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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운동에 기독교가 적극 참여하게 된 동기와 한국교회의 피해

코이네 2014. 2. 28.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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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운동과 기독교, 기독교가 삼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원인 그리고 삼일운동으로 인해 입은 기독교의 피해



 

 


3.1운동과 한국교회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물론 3.1운동은 일본제국주의의 포악한 무단통치에 대항하여 폭발한 한 민족의 거족적인 항일독립운동이었다. 그러나 그 준비과정이나 운동 진행과정에서 기독교의 역할이 매우 컸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 같이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기독교인이 16인이나 되며, 비서명자 48인 가운데도 24인의 기독교인이 참여하였습니다. 당시 전 인구 1천 7백만 중 기독교의 수는 30만 명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전체 인구의 불과 2%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던 점을 감안할 때, 삼일운동에 기독교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했는 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독립선언문



또한 3.1운동에 직접 서명한 목사님들 중에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주장하며 고민하던 신석구 목사의 경우, 선언서에 서명하는 문제를 놓고 새벽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고민하면서, 27일 새벽에야 "5천년 전하여 내려오던 강토를 내대에 와서 잃어버린 것이 죄인데 찾을 기회에 찾아보려고 힘쓰지 아니하면 더욱 죄가 아니냐."는 응답을 받고 참여하였습니다. 

길선주 목사는 이승훈의 제안으로 독립운동의 주모될 것을 결정한 동기 역시 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권고로 "고국을 구원하라는 사명을 부여받았다."는 신앙적 동기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삼일운동이 끝난 후 이 때문에 일제에 의해 체포된 후 공소공판에서 "피고는 항상 일한 합병에 불평을 품고 조선독립을 희망하였는가?"라는 총독부 판사의 질문에, 이승훈의 경우 "그렇다.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바가 있으니 오색 인종 어느 누가 조국의 흥왕과 종족의 번영을 바라지 아니하며, 더욱이 남의 나라에 합병된 자기 나라의 독립을 바라지 아니하였으랴."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기독교 지도자들의 대답도 이와 한결같았습니다. 

3.1운동 이후 이로 인하여 받은 교회의 피해는 막심하였습니다. 총독부가 1919년 5월에 발표한 통계를 보면, 전부 파괴된 교회당 수가 17동, 일부 파괴된 것이 24동, 그 외 교회당의 손해가 41동, 교회 재산의 손해액은 3만 달러, 오산중학교의 피해액은 5천 달러였습니다. 그리고 1519년 6월 30일(현재의) 투옥된 사람의 수도 기독교인이 2,190명으로 유교나 불교 및 천도교인을 합한 1,556명보다 훨씬 많았으며, 교역자도 151명으로 천도교 직원 72명을 훨씬 능가하고 있었습니다.


이상과 같이 한국교회는 3.1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감당해 왔을 뿐 아니라 이로 인한 피해도 많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고 분연히 불의에 대항하여 일어섰던 것입니다. 



 

 


by 코이네