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
성경 : 시편 4편
2025.1.26. 소토교회 주일낮예배 박동진 목사 설교
성경에 나오는 훌륭한 인물들은 대부분 노년을 편안하게 보내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말년도 참 힘들게 산 사람입니다. 다윗의 일대기를 보면 정말 이렇게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고생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왕이었지만 웬만큼 고생한 사람들도 다윗 앞에서는 내가 고생했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구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인생의 황혼녘에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왕위도 빼앗기고, 나라도 빼앗기고, 백성도 빼앗기고, 예루살렘과 성소, 그리고 법궤까지도 빼앗기고, 후궁들까지 빼앗겼습니다. 그는 모두가 알아주는 영웅이었지만 지금은 체면이고 자존심이고 산산조각이 난 채 모진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구차하게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비참하게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아들입니다. 압살롬이라고 하는 이름의 뜻은 "나의 아버지는 화평"이란 뜻입니다. 세상을 화평하게 해줄 사람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던 압살롬에게 지금 이런 참담한 일을 겪고 있으니 그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또한 그 압살롬 편에 서서 자신을 이 위기 가운데 몰아넣고 있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자신의 친구들이었고, 심복들입니다.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한 다윗의 마음은 참담하기 그지없었을 것입니다.
차라리 외적에게 쫓겼더라면 이렇게까지 처참하진 않을 겁니다. 얼마 전까지 다윗과 함께 동고동락했던 전우들이고, 친구들입니다. 다윗이 가장 사랑한 아들입니다. 지금까지 목숨을 걸고 보호해 주었던 사람들이며, 또한 자신을 지켜주었던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철천지원수가 되어 지금은 자신을 죽이려고 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질 않습니다. 도대체 내가 무얼 그리 잘못했기에 이러는가? 억울하고 분하고 설움이 북받쳐 오르고 미칠 것 같은 감정이 솟구쳐오릅니다. 가슴이 터질 것 같고, 눈물이 터져 나옵니다. 이런 다윗의 모습을 보고 다윗을 저주하며 조롱하는 사람도 있고, 뒤에서 수군거리며 비난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리고 온종일 피곤한 발을 끌며 성벽이 둘러있는 산간 성읍 마하나임에 이르렀습니다. 산간 성읍에 어두움이 덮이고 온 누리가 적막에 잠깁니다.
이 때 그는 하나님을 찾습니다. 기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고 있습니까? "내 의의 하나님이여"
분노는 내가 참 부당한 일을 당했다고 느꼈을 때 나타나는 감정입니다. 그리고 이 부당함의 기준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분노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의로운 하나님을 찾습니다. 의로운 하나님께서 모든 일의 시시비비를 가려서 판단해 달라는 것입니다. 내 기준으로 보면 너무 분하고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는 상황이지만 이 모든 판단을 하나님께 맡기겠습니다. 내 편에서 모든 일을 판단하는 것이 멈추고,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정의와 의로움에 맡기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시시비비를 가려주십시오. 저는 하나님의 판단에 순종하겠습니다.
그러자 분노가 가라앉기 시작하고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그리고 앞으로 하나님이 하실 일에 대해 기대를 갖게 되고, 그 앞날을 예견하게 됩니다.
‘난 지금 하나님 편에 서 있다. 그래서 내 판단을 뒤로 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다. 이제 나를 대적하고 있는 저들도 하나님 편에 서 있다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악한 일을 그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대적자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결말을 낼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합니다.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다윗은 고백합니다. “고난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너그럽다는 말의 원어를 풀이하면 넓은 길로 이끌었다는 뜻입니다. 곤란 중이라는 말은 더 이상 빠져 나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길에 몰렸다는 뜻입니다. 이제 막다른 길에 몰려서 끝났구나 싶었는데 갑자기 벽이 무너지면서 큰 길로 나오게 되고 위기를 벗어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것처럼 불안했는데, 그 벽 앞에 서서 하나님을 찾으니 하나님은 그 벽을 허물어 살길을 마련해주셨습니다. 이런 일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이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은 지금도 그렇게 하실 것이다. 다윗은 그런 경험을 참 많이 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다윗만큼 고난을 많이 당해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고생할 때마다 하나님이 도와주셨습니다. 고난이 많은 만큼 하나님의 은혜도 많이 경험한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믿음은 기억해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셨던 일을 기억해내고 또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극한 상황에서도 마음이 너그러워집니다. 좁은 현실에 막혀 있는 마음이 크고 넓은 하나님의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인생들아”
지금 다윗 곁에 있는 사람들 상태는 어떨까요? 그들 역시 분노에 치를 떨고 있을 겁니다. 어떻게 하든 복수할 것이다. 지금 겪고 있는 이 치욕을 백배 천배로 되갚아줄 것이다. 그들은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 곁에서도 계속해서 그렇게 분통을 터트리며, 어떻게 해야 복수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찾는데 골몰해있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다윗처럼 하나님을 찾지 않고, 오직 자신들의 힘으로, 자신들의 능력으로, 자신들의 방법으로 복수할 생각에 몰두해 있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을 향해 말합니다.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영광의 하나님을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꾸미고, 거짓을 구하려는가?” 무슨 뜻입니까? 정신 차리라는 말입니다. 어떻게요? “하나님은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하나님은 경건한 자를 택하며, 경건한 자의 기도를 들으신다. 그러니 경건한 자의 길을 가자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경건한 사람입니까?
4절에 ‘하나님 앞에 떨며 범죄하지 말고,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
여러분, 분노에 가득 차서 계속해서 그 분을 쏟아놓으면 나도 모르게 악이 받히게 되고 죄악이 내 속에서 쏟아져 나옵니다. 그러면 똑같이 그런 죄인이 되던지 그보다 더한 죄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런 고난을 당할 때 경건한 사람은 일단 입을 닫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잠잠히 하나님을 생각할 때 의인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느끼게 되고, 이렇게 되면 악한 길을 버리고 끝내 의로운 길을 추구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어려울수록 하나님을 가까이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가까이 하십니다.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악몽 같은 현실을 생각하면 기가 막히고 분하여 가슴이 터질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하나님의 얼굴을 찾으니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복받쳐 올라옵니다.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고, 철석 같이 믿었던 신하와 백성이 배신한 이 지경이자만, 하나님은 변하지 않고 여전히 나를 바라봐 주시는구나. 변치 않는 사랑으로 어려울 때 도리어 더 측은히 여기시며, 이 험난한 피난길도 마다하지 않고 동행해 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르고 그냥 눈물이 납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입가에 미소가 흐릅니다. 웃음이 나옵니다. ‘아니 상황이 이런데 웃음이 나옵니까?’ 그렇게 따질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웃음이 나오는 걸 어쩝니까? '상상초월'.
사람들은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한 것으로 기뻐합니다. 사실 이것을 얻기 위해 압살롬은 아버지를 배반하고 반란을 일으킨 것 아닙니까? 압살롬에 동조한 사람들 역시 그렇죠. 모든 위험과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반란을 일으킨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내 창고에 곡식을 그득히 채울 수 있고, 내 마음을 기쁘게 할 새 포도주가 가득하다면 그런 것쯤이야 다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인생이 누려야 할 최고의 기쁨이고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런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참된 기쁨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주님이 내 마음에 심어두신 기쁨입니다.
‘다 잘 될 것이다.’ 그리고는 잠자리에 드는 것이죠.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십니다. 이 부분을 공동번역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누은 즉 마음 편하고 단잠에 잠기오니 야훼여 내가 이렇게 안심하는 것은 다 당신 덕이옵니다.’ 모두 다 하나님 덕입니다.
오늘도 물붓듯이 부으시는 주님의 은혜가 우리와 함께 합니다.
‘다 주님의 덕입니다.’ 그렇게 고백하며 은혜로 살아가길 축원합니다.(*)
by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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