까짓 교회라는 말이 가슴에 탁 와 박히는 거예요.

순간 그 목사님이 깨달았습니다. 아 그거구나. “이까짓 교회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기 위해 목회자가 되었는데, 그런 목사의 입에서 결코 하지 않아야 할 말을 한 것입니다. ~ 이 세상에 내가 이까짓 교회라고 할만한 교회는 없구나. 세상의 모든 교회는 정말 주님께 모두가 소중한 존재이구나. 하나님께서 날 일년간 이렇게 힘들도록 하신 것은 교회의 소중함을 먼저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구나. 순간 자신이 얼마나 교만했는지 울며 회개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주님께서 성전을 정화한 아주 유명한 사건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제물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개인적인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나 헌신 감사 등 제사를 드리는 종류에 따라 율법에 정해진 제물을 바쳐야 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의무적으로 3대 절기를 지켜야했는데 이 때는 전국의 모든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 제사를 드리며 절기를 보내야했습니다.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이 제물을 준비해 가져오다 보면 때로는 상하게 되어 제물로 적당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 때문에 성전 주위에는 제물용 짐승을 판매하는 상인들의 장터가 생기게 되었고, 이들은 성전의 제사장들과 결탁이 되어 있었습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려면 제물이 온전한지 제사장에게 검수를 받아야했는데, 자신들이 지정한 곳에서 구입한 것이 아니면 부정하다고 돌려보냈습니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이들의 제물을 살 수밖에 없었고, 이로 장사꾼들과 제사장들은 엄청난 이윤을 벌어들일 수 있었습니다. 성전으로 장사한 것입니다.

 

한번 상상해보세요.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성전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입구에 온갖 동물들의 울음소리에 악취가 진동하고, 이를 팔려고 호객하는 장사치들의 고함 소리, 또 값을 흥정하는 소리 등 성전은 완전 시장터를 방불케 했을 것입니다.

 

성전에 가신 예수님이 이 광경을 보고 엄청나게 분노합니다. 마치 이성을 잃은 것처럼 그 상인들의 좌판을 들러 엎으시고, 허리띠로 채찍을 만들어 그들을 내쫓기 시작합니다. 돌발적인 상황에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나 장사꾼들 그리고 그들을 관리하는 제사장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함께 한 제자들도 놀랐을 것입니다. 이건 예수님의 평소 모습이 아니거든요. 여러분도 예수님이 이렇게 분노로 이성을 잃은 것 같은 행동을 하시리라고 상상이나 하셨나요?

여러분 이 사건 바로 앞에 성경에 적혀있는 내용이 바로 가나의 혼인잔치입니다. 그곳에서의 예수님은 유쾌하고, 자신의 일이 아니지만 신랑신부의 어려움을 긍휼히 여겨 기꺼이 기적을 일으켜주신 자애로운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완전 그것과는 극과극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성경을 읽고 있는 저도 와 예수님께 이런 면이 있었구나~” 생각할 정도였는데, 당시 그 상황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 모습도 분명히 우리 예수님의 모습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분노

 

보통 우리는 화내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합니다. 화를 내면 듣는 말이 있습니다. “지 성질대로 살면 되나?” 그래서 화는 될 수 있는 대로 참고, 화를 잘 참는 사람이 군자이며, 또 훌륭한 인격의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단지 화를 잘 참는 것을 훌륭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분노에 사로잡히는 것을 경계하기는 하지만 화를 내는 것 자체를 죄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자연스런 인간의 모습이라고 말하고 있고, 또 하나님도 화를 내신다고 합니다. 화내시는 하나님, 시편에 보니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왜 분노하시나요? 인간이 죄를 짓고 죄의 길에서 떠나지 않는 모습을 보시고는 분노하신다고 합니다.

여러분, 분노를 내야 할 일에는 화를 내어야 합니다. 분노해야 합니다. 그래야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고, 불의하고 부정한 일들을 고쳐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갑니다. 화내는 것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관점에서 화를 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이 왜 사람들이 분노하는가 하고 그 원인을 살펴보았더니 이건 내게 부당한 일이다. 난 이런 부당한 일을 당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할 때 분노한다고 합니다.

정의롭지 않은 일에 대해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할 때 부당하다고 느끼면 화가 난다는 것이죠. ‘내가 왜?’ 그래서 화를 내는 것이고, 이렇게 화를 내다 보면 문제가 더 복잡해지고, 힘들어지고, 마지막에는 서로 상처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에 보면 미련한 사람은 당장 분노를 나타내고, 지혜로운 사람은 노하기를 더디한다고 하였습니다. 분노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화를 내더라도 이게 화낼 일인지 생각 좀 해보고 화를 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화내기를 더디할 수 있을까요?

먼저 화가 날 때, 화나는 것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말로 표현하세요. “~ 화가 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을 둔 후 이거 정말 내가 화를 낼만한 일인가 조금은 냉철하게 생각하며, 성령께 자신의 감정을 맡기는 것입니다. “성령님 제 마음과 제 감정을 다스려주옵소서. 나의 분노를 주님께 맡깁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평정시켜주시며,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말이 참 중요합니다.

15:1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화를 돋구는 말이 아니라 분노를 잠잠케 하는 그런 유순한 말을 하면 화를 더디내는데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분노를 다스려야 할 때도 있지만 우리는 분노해야 할 일에 대해 분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잘못된 일, 죄를 범하는 일, 불의한 일에 대해서는 그것이 잘못되고 불의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며, 그 불의를 바로잡고 고쳐갈 수 있도록 분노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분노할 일에 분노하지 못하면 우리는 그러한 불의에 동조하는 결과가 되어 마침내 그 불의에 사로잡히게 되고, 죄 가운데 빠져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이렇게 분노해서 과격하게 행동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성전, 교회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다른 것은 다 참아도 이렇게 하나님의 집이 강도의 소굴로 장사하는 곳으로 전락해가는 것은 참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당시엔 예루살렘이 있던 그 교회를 두고 하신 말씀이지만, 지금의 성전은 바로 교회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을 보면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15-17)

 

예수님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인 교회가 타락하면 이처럼 분노합니다.

그만큼 주님께 교회는 중요합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의 관심은 온통 교회에 집중되어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하늘나라에 계셔서 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는 우리 주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일곱촛대를 계시록은 바로 교회라고 합니다.

주님이 어디 계시나요? 바로 교회 사이를 거닐고 계신 것입니다. 지금 주님이 어디 계신가요? 바로 우리 교회를 거니시며, 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은 교회를 주님의 몸을 이루는 지체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살펴보면 사도 요한이 하늘나라에 올라가서 천국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앉아계신 보좌가 있고, 그 주위에 24명의 장로들이 일어서서 주님을 찬양하고 있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바로 이 24명의 장로가 교회를 상징합니다. 이 세상은 바로 주님이 중심이 되어 하나님의 교회가 온 우주를 다스리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얼마나 중요하냐? 바로 하나님은 이 교회를 통해 온 우주를 다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교회를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으로 세웠습니다.

그런 이 교회가 타락하고, 돈벌이 도구로 전락하고, 온갖 이권과 불의가 판치는 모습으로 더렵혀 진다면 주님은 분노하십니다.

 

우리는 교회를 교회답게 해야할 책임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먼저 교회가 기도하는 집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시키는 장면은 사복음 모두에 나옵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모여 있는 이곳은 교회당입니다. 실제 교회는 주님을 영접한 우리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함께 모인 공동체를 두고 교회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교회가 바로 기도하는 자들의 모임이 되길 원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모이는 이 자리, 이 소토교회당이 바로 기도하는 곳이 되길 바랍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영적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호흡하고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사람의 체온이 묻어나야 합니다. 주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와서 하나님을 만나는 그 온기가 남아 있어야 교회가 교회다운 것입니다. 그럴 때 그 교회는 이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지체가 되고, 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교회를 통해 하나님은 이 세상에 복을 흘러내리게 하십니다.

 

또한 교회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기업에도 주인이 있고, 나라에도 주인이 있습니다. 요즘 기업은 대부분 주식회사입니다. 그 말은 주식을 갖고 있는 주주가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표가 되는 삼성도 주식회사입니다. 이 말은 삼성의 주인이 몇몇 특정 재벌가의 사람이 아니라 그 주식을 갖고 있는 모든 주주라는 사실입니다. 대다수의 주주들의 이익이 온전히 실현되면 그 기업은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이 말은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헌법 11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몇몇 권력자가 주인이 아니라 국민들이 주인이 되어야 온전한 대한민국이 되는 것입니다. 권력자와 정치인, 공무원들이 국민의 눈치를 보고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힘써야 대한민국의 온전한 정부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인이 교회의 주인이라고 착각하기도 하고, 성직자가 주인이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아닙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인간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목숨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으로 죽어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마땅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세운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인간들이 주인 행세를 하는 교회를 많이 봅니다. 교회가 분쟁하는 이유를 보면 대부분 누가 주인이냐? 누가 더 영향력이 있는가? 교회에서 주인 행세하려고 싸웁니다.

그리고 교회를 세습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가 개척했고 내가 부흥시킨 내 교회이니 내 자식에게 물려주겠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지금껏 하나님의 교회를 섬긴 것이 아니라 자기 사업체로서의 교회를 만들어왔던 것입니다. 그건 하나님의 교회가 아닙니다. 정말 개탄스러운 것은 우리 교단에서 세습으로 문제를 일으켰던 교회가 제대로 회개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화해라는 명목으로 이번 교단 총회를 그 교회에서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순종하기보다 사람들의 정치적인 야합이 빚어낸 참사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교회가 그 본질을 잃어버리면 예수님이 분개하십니다. 분노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다 뒤엎어버리고 내쫓아버립니다. 그래도 안 되면 헐어버립니다.

본질을 잃어버린 교회는 더 이상 하나님의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장사하는 가게가 되어버린 성전을 향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성전을 헐라이런 교회 이런 성전은 하나님에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23절에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문입니다.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

이것이 우리 소토교회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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