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 교육

기독교는 고 노무현대통령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는가?

코이네 2010. 3. 27.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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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기독교를 대표하는 두 정론지를 뽑으라면 ‘기독교 사상’과 ‘목회와 신학’을 들 수 있다. 이 둘 모두 한국의 목사들이 가장 많이 찾는 전문신학 잡지이며, 한국 교단의 진보와 보수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말할 수 있다. 1957년에 창간된 ‘기독교 사상’이 좀 더 진보성향이라면, 1988년에 창간된 ‘목회와 신학’은 보수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를 정치적인 성향으로 크게 진보와 보수로 그 성격을 구분한다고 하면, 공교롭게도 한국교회의 신학적인 성향도 이 정치적 성향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이전 고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 소식은 기독교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그의 죽음에 관한 태도 역시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그 평가가 극명하게 갈렸다. 보수측에서는 노무현대통령을 비관주의자로 몰았으며, 자살이나 하는 책임감 없는 지도자로 평가하며, 비판하였다. 그러나 진보측에서는 그 평가를 달리하고 있다. ‘기독교 사상’은 2009년 7월호에 ‘노무현의 삶과 죽음, 무엇을 말하는가’ 라는 주제로 노무현이라는 인물에 대한 특집호를 발간하였다. 이글은 여기에 실린 내용을 통해 기독교에서 노무현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먼저 그 내용을 짚어보고, 인물에 대한 연구를 어떤 방식으로 전개하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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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특집호에는 총 5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 그 중 세편에 대한 내용을 고찰하고자 한다. 첫 내용은 김민웅의 ‘국민에게 두 번 선출된 “서민 대통령”의 빛나는 유산’이며, 둘째 글은 이은선의 ‘사람의 아들 노무현, 부활하다’ 이고, 세 번째는 정수복의 ‘노무현의 삶과 죽음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의미’이다.

  1) 김민웅의 ‘국민에게 두 번 선출된 서민 대통령의 빛나는 유산’에서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호민관 노무현의 부활”이라 하여, 그의 삶을 호민관으로 대변한다. 호민관이란 고대 로마의 공화정 시대에 기득권의 폭력과 탐욕으로부터 민중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 선출된 책임자로, 그 호민관적 지도자 상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기점으로 해서 만들어진 졌다고 평가한다. 그는 노무현의 죽음에 대해 ‘전직 대통령 노무현의 인간적 정치적 한계는 그의 죽음으로 일거에 돌파되었고, 노무현이라는 존재와 그 이름 안에 담긴 소중한 유산만이 남아 우리의 공동체적 의지와 실천의 힘이 되고 있는 중이라고 평한다. 그러면서 그의 죽음은 비탄과 슬픔으로 무너져 내려 앉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진보를 감당하는 이들을 죽여 온 자들을 도리어 생명의 기력을 충만하게 뿜어내면서 엄청난 기세로 압도해버리는 세상을 완성시켜나가는 것이 곧 남은 자들의 의무와 권리가 된다며, 호민관과 노무현의 부활이라는 이 발견은 우리 모두에게 바로 그러한 책무를 일깨우고 있는 것이며, 이것이 중심이 될 때 그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것이라 말한다.

두 번째 단락에서 그는 로마의 호민관인 카이사르와 그라쿠스 형제를 들며 여기에 노무현을 대입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죽음을 기독교 신앙과 연결시켜 “호민관 노무현의 부활은 이 무대를 지켜내고 새롭게 구축해야할 것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라고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부활신앙의 고백과 신앙의 사회적 확산이 요구된다며, 그 부활신앙의 고백이란 잔혹한 폭력의 시대에 이를 이겨낼 변방의 힘이 새로운 역사의 주체가 되는 것이라 하였다. 바로 예수 운동은 변방의 갈릴리가 자신을 중심이라고 여기며 자기 힘을 과시했던 로마와 예루살렘 주도의 역사를 뒤집은 사건인 것처럼, 호민관 노무현의 부활이란 노무현에 대한 사후 미화작업이 아니라 이 시대가 망각하고 상실하고 있는 가치의 재발견과 복구의 뜻을 지닌 사건으로 평하였다. 그리고 이 사회의 기득권을 지닌 주류 세력이 비 주류적 삶을 능멸하고 짓밟는 현실을 반전시키는 것, 그래서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곧 부활의 역사성을 우리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관철해나가는 길이라며, 부활신앙은 추상적인 관념의 체계가 아니라 이렇게 생생한 실천력을 가진 사회적 능력이라는 말로 글을 맺고 있다.

  2) 이은선의 ‘사람의 아들 노무현, 부활하다’에서

이은선은 시작하는 말에서 전태일 평전에 대해 장기표 선생이 한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은 죽음에 대한 해석을 하고 있다. ‘우리 삶에는 죽음으로써라도 전해주고자 하는 선한 꿈과 진실이 있으며, 그것을 다시 이어주고 계속하고자 주을 것 같이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며,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또 다른 부활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 그는 노무현의 한국 현대사의 이해를 소개하며, “역사의 정통성에 대한 강한 집착”이라고 노대통령을 평가하는 말에 대해 그의 인격적 특성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너그럽지 못한 한국사회가 그를 죽음으로 몰고갔다며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이어 정치가와 경제 CEO의 차이는 무엇인가라며 현 대통령과 노대통령의 차이를 말하며, 패배자들을 챙겨서 함께 가는 것을 정치가의 핵심 과제로 보는 그는 지도자의 역사의식과 철학, 멀리 바라볼 줄 아는 통찰력과 판단력을 매우 중하게 여기는 사람으로 평가한다. 그런 그를 이 사회는 죽음과 절망으로 몰고갈 정도로 잔인하고, 동정심이 없으며, 연민도 없고, 불신만 만연해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다음으로 그의 ‘자살’에 논하며, 정신의 존재인 인간이기에 자신의 목숨과 생명까지도 ‘No’ 할 수 있는 힘이 있으며, 이것은 자기부정과 자기희생으로 해석해야 한다며, 노 대통령의 죽음을 인간적 자기부정의 용기로 보고 있다. 예수의 삶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행위 자체가 자살행위에 다름 없다며, 예수의 죽음과 부활처럼 노대통령 역시 그렇게 국민들의 가슴속에 부활했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이어 노무현의 신앙과 종교에 대해 설명하기를 그를 보편종교에 있어서 진지한 구도자의 길을 걸은 사람으로 평가한다.

마지막으로 마무리하는 글에는 그는 노무현의 상징은 머지않아 “아시아 민주주의의 표준”이 될 것이며, “정치문화의 새로운 한류”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리고 요한복음 14:12-14절의 말씀으로 글을 끝내고 있다.

  3) 정수복의 ‘노무현의 삶과 죽음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의미’에서

그는 시작을 미로의 메아리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글에서 자살에 대한 여러 이해를 살피며, 모든 자살에도 죽은 사람이 자신의 죽음에 붙인 고유한 의미가 있고, 자살한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그 사람의 입장에 서서 그의 죽음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내고 그 죽음의 뜻을 존중하는 것이라는 말로 글을 전개한다. 그리고 프랑스의 이상주의자들의 자살 사건을 짚어보며 노무현의 죽음을 이상주의자의 죽음과 연결시킨다. 그를 어설픈 현실주의자였고, 확고한 이상주의자로 평하며, 노무현을 자살로 이끈 절망은 시인 박노해의 표현대로 ‘정직한 절망’이엇고, ‘목숨바쳐 부끄러움 빛내 바보’라고 하였다.

이후 그는 한국사회의 갈등구조를 짚어보며 노대통령의 죽음을 타살로 보는 견해에 대해 해석하고 있다. 그는 노대통령을 권위주의 타파와 연고주의의 타파, 갈등을 통해 한국사회를 개혁하려는 사람으로 그리고 수단방법중심주의를 깨고자 노력한 사람, 이중 규범주의를 벗어나고자 하는 인물로 묘사하며, 자신에게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보이지 않는 비판에 대해 죽음으로 맞섰다고 하였다. 그리고 마무리로 한국민주주의 미래를 말하며, 한국의 새로운 개혁세력은 시민들의 정치적 상상력을 활성화하고, 대안 정치세력을 형성하면서 노동정치, 시민정치, 여성정치, 녹색정치, 풀뿌리 정치를 포괄하는 종합적 청사진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글의 구성

 먼저 김민웅의 글을 보면,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사회적 현상을 호민관의 부활과 빗대어 이야기하며, 부활에 대한 정치사회적 의미를 찾아내고 있다. 그리고 노무현의 죽음을 호민관의 소명을 감당하다 의로운 죽음을 당한 이로 해석하며, 그의 죽음이 갖는 가치를 민주주의의 발전에 두고 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사회적 반응에 주의하고 있으며, 이를 신학적으로 재해석하며, 신앙의 관점에서 말하는 부활이 아니라 사회적 변혁으로서의 부활을 말하며 그의 삶과 죽음을 논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이은선의 글은 노무현의 죽음을 전태일과 빗대어 해석함으로 그의 죽음을 용기있는 죽음으로 글을 시작한다. 그리고 한국 현대사에서 노무현의 행적을 좇아가는데, 그가 자살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상황을 동시에 고발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자살을 ‘자기부정, 자기희생’이라는 관점에서 예수의 죽음과 동일시하는 신학화 작업을 한 후 그의 죽음이 갖는 역사적 가치를 논하며 글을 맺고 있다.

셋째, 정수복은 이상주의자의 자살에 관심을 두며 노무현의 죽음을 그들과 동일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상주의자로서의 노무현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가며, 그의 개혁작업에 집중한다. 마지막으로 그의 죽음을 통한 민주주의 회복에 대한 촉구로 글을 마친다. 이 글은 위 두 편의 글과 뚜렷한 차이가 있는데, 바로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신학화작업이 없다는 것이다.

세 글은 모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말로 글을 시작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당시 그의 죽음이 갖는 사회적 측면을 고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셋 다 공통적으로 노대통령의 죽음을 일반적인 자살과는 뚜렷하게 구분하며, 나름대로의 해석 작업을 하고 있다. 둘은 신학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있고, 또 하나는 이상주의자의 죽음과 동일시한다. 그리고 세 글 모두 정치인 노무현의 행적에 집중하며, 그가 살아온 길은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한 개혁의 길이었으며, 그 과정에 죽음이라는 피치 못할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이다. 앞선 두 글은 그 죽음을 예수님의 죽음과 동일시하는 신학적 작업을 하였고, 마지막 글은 이상주의자들의 의로우면서도 안타까운 죽음으로 재해석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은 모두 민주주의의 회복을 촉구하거나 전망을 하면서 글을 맺고 있다.

    나가며

 위 글들은 故노무현 대통령이라는 비기독교인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에서의 평가라는데 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은 기독교계에서 그리 활발한 작업이 아니다 보니 그 글을 전개하는데 있어, 기존 기독교적 구성과는 다른 구성을 보이고 있으며, 글을 전개함에 있어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이는 부분도 있다.

글을 전개함에 가장 큰 어려움은 기독교에서 ‘자살’이라는 것을 구원받지 못하는 죄라고 터부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죽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 글은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사회적 반응을 부활과 연결시켜 이해하지만 사실 많은 무리가 따른 전개라 할 수 있다. 특히 기독교에서는 인간을 미화시키지 않는데 반해, 이 글에서는 그의 삶과 죽음을 신학적으로 정당화하려고 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일반 기독교인의 삶과 그의 사상에 대해 글을 전개할 때는 대부분 구원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그의 신앙고백을 중심으로 그의 소명과 그의 행적 그리고 사상에 대해 글을 전개하는데 반해, 비기독교인인 노무현 대통령을 말할 때, 그의 구원이라는 부분이 빠져야 하고, 이에 따른 소명이 사라지기 때문에 일반적인 글의 전개와는 조금은 차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기독교 내적인 차원에서 상당히 고무적인 것이다. 기독교는 이때까지 너무 구원론에 입각하여, 그 연구의 폭을 스스로 한정해왔는데, 이런 시도를 통해 좀 더 보편적인 기독교를 지향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과 구별되어 스스로를 분리한 기독교가 아니라 세상 속에 들어와 세상과 함께 하는 기독교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김민웅, 성공회대학교 교수, 외국어대 정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델라웨어대학 정치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뉴욕의 유니온 신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마쳤으며, 현재 성공회신학대학교 사회정책대학원 교수로 있다. 저서로 “패권시대의 논리” 등이 있다.

이은선, 세종대학교 교수, 불문학 전공, 스위스 바젤대학에서 신학, 성균관대에서 한국철학을 공부.‘한국, 여성, 종교인’의 시각으로 유교와 기독교 페미니즘과 교육의 문제를 살피는 것을 주로 하고 있다. 저서로는 “포스트 모던 시대의 한국 여성신학”이 있다.

정수복, 사회과학고등연구원 객원교수,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사회학 석사,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사회학 박사, 저서로는 “의미세계와 사회운동”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