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

[창세기 43장 연구]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까?

코이네 2025. 8. 24. 21:20

창세기 43:16~34 그건 하나님의 은혜 

성경 번역본 비교

창세기 43장 16-34절을 새번역, 공동번역, NRSV로 비교해 볼 때, 의미의 큰 차이는 없으나 몇몇 단어나 표현에서 미묘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 18절:
    • 새번역: “아이고, 우리가 어젯밤에 여기 우리 곡식 자루에 들어 있던 돈 때문에, 우리에게 죄를 씌우려고, 우리를 이리로 끌고 왔구나.”
    • 공동번역: “아이고, 지난번에 우리 자루에 들어 있던 돈 때문에 그가 이제 우리를 잡아 족칠 작정이군.”
    • NRSV: "It must be because of the money, replaced in our sacks the first time, that we have been brought here, so that he may seize us and make slaves of us and take our donkeys." (우리가 여기로 끌려온 것은 처음 우리 자루에 도로 넣어둔 돈 때문임이 틀림없습니다. 그가 우리를 붙잡아 종으로 삼고 우리의 나귀들을 빼앗으려는 것입니다.)
    • 차이점: 새번역의 '죄를 씌우려고'는 공동번역의 '잡아 족칠 작정', NRSV의 'seize us and make slaves of us'(우리를 붙잡아 종으로 삼으려고)와 비교했을 때, '죄'라는 종교적/도덕적 의미가 부각됩니다. 공동번역과 NRSV는 좀 더 구체적인 행위(잡아 족치고, 종으로 삼고)를 묘사합니다.
  • 23절:
    • 새번역: "염려하지 마시오. 안심하시오. 여러분의 하나님, 그리고 여러분 아버지의 하나님이 곡식 자루 속에 보물을 넣어 주신 것이오."
    • 공동번역: "걱정 마시오. 평안하시오. 여러분의 하느님, 그리고 여러분 아버지의 하느님께서 곡식 자루 속에 재물을 넣어주신 것이오."
    • NRSV: "Then he said, “Peace to you, do not be afraid; your God and the God of your father, has given you treasure in your sacks.”" (그가 말하기를 “당신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두려워하지 마시오. 당신들의 하나님, 그리고 당신들 아버지의 하나님께서 당신들의 자루 안에 보물을 주신 것입니다.”)
    • 차이점: 새번역과 공동번역의 '안심하시오'와 '평안하시오'는 NRSV의 'Peace to you, do not be afraid'(당신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두려워하지 마시오)와 유사합니다. 그러나 NRSV의 'Peace to you'(샬롬)는 단순히 '안심'이나 '평안'을 넘어선 관계적 화해와 전반적인 안녕을 기원하는 히브리적 인사말의 뉘앙스를 더 강하게 풍깁니다.

본문 주석 및 분석

창세기 43장 16-34절은 요셉과 그의 형제들이 두 번째로 애굽에 곡식을 사러 온 이야기의 절정 부분입니다. 이 본문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신학적, 문학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 요셉의 마음: 요셉은 베냐민을 본 순간 억눌렀던 감정이 복받쳐 오릅니다(30절). 그는 형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성대한 잔치를 베풉니다. 이는 단순히 곡식 무역상이 베푸는 환대가 아니라, 이전에 자신을 팔아넘겼던 형들에게 베푸는 놀라운 은혜와 용서의 서막입니다. 특히, 그는 베냐민에게 다른 형제들보다 다섯 배나 많은 몫을 줍니다(34절). 이는 베냐민을 특별히 대우하는 동시에, 형들의 반응을 시험하는 행동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요셉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채색 옷을 입었을 때 형들이 질투하고 그를 팔았던 것을 기억하면, 이 '다섯 배의 몫'은 매우 의미심장한 시험입니다.
  2. 형들의 반응: 형들은 처음에 요셉의 집으로 끌려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18절). 그들은 지난번 곡식 자루에 도로 들어 있던 돈 때문에 요셉이 자신들을 노예로 삼으려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그들의 양심에 남아있는 죄의식이 반영된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집에서 환대와 은혜를 경험하면서 그들의 두려움은 점차 누그러집니다. 특히 베냐민에게 주어진 특별 대우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과거와는 다르게 긍정적입니다. 그들은 분노하거나 질투하지 않고 함께 먹고 마시며 기뻐합니다(34절). 이는 형들의 마음이 과거의 악의와 질투에서 벗어나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3. 하나님의 섭리: 이 모든 상황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총리가 되었고, 이제는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고 가족을 구원하는 도구로 사용됩니다. 이 본문에서 요셉의 집 관리인이 '여러분의 하나님'을 언급하는 것(23절)은 이 모든 사건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냅니다. 형들은 돈 때문에 걱정했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물'(재물)을 주신 것입니다.

원어 해석

  • 돈 (כֶּסֶף, 케세프): 18절에 나오는 '돈'은 히브리어로 '케세프'입니다. 이 단어는 '은'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은이 화폐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돈'으로 번역됩니다. 형제들은 이 '돈' 때문에 자신들이 '붙잡혀서'(히브리어: לְהִתְגֹּלֵל, 레히트골렐, '굴러 떨어지다, 덮치다'의 의미) 노예가 될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 보물 (מַטְמוֹן, 마트몬): 23절에 나오는 '보물'은 히브리어로 '마트몬'입니다. 이는 '숨겨진 것' 또는 '숨겨진 재물'을 의미합니다. 관리인은 형제들이 돈을 도로 넣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자루에 '숨겨진 재물'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이는 형들의 죄의식과 두려움을 해소시키는 동시에,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았음을 강조하는 신학적 표현입니다.
  • 음식 몫 (מָנָה, 마나): 34절에 나오는 '몫'은 히브리어로 '마나'입니다. 이는 '할당된 몫'을 의미합니다. 요셉은 베냐민에게 다른 형제들의 '마나'보다 다섯 배나 많은 '마나'를 주었습니다. 이는 당시 고대 근동의 관습에서 존경과 특별한 사랑을 나타내는 행위였습니다. 요셉은 이 행위를 통해 형제들의 마음을 시험하고, 동시에 베냐민에 대한 자신의 깊은 애정을 표현했습니다.

새벽기도 설교: '아, 그건 하나님의 은혜였군요'

사랑하는 새벽기도회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창세기 43장 16절부터 34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과거의 아픔과 두려움이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는 놀라운 순간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요셉의 형제들이 곡식을 사기 위해 두 번째로 애굽에 왔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그들은 요셉이 요구한 대로 막내 베냐민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요셉의 집 관리인은 그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합니다.

1. 두려움에 사로잡힌 형제들

형들은 관리인이 자신들을 요셉의 집으로 데려가려고 하자 극심한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18절 말씀을 한번 보십시오. "아이고, 우리가 어젯밤에 여기 우리 곡식 자루에 들어 있던 돈 때문에, 우리에게 죄를 씌우려고, 우리를 이리로 끌어 왔구나." 그들은 지난번 곡식 자루에 도로 들어 있던 돈 때문에 이제 요셉이 자신들을 붙잡아 노예로 삼으려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이들은 이렇게까지 두려워했을까요? 그들의 마음속에는 깊은 죄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20여 년 전, 자신들의 동생 요셉을 노예로 팔아넘겼습니다. 그 죄는 결코 지워지지 않는 멍에처럼 그들의 삶을 짓눌렀습니다. 이제 자신들이 곡식 자루에 도로 들어있던 돈이라는 '죄' 때문에 똑같이 노예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는 우리를 이처럼 끝없는 두려움과 불안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죄의 그림자는 늘 우리를 따라다니며, 조금만 뜻밖의 일이 생겨도 그것이 죄의 결과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2. 은혜는 두려움을 몰아낸다

하지만 요셉의 집 관리인은 그들의 두려움을 일거에 불식시킵니다. 23절 말씀을 보십시오. “염려하지 마시오. 안심하시오. 여러분의 하나님, 그리고 여러분 아버지의 하나님이 곡식 자루 속에 보물을 넣어 주신 것이오.”

이 관리인은 그들이 두려워하는 돈이 '죄'의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보물'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돈을 도로 넣은 자신들의 행위 때문에 걱정했지만, 사실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가 숨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관리인의 말은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어두운 죄의식을 걷어내고, 그 자리에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깨달음을 심어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에도 이와 같은 순간이 있지 않습니까? 때로는 우리가 겪는 어려움이나 뜻밖의 상황을 보며, '이것이 내가 과거에 저지른 잘못에 대한 벌인가?' 하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또는 스스로의 부족함이나 연약함 때문에 '나는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존재인가?'라며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염려하지 마라. 네가 죄라고 생각하는 것, 네가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 그것조차도 내가 너에게 베푼 은혜의 선물이었단다."

탕자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자신을 품꾼으로 써달라고 간청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를 아들로 인정하고 가장 좋은 옷과 가락지를 끼워주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탕자의 아픔은 아버지의 은혜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죄의식과 두려움에 갇혀 있을 때, 주님은 '내가 너의 죄를 용서했고, 너의 연약함을 품었다'고 말씀하십니다.

3. 시험을 통한 변화

요셉은 형들에게 성대한 잔치를 베풀고, 특히 막내 베냐민에게 다른 형제들보다 다섯 배나 많은 몫을 줍니다. 이는 과거 요셉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할 때 형들이 느꼈던 질투와 미움을 떠올리게 하는 상황입니다. 요셉은 아마도 형들의 마음이 변했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과거 같았으면 형제들은 또다시 분노하고 질투했을 것입니다. "아니, 왜 베냐민에게만 저렇게 잘해주는 거야? 저 아이만 특별 대우 받는군!" 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3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요셉과 함께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였다." 형들은 질투하지 않았습니다. 베냐민이 특별 대우를 받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과거의 죄에 갇혀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그들의 마음은 이미 변화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한 회개는 단순히 잘못을 뉘우치는 것을 넘어, 마음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하면,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죄에 묶여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과거의 아픔과 상처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됩니다. 오히려 그 아픔조차도 하나님의 은혜로 승화시켜 새로운 삶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4. '아, 그건 하나님의 은혜였군요!'

우리의 삶을 돌아봅시다. 우리는 수많은 어려움과 역경을 겪어왔습니다. 때로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며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 아래 있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사업의 실패를 겪으셨습니까? 그것이 죄의 벌이라 생각하셨습니까? 아니요. 하나님은 그 실패를 통해 당신의 교만함을 꺾으시고, 겸손과 인내를 가르쳐주셨을지 모릅니다. 가족과의 갈등으로 힘겨워하십니까? 그것이 내 연약함 때문이라고 자책하셨습니까? 아니요. 하나님은 그 갈등을 통해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하시고, 용서하는 법을 배우게 하셨을지 모릅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모든 어려움, 모든 아픔, 모든 실패는 '죄'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보물'일 수 있습니다. '마트몬'이라는 원어의 의미처럼, 그것들은 우리를 위해 숨겨놓으신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는 모든 죄의식과 두려움을 내려놓읍시다. 그리고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합시다. 우리의 연약함도, 우리의 실수도, 심지어 우리의 과거의 아픔조차도, 하나님은 선하게 바꾸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만드시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이제부터는 '아, 내가 죄를 지어서 벌을 받는구나'가 아니라, '아, 그건 하나님의 은혜였군요!'라고 고백하며 나아갑시다. 이 고백이 우리의 삶을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하고, 새로운 기쁨과 평화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경험하며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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