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 시사

총선 누굴 뽑을 것인가? 후보를 보기 전에 먼저 자기 마음을 보자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2. 29.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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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지도자관, 노블리스 오블리쥬의 전통


영국인들이 가장 애용하는 말인 젠틀맨은 ‘절제된 사람’이란 뜻이다. 이 말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영국인들의 기본 매너의 핵심은 ‘분수를 넘는 일을 삼가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청교도 혁명 때 기초가 다져진 올리버 크롬웰의 철저한 자기 절제 정신이 오늘날 영국인들의 생활과 행동 양식의 기반이 된 것이다. 그래서 확연한 계급사회이면서도 자기 신분보다 더 높은 신분인양 위장하는 과시주의는 별로 없고, 각각 자기가 속한 계층의 생활양식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그 스타일을 유지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또한 좋은 결과를 내는 것 이상으로 좋은 과정과 고상한 스타일을 통해 그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을 중시한다고 한다. 결과만 좋다고 해서 모든 것을 합리화하거나 미화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생활 방식 속에서 자연스럽게 젠틀맨의 매너가 형성되었고, 이런 매너와 외형, 전통, 절제를 강조하는 영국형 리더십 스타일은 미국의 명문 사립학교의 교육방식에 소리 없이 배어있어 상류사회를 형성하는 문화적 틀이 된 것이다. 

또한 영국식 리더십 스타일은 사회에 대한 강한 책임감을 수반한다. 자신의 처지에 걸맞는 책임을 질 때 자신의 권리도 보장받는 다는 것이다. 특히 상류층으로 갈수록 우리의 관점에서 보기에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책임을 행하고 있다. 이것을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즉 책임이 없으면 권리도 없다는 귀족의 의무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 귀족의 의무에 대해서는 상류층의 사회적 지배를 정당화시키는 수단이라는 비판도 있다. 사실 영국의 귀족들이 과거에 비해 누려 왔던 특권들이 부분적으로 약화됐다 할지라도 여전히 경제적 부의 상당 부분을 소유한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상위 1% 집단이 전체 부의 30% 정도를 소유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경제적 부만이 아니라 교육과 인맥에서 일반 국민과 뚜렷한 차별성을 가지며, 자기 집단 안에서 배우자를 찾는 통혼 전략을 통해 그 인맥망을 강화하여 자신들의 입지를 굳건히 해 왔던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행태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윤리적 덕목과 부의 사회적 환원은 필수적인 전략일 수밖에 없고, 이것이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전통을 이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이러한 노력은 영국 사회를 분열 없이 통합시키켜, 오늘의 영국사회를 이루는 근간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말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단지 생색내기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 명문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대학을 다니던 청년들의 3분의1 이상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고, 1982년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 왕실 앤드류 왕자는 조종사로 참전했다. 그리고 영국 사회를 지키기 위해 희생이 필요할 때 그들은 언제나 일반 국민들에 앞서 그들의 의무를 실천해왔기에 국민들의 그들이 누리는 특권을 누릴만하다고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어떤가? 해방 후 급속한 산업화의 결과로 현대식 상류층 집단이 형성되었지만, 우리나라의 상류층은 '오블리제 없는 노블레스', 즉 '의무를 망각한 신분 집단'에 가까우며, `한국식' 천민문화를 형성하였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먼저 해방 후 친일파에 대한 문제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것이 이 천민문화를 이루는데 가장 주요한 역할을 했다. 나라를 팔아먹고 동족의 피를 빨아서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유지한 것이 정당화되는 마당에 애국심과 사회적 책임이 발 디딜 수가 있었겠는가?

성실하게 땀 흘려 일한 사람이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정권에 빌붙어 각종 특혜와 수혜를 얻어야 기업이 성장하는 풍토를 만들다 보니 우리의 상류층은 한 마디로 온갖 협잡꾼들이 난무하게 된 것이다. 사회적인 지탄을 받아야 할 이들이 도리어 지도자가 되고 상류층을 이루다 보니, 우리의 사회가 지금의 모습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집약체가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국민들에게 왜 이명박 대통령을 뽑았는가라고 물어보라.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지만 경제를 살리기 위해 경제전문가를 뽑았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경제전문가라고 생각한 그의 살아온 삶의 여정을 보면, 그를 결코 훌륭한 인생을 산 사람이며, 성실하고 정직하게 기업운영을 하여 성공한 인물로 보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 선거 전에 까발려진 그의 행적은 TV 드라마에서 성공한 경영인으로 미화된 그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실망을 감출 수 없을 정도로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생이었다.

그럼에도 왜 국민들은 그를 뽑았는가? 다른 이유도 많이 있겠지만 이미 우리 국민들의 삶의 가치관이 그와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상류층들에 의해 형성된 이 천민 문화는 이제 상류층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를 깊이 내려버린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 경제만 살리면 되며, 3만불 벌고 쓰는 사회를 만들면 모든 것을 용서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 사회를 이렇게 병들게 한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잘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우리가 이 말을 사용하는 출처를 살펴보면 대부분 경제적으로 부유한 것을 잘산다고 표현한다. 이제 이 말을 말이 갖고 있는 본디 의미를 살려서 제대로 사용해야 한다. 잘산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것의 표현이 아니라 훌륭하게 사는 것의 표현이 되어야 한다. 돈이 많은 것은 단지 부자이지 잘사는 사람이 아니다. 이 말을 이제는 확실하게 구분해야 한다. 그래서 잘 사라는 사람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영국의 귀족들처럼 그들의 특권적인 삶을 당연하다고 인정받을 만큼 제대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자신이 처한 삶의 현장에서 땀흘리며 그 책임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붙여지는 말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의 변화를 이루어야 할 전환점에 서있다고 생각한다. 총선이 다가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시대의 동량이 되겠다고 자처하지만, 어떤 사람을 선출하느냐는 국민들의 의식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국민들이 무조건 돈만 많이 벌면 된다는 천박한 생각, 돈과 출세의 우상을 버린다면 좀 더 훌륭한 지도자가 뽑혀질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직하고 훌륭하게 살고자 한다면 지금 현실이 어려워도 희망이 있다는 사실이다. 


박하사탕

박하사탕의 한 장면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는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시편15편)

 

by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