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 신앙

신앙때문에 가족을 버렸다는 전도사의 때늦은 후회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13.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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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과 조상제사 그리고 가족의 갈등, 그 해결책은?

 
평소 절친하게 지내는 한 전도사님이 자신이 처음 기독교 신앙을 가진 때를 이야기 하면서 이런 질문을 해왔다. “처음 신앙을 가졌을 때는 가족들의 핍박이 심하여 어떻게 하든 강경한 자세로 버텨서 겨우 신앙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혼하여 분가한 후에는 가족들과 종교적인 문제로 대립을 많이 겪었습니다. 특히 제사 때에는 절하는 문제로 서로 신경전을 벌이다 싸우는 경우도 많아 자연 가기가 꺼려지고, 그러다보니 요즘은 아예 가지 않은 지 오래되었고, 가족들도 올 것을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결혼도 대부분 주일에 가지기 때문에 갈 형편이 못되다 보니 가족들에게서 완전히 왕따가 되었습니다. 저는 저의 가족들을 사랑하며 매일 한 분 한 분을 위해 기도하지만 그럴 때마다 가슴이 끊어지듯 마음이 아픕니다. 어떻게 해야 다시 관계를 회복하고, 저도 가족의 일원으로 도리를 다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위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대부분 겪고 있는 문제들이며, 기독교인 식구를 둔 가정이라면 대부분 안고 있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갈등을 교회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서 많은 비난과 오해를 사고 있는 현실이다. 어떻게 하면 될까? 필자도 역시 위 전도사님과 같은 처지에서 신앙생활을 하였기에 그 고통을 십분 이해할 수 있어 마치 내 문제라고 생각하고, 성경을 통해 기도하며 그 답을 찾아보았다. 
 

1. 왜 기독교 신앙을 가지면 가족들은 반감을 가지며 반대할까?

일단은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았습니다. 신앙은 자유인데, 왜 유독 기독교 신앙을 가지면 그리 크게 반감을 가지고 핍박하는가?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 가장 극복하기 힘든 것이 이유는 모르지만 기독교를 믿으면 가정의 불화와 재앙을 당한다는 이유 없는 불안이 있다. 그래서 조상신이 노한다든지, 액운을 불러왔다든지, 재앙거리를 몰고 왔다며 혹시나 신변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조바심을 내며 불안해하기에 반대하는 것다.
 
그 외에는 이단 종교들이 행해왔던 반사회적인 행동들이 매스컴에서 이를 마치 기독교가 그런 것인 양 잘못 보도를 한 영향과 기독교인들이 일상생활에서 모범이 되지 못한 것과 종교생활에 심취하다 보니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을 등한시하여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을 주변에서 종종 보기 때문이다. 사실도 있고, 오해도 있다. 일단 가족과 불화가 생겼다면 내가 신앙 때문에 선한 핍박을 받는다며 신앙적인 결의를 다질 수도 있겠지만 왜 반대하는지 그 원인을 잘 살펴 어떻게 하든지 이 원인을 해결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2. 제사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전 어떤 분이 자신은 이렇게 제사문제를 해결한다며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려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은 글이 있었다. 필자도 그분의 지혜를 높이 산다. 그리고 필자도 그런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그것은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가족들이 공통으로 추구해야 할 것과 이를 행하는 방식의 다양성을 찾아본 것이다.

공통적인 것은 바로 효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돌아가신 조상들에 대한 효심이다. 기독교인이든 타종교인이든 이 효심에 대해서는 모두가 같은 마음이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표현하는가의 문제이다. 유교와 불교는 그들의 방식대로, 기독교는 기독교식대로 표현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이를 두고 너희는 왜 그러느냐고 따지며 다투기보다는 서로의 방식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것이다.  

필자의 가정 역시 가족들 모두가 신앙인이 아니다. 부모님은 몇 년 전에 신앙을 가지셨지만 아직 신앙을 가지지 않는 이도 있다. 우리집에선 일단 제사상을 차려놓고 유교방식대로 제사를 지낼 분들이 먼저 예식을 행한다. 필자는 그분들이 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며 혹 도울 것이 있으면 도와준다. 그렇게 제사를 마치면 이제는 가족들이 모두 모여서 기독교예식을 행한다. 교회 다니지 않는 분들도 예식에 참여하실 수 있도록 순서지를 마련해서 함께 기도하고 찬송하고 축복한다. 그리고 다 마친 후에는 맛있게 식사를 하고, 서로를 축복하는 시간을 가진다. 

어떤 분들은 신앙의 순결함을 버리고 혼합적인 모습으로 타협했다고 비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분들은 두 가지를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첫째 신앙은 강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전도를 하는 것은 “무찌르자 공산군!” 같이 믿지 않는 이들을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그러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들을 섬기며,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기쁨과 행복을 전하여 그들 스스로 성령에 감동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가 제사와 같은 문제로 갈등을 일으키며, 무조건 우리 방식대로 해야 한다고 고집한다고 해서 그들이 그 길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갈등의 골이 더 깊어져서 마침내 가족 간에 원수가 되어버린다. 이것은 마귀가 그렇게도 원하는 결과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둘째는 이를 율법적으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관점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제사가 우상숭배이기 때문에 계명을 저버리는 배교적인 행위라고 한다면, 가족 간의 불화 역시 계명을 위반하는 일이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가족 간에 불화하였을 때에는 서로 화해하기 전에는 예배도 드리지 말라고 하지 않는가? 성경에도 말하듯이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율법적인 태도로는 온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없고, 도리어 배타적이고 자기모순에 빠지는 신앙을 하게 된다.

 

3. 왜 주일에 결혼하냐고?

제사 문제만큼 기독교인들에게 힘든 것은 주일에 결혼과 같은 가족 행사를 가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주일을 성수하는 것은 신앙의 기본이다. 어떤 이유에서도 주일 예배를 포기하게 할 수는 없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생존의 문제와 결부된다. 이는 율법적인 관점이 아니라 신앙생활의 영적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타종교인도 기독교인들의 이러한 특징을 넓게 이해를 좀 해주길 바란다. 그러면 좀 더 서로의 관계가 수월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주일 성수 때문에 가족의 도리를 저버려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주일에 꼭 가기 힘들면 먼저 양해를 구하고, 식전이나 후에 꼭 찾아가서 축하를 해야 한다. 부조를 해야 한다면 평소보다 미안한 마음을 좀 더 보태서 해야 섭섭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리게 할 것이다. 아니면 요즘 각 교회마다 주일 예배 시간이 다양하니 이를 조절해볼 수도 있고, 먼 외지에서 한다면 가까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도 저도 안 되어 꼭 가야만 하는 사정이라면 참석하되, 개인적인 경건의 시간을 가진다든지, 가정 예배를 드린다든지 해서 자신의 신앙을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기독교인으로서 올바르게 살려면 더욱 부지런해져야 하며, 마음을 더 넓게 쓰야 한다. 기독교인이라는 타이틀이 자신의 생활의 게으름을 합리화시키거나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방편으로 여긴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도리어 기독교인은 가정과 사회에 대해 더 큰 의무와 책임이 있음을 이지 않아야 한다.

 

4.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그 전도사님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 마지막에 그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제가 가족과 등을 져서 신앙은 지켰지만, 이제 이 가족을 누가 전도합니까?” 그러면서 사태가 이렇게 악화되기 전에 방향을 수정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였다. 신앙도 가족도 둘 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인데 라며 눈물을 흘렸다. 그분의 손을 잡고 뜨겁게 함께 기도하였다.  

“하나님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해주십시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우리 전도사님이 먼저 가족들에게 다가서도록 용기를 주시고,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이제 이전에 하지 못한 사랑까지 다 합하여 더욱 뜨겁고 깊이 사랑하는 가족이 되도록 도와주옵소서”

 

by 코이네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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