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창12:1] 내가 보여 줄 땅으로 떠나라

코이네 2015. 11. 3.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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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여줄 땅으로 가라

본문 : 창세기 12장 1절 - 9절

2015. 11.1. 소토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한 스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생은 모르는 마음으로 떠나는 긴 여행이다.” 스님의 말이지만 참 마음에 와닿는 글귀라 기억해두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떠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난 머물고 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싫든 좋든 우리는 떠나고 있습니다. 어제라는 시간에서 떠나고 있고, 미래라는 시간을 향해 걸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앞에 놓일 미래가 무엇인지 모르는 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네가 태어나고 자란 땅, 네 친족과 네 아버지의 땅을 떠나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 이 말씀을 듣고 아브라함은 자신의 가족과 자신을 따라나서는 조카 롯의 가족을 데리고 주님이 지시하는 땅을 향해 무작정 길을 나서게 됩니다. 그 때의 나이가 75세였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보면서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일방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아브라함이 듣고 순종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말씀을 자세히 읽으면 하나님의 일방적인 명령이 아닌 아브라함과의 대화를 볼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합니다. “떠나라”

아브라함이 대답합니다. “왜요?”

하나님이 대답하십니다. “너로 큰 민족을 이루려는 계획을 했다”

아브라함의 질문 “그래서요?”

하나님이 대답하십니다. “너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

아브라함의 질문 “어떻게요?”

하나님의 대답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겐 저주를 내리겠다”

아브라함의 질문 “그러시는 목적이 있을실텐데요?”

하나님의 대답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해 복을 받게 될 것이다”

아브라함의 대답 “그렇다면 두 말 않고 가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부르시고 본토 친척 아비 집만 떠나 지시할 땅으로 가면, ① 큰 민족을 이루고 ② 네게 복을 주고 ③ 네 이름을 창대케 해주고 ④너는 복의 근원이 되고 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주고 ⑥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하고 ⑦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해 복을 받으리라 그렇게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을 이를 듣고 떠난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그 막막한 길을 무턱대고 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무턱대고 내모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식으로 그저 무대뽀로 행동하면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믿음이 아니라 무모한 행동입니다.

 

여러분, 믿음은 우리가 그렇게 믿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행동이 있습니다. 우리를 믿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를 믿음 있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듣고 이해하고, 훈련하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묻지 않고 그냥 믿는다는 것은 맹신이나 광신이지 믿음이 아닙니다. 흔히 사람들은 내 마음을 믿는다고 합니다. 그건 신앙이 아니라 마인드 콘트롤입니다. 신앙은 내 마음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을 주시는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가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대화하시고 가르치시고, 훈련하시며, 우리가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십니다. 그리고 그 믿음에 따른 결실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맺어야 할 결실 - “떠나라”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맺어야 할 결실은 무엇입니까? 바로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을 통해 복을 받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며, 하나님께로 돌아와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민족을 구원하는 사명이 아브라함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 사명을 감당하려면 먼저 행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떠나라”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그가 사는 곳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왜 떠나라고 하실까요? 그건 지금 아브라함이 살고 있는 곳은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는데 부적당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좋은 곳을 물색해두었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고 이곳으로 오길 바라십니다. 떠나야 약속한 땅에 갈 수 있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데 떠날 때 떠나더라도 어떻게 떠날 수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합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어떻게 우르를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고, 떠날 때 일어나는 하나님의 약속과 떠날 때 얻을 수 있는 결실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많은 자리에서 떠나는 삶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그 목적지를 향해 떠나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의 명령 없이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면 한 스님의 말처럼 우리는 모르는 마음으로 떠나는 긴 여행이 되는 것입니다. 목적지가 어딘지 알지 못한 채 그저 시간에 세월에 내 인생을 맡기는 삶을 사는 것이죠.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모르는 마음으로 길을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 떠나는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교회에 처음 나오면 대부분 예배 시간에 말씀을 들을 때 좁니다. 듣고는 싶은데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어느 날 설교 말씀이 귀에 들어오고 ‘아멘’하는 소리가 납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지요.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귀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가 열렸기 때문에 들리는 것이고, 아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들을 수 있도록 우리의 귀를 열어주십니다.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말귀를 열어주시는 성령님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 말씀을 들으려고 노력하며, 그 말씀이 점점 명확하게 들립니다. 듣고 싶어하는 영적인 갈증이 느껴지고, 듣기 위한 몸부림을 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 듣기 시작하면서부터 들으려고 하질 않습니다. 난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고 불평하지만 실제 가만히 그 사람을 살펴보면 듣고 싶은 의지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기 생각에 골몰해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뭔가 자꾸 감당하기 힘든 것을 요구하실까봐 걱정이 되기 시작합니다.

 

하루는 새벽에 제 서재에서 큐티하고 있는데, 아내가 들어오더니 찬송가 585(384)장을 부르면서 응답받았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찬송을 같이 부르자고 합니다. 솔직히 그말에 섬뜩했습니다. 그 찬송의 유래를 아느냐? 루터가 재판받기 하루 전 그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결단의 찬송인데, 그 가사 중에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나는 그런 일도 감수하겠다는 결단입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감당할 수 있겠나? 그랬더니 그래도 하나님의 응답이니 불러야한답니다. 그래서 같이 불렀는데 얼마나 불안한지.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빨리 벗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느냐 하면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과 대화하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군대의 돌격대장이 아닙니다. 조폭 두목도 아닙니다. 그저 물불 가리지 않고 무조건 돌격을 외치지 않습니다. 말대로 하지 않는다고 있는 저주 없는 저주 다 퍼부어대는 그런 잔악무도한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대화하길 원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대화를 통해 이해하고 순종하길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 생길 때까지 하나님께 물어봐야 합니다. “하나님 왜요? 어떻게요? 그래서요? 그러면요?” 라고 물어보세요. 하나님과 그렇게 대화하면 하나님이 어떻게 명령하시는지 알아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의견이나 처지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서도 여러분의 생각과 하나님의 뜻이 다르다면 그땐 못이기는 척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세요.

 

어느 자매가 이런 기도제목을 말하더라구요. 결혼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주님 저는 남자보는 눈이 없습니다. 제게 정말 잘 맞는 남자를 주님이 골라주세요.” 참 지혜로운 기도입니다. 여러분의 안목보다 하나님의 안목이 훨씬 훌륭하다는 사실을 믿으시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어디서 어디로 떠나야 하는가?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가야합니다. 아브라함은 길을 제대로 떠났습니다. 그는 가족들을 이끌고 그 땅으로 미련 없이 갔습니다. 갔더니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가십니다.

 

떠나야 하는데 못 떠나는 세 가지의 걸림돌이 있습니다.

 

첫째는 환경입니다. 그 당시 나이가 75세였습니다. 이 나이에 내가 무슨? 그러면 못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보다 자신의 처지를 더 내세우면 못 떠납니다. 내 나이가 75세이지만 난 충분히 갈 수 있어. 왜냐하면 하나님이 시키신 일이니까 하나님이 책임지실 것이다. 하나님에게 불가능은 없습니다.

 

둘째는 갈대아 우르에 대한 미련입니다. 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니 가기가 싫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미련을 두는 것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더 멋지고 풍성하고 훌륭하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이것을 믿고 떠났습니다.

 

셋째는 미지의 땅에 대한 불신입니다. 여기보다 거기가 정말 좋을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듣기 시작한 때부터 하나님께서 무얼 어떻게 하실까 자꾸 기대를 갖고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 지금 주님께서 여러분에 오셔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그 비전을 주시길 바랍니다. 지금 이 자리에 안주하지 말고, 좀 더 훌륭해질 수 있는 믿음의 길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합시다. 하나님, 저에게도 아브라함의 비전을 주옵소서.

 

아브라함을 보면 하나님에게는 한 사람이 참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순종하는 한 사람, 바로 그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시작되고 마침내 이루어지는 것이죠. 그래서 신앙은 남을 바라보고 남탓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명은 다른 사람들에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에게 하시는 것이죠. 남의 일처럼 관망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사명으로 이해하고 행동하는 바로 그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오늘 간절히 기도합시다. 주님 나에게도 아브라함의 비전과 약속을 주옵소서. 저를 통해 많은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고, 주님께 복받게 하옵소서. 저를 복이 되게 하옵소서. (*)

 

 

 

 


by 코이네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