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년의 이해, 안식년은 무엇인지 안식년에 대한 집중 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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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년에 대한 이해
성경이 가르치는 절기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은 안식일입니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것으로 매 7년째 되는 해에 지키는 안식년이 있습니다. 안식년에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해로 정하고 다음의 세 가지를 중점사업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첫째 밭에 곡식을 경작하거나 과수원을 가꾸지 않고 자연 그대로 방치해 두며, 아울러 수확을 거두는 것도 주인만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빈민들과 나그네와 들의 짐승들까지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둘째 혹시 이스라엘 사람이 노예로 팔려 왔으면 안식년에는 자유의 몸으로 돌려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노예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셋째 혹시 부채를 진 것이 있으면 안식년에 모두 탕감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채 없는 사회, 평등한 사회로 돌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제칠 년에는 땅으로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다스리지 말며 너의 곡물의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고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나무의 맺은 열매를 거두지 말라 이는 땅의 안식년(安息年)임이니라 안식년의 소출은 너희의 먹을 것이니 너와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품군과 너와 함께 거하는 객과 네 육축과 네 땅에 있는 들짐승들이 다 그 소산으로 식물을 삼을지니라"(레 25: 4-7).
이와 같이 농사일을 놓고, 노예를 노아 주고, 빚도 놓아주고, 그래서 히브리 원어에서는 안식년을 "놓는 해" 혹은 "빚의 면제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원도 "던져 놓다"란 말에서 안식년이란 말이 나왔습니다.
희생을 각오해야 지킬 수 있는 계명
사실 이런 법을 지키려면 굉장한 희생을 결단해야 하고 그런 결단이 있기까지는 많은 갈등을 겪어야 합니다. 이런 갈등을 예상하신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혹 너희 말이 우리가 만일 제칠 년에 심지도 못하고 그 산물을 거두지도 못하면 무엇을 먹으리요 하겠으나"(레 25:20).
이것이 인간의 염려와 불안입니다. 그리고 이런 염려 때문에 말씀을 순종하기가 극히 힘들고 주저와 망설임이 앞서는 것입니다. 이런 사정은 우리도 동일합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하는 것을 모르는 신자는 없습니다. 사회에서 이것저것 가리면서 생활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못 지키고 못하는 이유는 혹시 불이익이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주저하고 망설이기 때문에 지킬 것을 다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와 건국한 후 북 왕국 이스라엘은 우상 숭배 때문에 B.C 722년에 앗수르에게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남쪽 유다도 바벨론에게 B.C 586년에 망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유다가 망할 것을 예언하면서 70년만에 다시 돌아올 것은 예언한 것입니다. 이때 예레미야 선지자가 70년 후라고 말할 수 있었던 근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이 바로 안식년과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대하 36:21).
이 말씀을 근거로 하여 많은 주경학자들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한 후 하나님이 명하신 안식년을 지키지 아니 한 것이 70회인데, 그래서 하나님은 그 기간만큼 포로가 되게 하고 땅을 안식하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그가 작정한 규례를 그의 백성들이 지키면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혹은 이 법을 지킴으로 먹을 것이 없고, 마실 것이 없으면 어찌할까 하는 인간의 염려와 근심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것을 믿고 그의 약속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혹 너희 말이 우리가 만일 제칠 년에 심지도 못하고 그 산물을 거두지도 못하면 무엇을 먹으리요 하겠으나 내가 명하여 제육 년에 내 복을 너희에게 내려 그 소출이 삼년 쓰기에 족하게 할찌라"(레 25:20-21).
이 사실을 알게 된 유대인들은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아주 철저하게 안식년을 지켰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지킨 기록들이 남아 있는데, 십자군 전쟁시 즉 주후 1000년경까지 지킨 기록들을 찾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안식년을 지킴으로 오는 피해
안식년은 지키지 않았을 때 이방 땅에 포로가 되도록 하였지만 정확하게 지켰을 때도 문제는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이며 군사적인 문제까지 비화하였습니다.
첫째, 농사를 중단하니 국가에 바칠 세금이 없습니다. 그래서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이나 로마의 주리어스시저와 같은 사람들은 안식년에 유대인들에게 세금을 면제 해 주었다고 합니다. 이런 것은 정치적인 문제였습니다.
둘째, 군사적인 문제인데 만일 안식년에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실제로 최근 발견된 역사적인 자료에 의하면 시리아의 안디오커스 에피파네스 4세는 마키비가 다스리는 유다를 공격할 때 안식년을 이용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때 마키비는 적극적으로 전쟁을 하지도 않았지만 비축한 군량미가 없어서 벧술을 내 주었다고 합니다. 또 헤롯왕이 예루살렘을 점령할 때에도 안식년 덕을 톡톡히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실제적인 난관에 봉착하는 것이 안식년의 문제였습니다.
셋째, 개인적인 생활에도 문제는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바벨론에서 귀국하여 도시계획을 세우고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을 잘 보호하여 주었습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유입되었고 예루살렘은 많은 시민들이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자연적으로 상업이 발달하였고 농촌과의 생활양식이나, 생활 수준이나, 의식 구조에 많은 변화가 왔습니다. 그래서 농촌에서는 아직 안식년을 지키고 있는데 도시에 사는 주민들 특히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안식년의 규례를 무시해 버리고 빚을 탕감해 주지도 않고 안식년에 장사를 쉬지도 아니하였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다시 종교 개혁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혹시 이 땅 백성이 안식일에 물화나 식물을 가져다가 팔려 할지라도 우리가 안식일이나 성일에는 사지 않겠고 제칠 년마다 땅을 쉬게 하고 모든 빚을 탕감하리라 하였고"(느 10:32).
시민에게는 쉬게 할 땅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며 살려고 하여도 살 수 없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농경 사회와 산업 사회의 문제로 남게 된 것입니다.
이 규례의 본질
여기서 하나님 말씀의 본질을 알아야 하는 문제가 대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어김이 없기 때문에 말씀 그대로 지키며 순종해야 하지만 말씀의 본질을 이해하고 지키는 것은 더 중요하다. 그러면 이 말씀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첫째,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나그네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토지는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 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레 25:23).
토지의 영원한 소유주는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나그네로서 잠시 관리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이 선행되고 이 규례를 지킬 때 바로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을 가지고 땅을 묵히고, 소득을 모든 사람들 뿐 아니라 들의 짐승들까지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규례의 정신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것이 땅만입니까? 우리의 몸이나 시간, 생명이나 사업, 혹은 재산 등등 하나님의 것 아닌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는 나그네에 불과합니다.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안식년을 지킬 때마다 이것을 기억하고 이런 신앙에서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도 이런 신앙에서 출발합니다. 이 날은 내 날이 아니고 하나님의 날이라고 생각하고 믿어야 합니다. 십일조도 역시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라고 믿는 신앙이 근간을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가 시간적으로 봉사 활동을 할 때도 시간이나 건강이나 생명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이 필요합니다.
이런 의미를 모르고 이런 신앙을 갖지 못하고 안식년을 지키고 주일을 지키는 것은 문자적으로 지키는 맹목적인 복종에 불과합니다. 문자적으로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님의 깊으신 뜻을 알고, 믿고 지키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이런 신앙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신앙이지만 설혹 축복이 없다고 하여도 주님께 쓰임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오히려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즉 부의 독점을 막고 가난한 사람과 함께 나누라는 것입니다. 현대적인 표현으로 말씀드리면 굉장히 멋진 [사회보장제도]를 실시할 것을 하나님은 요구하신 것입니다. 20세기에도 없는 사회 보장제도 입니다. 일방적으로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 자신이 자기의 힘으로 먹을 것을 비축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 동족을 영원한 노예로 삼지 말라는 것은 인권을 보호하고 존중히 여기라는 것이고 빚을 탕감하여 주라는 것은 돈을 꾸어 주고 빌려주는 것은 부의 축적 방법이나 영업활동이 아니라 빈민을 돕는 수단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넷째, 이런 일을 안식년이라는 절기를 통하여 하라는 것은 이런 일을 행할 때 결코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절기로 알고 기쁨과 감사와 즐거움으로 축제 분위기에서 하라는 것입니다. 주는 사람도 기분 좋고 받는 사람도 기분 좋게 하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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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이네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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