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성령, 권능, 그리고 증인
성령의 사람에게는 몇 가지 뚜렷한 특징이 나타납니다. 첫째, 얼굴 표정이 밝습니다. 사도행전 6장 15절에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내면의 성령 충만함이 외모로 드러나는 현상입니다. 만약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면, 그것은 성령의 지배를 벗어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둘째,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순절을 경험한 베드로는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사도행전 4:20)고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보혜사 성령의 도우심으로 인해 성령의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용감해지고 당당해집니다.
셋째, 인간관계가 부드럽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 나오는 성령의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입니다. 성령이 내주하면 거친 감정이 사라지고, 사람을 대할 때 편안함과 평안을 느끼게 합니다. 성령의 사람은 행위의 열매로써 그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사도행전은 신앙생활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는 중요한 책입니다. 만약 사도행전을 읽고 이해하기 어렵다면, 당신의 신앙생활에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전체를 요약하면 "오직 성령"이라는 한마디로 압축됩니다. 제자들이 "주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되리라"고 답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성령, 권능, 증인 이 세 가지입니다.
1. 성령을 충만히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이 시대가 성령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성삼위 하나님은 시대마다 주된 사역이 달랐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성부 하나님께서 땅을 정복하라는 사역을 주도하셨고(창세기 1:26-28), 신약시대에는 성자 예수님께서 구원 사역을 완성하시고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게 하셨습니다(마태복음 28:18-20). 마지막 교회 시대인 지금은 성령으로 권능을 받아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하셨습니다(사도행전 1:8). 그러므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성령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성령 아니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교회의 원동력이 성령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다음 사역을 성령께 넘겨주셨습니다.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교회를 세우는 원동력이 되셨습니다. 성령 충만한 초대교회는 환경에 적절히 대처하는 '자동 온도 조절 장치'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현대 교회는 환경의 변화에 무기력하게 대처하는 '한란계'에 불과합니다. 인간 중심의 교회로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성령의 지배 아래 움직일 때 비로소 사탄의 공작에 맞설 힘을 얻게 됩니다.
세 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성령의 사람을 붙들고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고 불릴 만큼 성령에 의해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령의 지배 아래 있는 자만이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성령을 속인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용납하지 않았고, 성령 충만한 스데반을 통해 복음이 유대의 경계를 넘어 확장되었습니다. 또한 성령의 인도에 순종한 바울을 통해 복음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주님은 이 시대에도 성령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지금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성령입니다.
2. 성령의 권능으로 사탄의 권세를 이기는 일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아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성령이 우리에게 사탄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권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복음이 전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여러 장벽을 넘어야 했습니다.
첫째는 유대의 바리새 사상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 위에 자신들의 유전을 덧씌워 메시야 사상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던 사울을 다메섹에서 깨뜨리심으로써 이 장벽을 허무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바울은 바리새 사상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복음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둘째는 헬라 철학 사상입니다. 유대 바리새 사상이 정복되자 복음은 순식간에 아시아에 상륙했습니다. 바울은 2차 전도여행 때 성령의 강권적인 인도하심을 받아 마게도냐 환상을 보고, 헬라 철학의 중심지인 고린도와 아덴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헬라 철학을 정복하지 않고는 세계 복음화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로마의 정치 권력입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로마 권력의 장벽을 넘지 않고는 복음의 세계화가 어려웠습니다. 바울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고 결심하고 복음 전파를 위해 사선을 넘었습니다. 죄수가 되어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 그는 로마 군인의 전신갑주를 보며 믿음의 사람들도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로마의 권력은 바울의 몸을 가둘 수 있었지만, 그의 몸에 지닌 복음은 가둘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로마 권력의 장벽을 넘게 하셨습니다.
3. 성령으로 예수의 증인이 되는 일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아야 하는 마지막 이유는 예수의 증인이 되기 위함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예수에 대해 미친 자들입니다. 성령이 예수의 영이므로, 그들은 어디서나 예수를 증거합니다. 증인은 증거할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사도행전 4:19)고 말하며,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이심을 확고하게 증거했습니다. 다른 많은 말보다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확실하게 증거해야 비로소 예수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심판자가 아닌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범하기 쉬운 실수 중 하나는 이성적으로 그리스도의 구원 계시를 판단하려는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인간의 이성적인 사고로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이 아니라, 일어난 그대로 증거해야 하는 사건입니다. 또 다른 실수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정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증거만 할 뿐, 심판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일입니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는 마음가짐이야말로 증인의 사명입니다.
마지막으로, 증인은 예수 안에 참된 구원과 평안이 있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인생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마태복음 11장 28절 말씀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만이 인생의 참된 만족과 평안을 주신다는 사실을 외쳐야 합니다. 이러한 증거는 우리의 지혜나 지식,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직 성령"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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